추천 게시물

유목적 사유의 탄생 - 이정우의 탐독

월요일부터 휴가이다. 휴가 중에 그동안 게으르게 뒤로 밀어뒀던 자동차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고, 아내의 신발을 함께 사러가고 한의원에 들렸다.

그래도 나에게 휴가의 백미는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읽다가 지치면 자고, 자다가 깨면 다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번달 8일에 샀는데 제목만 보고 던져놨던 이정우의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을 읽었다.이정우라는 '유목적 사유자'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에 대하여 쓴 글이다. 책을 읽으며 나보다 10년을 더 산 이정우와의 차이보다 동질감을 느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말이다. 그와 내가 걸어온 길이 다른데도 말이다.



탐독 - 6점
이정우 지음/아고라

이정우가 교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다면 우리집에는 서재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한달에 한번씩 교당과 봉황대를 오르내리며 먼지 쌓인 마루를 청소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이후로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나와 형들은 한달에 한번 청소를 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한가운데 있던 낮으막한 동산의 꼭대기에 있던 텅빈 봉황대에 촛불을 켜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그 어둑함과 좁은 산길을 오르내릴 때의 차가운 공기와 나무 냄새들, 저쪽 어둠 속에서 울던 밤새 소리들. 이런 경험이 아직도 내 도덕적 사유의 한 끝을 잡고 있다. 스스로 몸을 닦아 윤리적으로 고양되는 삶! 모든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소위 말하는 교양서보다는 셋째 형을 따라 무협지를 더 많이 보았다. 이정우가 삼국지를 읽을 때 와룡생, 사마달, 검궁인, 냉하상 등의 책을 읽은 것이다. 다만 문학도였던 둘째 형이 밤새 쓴 시를 두 동생을 앉혀놓고 읽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생활은 몇 년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동서양의 고전과 같은 이론(또는 교양)의 세계보다는 '생활세계'에서 주어진 어떤 느낌들의 중첩이 현재의 나를 결정한(영향을 준) 것같다.

철학과를 선택하게 된 동기도 그렇다.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못했으나 스스로 '민족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철학이, 막연한 철학적 무게가 필요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땐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족적(동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동양철학 (사서삼경과 같은) 원전 강독을 꽤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을 더 많이 공부했다. 

이정우가 자연과학(공학)을 공부하고 철학으로, 그리고 현재의 '유목적 사유'를 즐기는 이정우가 되었다면, 나는 철학에서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갔던 그의 학문적 이력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리고 이젠 미디어의 세계를 이리저리 맴돌고 있는 나의 삶과 비교하기 그렇지만.

80년대의 상황이 이정우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던 것처럼, 80년 막바지의 상황이 나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다. 이때 나의 꿈은 죽기 전에 국가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나는 알뛰세르에서 그람시로, 푸코로, 그리고 브르디외, 들뢰즈로 움직여 갔다. 나의 화두는 국가였고, 폭력적 국가장치들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추상화된 개념이 구현되는 형태를 장(場, camp), 담론, 계열화 등의 개념에서, 이정우가 <탐독>에서 이야기하는 바로는 사건의 철학 속에서 찾았다.

나는 가끔 동시대에 산다는 것,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알고 온몸이 짜르르 진동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어떤 사람의 글 속에서 읽을 때가 그렇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정우보다는 이진경의 글에서 많이 느끼곤하느데, 내가 군대에 가서 (운동권에서 말하는) 원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못읽게 되면서 푸코에 빠져들게 되 것과 이것을 맑스적으로 해석하고, 맑스에게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려고 하면서 가게된 경로가 이들이 가고있던 경로와 비슷했기 때문일까? 푸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푸코를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영천 3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에 있으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 <말과 사물> 이런 것들이 보안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의 역사>를 보면서 야릇하게 웃던 훈육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동시대를 산다는 생각은 책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느끼는데, 서로 다른 처지, 회사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것을 직접 듣거나, 어딘가에서 전해들을 때이다. 그럴때면 혼자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자신감 같이 것이 모락모락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도 한다.

<탐독>은 3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소년/청년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가벼운 평을 쓴 부분, 대학시절 공학도로서 만난 과학적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고 다시 사유하면서 읽은 책들. 

사실 나는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아니 애써 관심없는 척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한번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다가 어떤 영감을 얻으면 몇날 며칠을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리장성도 쌓았다 부셨다 하면서 지낸다. 회사를 안다니고 직업적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회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굳이 읽으면 시집을 읽는데 왜냐하면 시라는 형식이 소설보다는 생각이 나면 쉽게 옮겨적어 놓을 수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던 동기가 소설가 같은 글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긴 하지만 직업적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지금 사는 삶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소설은 아니지만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산다고 믿고있다. 굳이 된다면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다. 

문학작품에 대한 이정우의 생각은 어른이 된 이정우의 눈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 형식을 취한는 관계로 깊다기보다는 인상기에 가깝다. 굳이 평하라면 원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펑크에서 철학으로❯에 대한 이호준의 평을 읽어보라하고 싶다. 하지만 <탐독>이 자신이 살아오면 읽었던 책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라 사실 이런 평을 갖다 붙이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둘째 장과 세째 장을 넘기면서는 나는 이정우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성과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티브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물리학 교과서, 과학사 책을 들척이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수식 앞에서 갖게되는 좌절감이란! 철학도로서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갖고 싶었던 것을 공학도였던 이정우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소은 박홍규라는 은사와의 만남에 대한 강조이다. 사실 학부만을 다닌 나로서는 깊이 철학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은사라고 할만한 분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이 계셨다면 하는 부러움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이정우처럼 석사와 박사까지 공부했다면 이런 분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루진 못했지만 ❮근대세계체제❯을 쓴 월러스틴을 찾아 유학을 떠날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탈린의 일국 혁명론에 불만이 가득하던 시절, 신식민지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를 품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시절 나의 스승은 선배들과 거리의 정치였다. 선배들은 '철학과에 왔으니 철학이나 공부하라'며 줄 곧 철학사 중심의 철학만을 공부시켰다. 남들이 읽는 사회과학 서적이 눈에 보이면 '압수'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데모(가투, 가두투쟁)에는 빠짐없이 나가도록 '종용'했다. 1학년부터 한주에 2~3번씩될까? 2~3시간 지속되는 세미나를 했는데 계속되는 발제와 질문, 면박!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공부하던 학회가 발전적으로 '해산'을 했는데 선배들 왈 '자신들은 변증법적 사유의 기초를 가르쳤노라'고 했던 것이다. 아둔한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참이 되서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선배들은 철학사를 통해 개념적 사유의 방법/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사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말이 선배지 학번 차이는 별로 없지만 나이가 한 열살은 많은 분들이었다. 데모를 하면서도 '싸움꾼'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론가'를 꿈 꾸었다. 

지금도 방 한구석에 최근 다시 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강경대사건/김기설씨(또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주워 모은 전단지가 한꾸러미 있다. 언젠가 국가론을 쓰겠다면, 오늘의 사건의 구조를 분석하겠다며 모아 놓은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된 최근의 기사와 과거에 주장되었던 '사실들'을 보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동작하면서 사건을 계열화시키고 허위를 '사실'로 만드는지, 또 이것이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획득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정치사회적 사건뿐만이 아니라, 산업에서도, 지적인 장에서도 일어난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원전(여기서는 철학 원서이다)을 읽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철학은 철학사, 개론서를 가지고 공부하면 안된다는 이정우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이론도, 사물도 마찮가지이겠지만, 가지를 치고 중요한 줄기만 남겼을 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푸른 잎과 여유롭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잃고 만다. 개론서나 철학사가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그것을 던져버리고 원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처음엔 더디겠지만 원전의 세계로 먼저 나갈 수 있다면 뒷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옆에 책을 함께 읽어주고 생각을 도와 줄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탐독>을 읽으면서 가장 나를 좌절시킨 부분은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p.286)라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독일어로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나에게는 좌절감을 주었지만 만일 이호준이 이책을 읽었다면 이런 부분에서 또 다시 김용옥의 '냄새'(또는 大家다운 풍모)를 맡지 않았을까? 이정우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보다는 '모든 사람은 철학자'라는 그람시의 편에 서 있다. 이정우가 '엄밀성'을 전제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외국어는 영원한 숙제이다. 시간과 돈만 잡아먹는 영어 공부를 다시는 안하겠다고 마음먹은지 몇년이 지난 요즘, 회사일로 자주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흔들리고 있긴하다. 좋아하는 철학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보다. 나도 직업으로서 철학을 하고 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원전을 읽기 위해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웠을까?

또 사소하지만 이정우에게 부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유학을 갈 것을 여러 번 종용하시기까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대학원을 가려고 '군대'를 간 웃기는 놈이다. 집이 대학원에 다닐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되서 돈을 좀 모아보자는 심산으로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군에 지원을 하기위해 서류를 떼러 갔을 때 속도 모르고 '이 성적으로 대학원엘 가지 군대에 가느냐'고 묻던 분이 생각난다. 결국 이때 모은 돈은 제대 후 결혼 자금이 되었다. 공부보다는 연애하고 지금의 아내와 사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철학과나 정치학과가 아닌 경영학과 대학원에를 갔다. 노동자를 위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지막으로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겪은 정치적, 역사적 체험을 내 사유의 근원으로 삼고 싶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든 그 근원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내 가슴 속에 타오른 불길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pp.367~368)고 이정우가 말하고 있다. 서 있는 곳,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만 나도 그렇다. 이것이 어떤 시대가 어떤 세대에게 던져준 화두가 아닐까? 우리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리를 여전히 옴짝달싹 못하게 눌러대는 세계-자연, 사회, 인간-에 대해 알고 싶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 가장 행복한 순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곳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그리고 아내가 과일을 깍아준다면 더 좋을텐데...... 뒹구는 포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