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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성찰적 삶의 취약성

 문명과 야만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씨의 칼럼을 보았다.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글이다. 그는 문명사회의 척도를 예절과 법도에서 찾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문명사회의 예를 노일전쟁 때의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했다고 아쉬워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하기 힘 들어서 그만두고 싶다" 등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의 예로 들고 있다.

지난 해부터 <문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명은 강자가 만든 도덕심, 아니 형식화(의례화)된 어떤 사회적 행위의 절차인듯 하다. 이런 의례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그에 걸맞는 부(문화적 자본을 포함한 부)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이 학연, 지연으로 묶인 엘리트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아비투스(Habitus)'일 수 있다. 이것을 습득하지 못한 노무현이란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들은 야만인이 내뱉는 언사를 참지 못했을 법하다. (<꽃보다 남자>에서 천민과 귀족의 대조는 이런 사실을 희화화하여 보여준다.)

검찰 출신의 한 동기생은 연수원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판사 출신인 연수원 교수들이 수업하다가 ‘어이,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답해봐’ ‘나이 많은 노무현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식으로 짓궂은 질문을 많이 했다. 시보를 나가서도 ‘(상고 출신이라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 너 뭘 배웠냐’ 식의 구박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지나치게 경직된 법조계의 분위기를 못 견뎌 했고, 그래서 판사도 짧게 하고 말았다.”(한겨레신문, “이라크파병 반대 표명에 훗날 고마워해”, 2009.5.57) 

한겨레의 기사에 나온 내용은 좋게 말해서 짓궂은 것이지 이야말로 하위계층 출신에 대해 '예의와 법도'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대다수 상층부의 정신적 미성숙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예의와 법도는 자신들 사이에 지켜지는 것이지 모두에게 지켜질 이유가 없다. 이들은 문명이라는 잣대를 이용해 자신들의 가식성에 대한 반성 없이 하층부의 '비속함'을 꾸짖고 정서적으로 못견뎌하고 또 역겨워하기까지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을 참고할 것)

예절과 법도라는 문명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진보적 지식인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지는 말의 생경함[footnote]노 전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지난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마지막날 "전두환 살인마"라고 외치며 전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의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와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듯 하다.
출처: 연세대 앞 굴다리에 '전두환 살인마' 등장[/footnote]에 스스로 부끄러워했거나 듣기싫어 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조중동, 또는 지배계급이 만든 문명의 영향을 받았든 아니면 다른 연유에서든 언제부터인가 그의 말이 '막가파'처럼 들렸다는 부인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는 좌파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조중동의 영향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젠 이성이 아닌 정서에 대해 좀 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보적이라는 말이 전복적이라 말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정부를 욕할 때, 나는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이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다시는 (파시스트적)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갈 때까지 갔다'(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을 높이 샀다. 지금보면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데 1년도 안걸리는 듯 하지만 ... 그래서 그들이 구현한 시대정신이 더 값져보인다.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어쩌면 대다수 국민(민중, 서민)이 말하는 방식일게다. 그는 여기서 좀 더 정제된 말을 썼지만. 말이 의식의 표현이라면, 그가 이런 말투를 바꿔 엘리트집단들(전통적 권력집단들)이 쓰는 의례적이고 정중함으로 포장된 식으로 했다면 그나마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갔을까? 그런 말을 쓰는 순간 그 자신도 이러 저러한 기존의 관행(습속)에 끌려들어가 똑같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노무현은 어떻게 5공화국 청문회에서 '스타'가 되었을까?

기존의 정치문화(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으로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왔고, 그 '야생'의 시각에 대한 지지였다면 우리는 그의 '예의없음'에 경의와 격려를 보냈어야 했다. 언제나 문명, 문화는 질서(rule)을 만들고 이것에서 벗어날 때 야만이라고 공격을 해댄다. 

  • "예의없음" : 한편 김동길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에게 사죄를 요구하며 달려든 민주당 백원우 의원도 맹비난했다. 그는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는가”라며 “그런 무례한 자는 마땅히 당에서, 국회에서 추방되고, 사법기관이 중형에 처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나라의 꼴이 이게 뭡니까”라고 했다. 김동길씨의 이런 글은 '예의없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전형적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출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언론의 편파적 태도 비난

하지만 질서가 무너질 때도 이 야만성에 대하여 꼼짝 못할 때가 있는데 이 야만인들이 아주 우월한 폭력으로 그들의 문명을 비웃으며 장악할 때이다. 좀 비약인듯하지만 전두환이나 노태우, 박정희와 같은 압도적 폭력수단을 장악한 군사정권의 반문명적 행동(광주학살, 고문과 같은 인권침해 등)에 대해 조중동 및 지배계급이 보낸 것은 추파에 가까운 찬양이었다.

'노무현'을 보면서 어쩌면 문명이라는 저들이 쳐둔 함정에 우리 모두 빠져든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10년은 너무 짧다. 보수적인 엘리트집단이 만들어놓은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사회를 감싸고 있는 습속(문명이란 이름의 야만)을 없애고 다른 '문명'을 만들기에는.

10년이면 강산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10년동안'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좋은 의료시설을 이용한 분들에겐 60, 70 나이가 고령도 아닌 듯하다. 적어도 한세대 이상이 지나 이들 자리가, 이들이 만들어 놓은 강고한 재생산 구조가 약해져야 '루비콘 강을 건넣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시간을 단숨에 넘어서려면 이 문명을 뒤흔들어 버린 무자비한 '야만성', 사람들의 몸 어느 구석엔가 흐르고 있는 분노들, 생존을 위한 욕구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역사상 여러 문명이 있었듯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명'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김종철씨는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가 말한 정신적 기율의 위대함을 느끼면서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가 어떤 사회가 아닌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어떻게 쌓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작동하고, 사회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묻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정신적 기율을 요구한다면 결국 야만인을 몰아내고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귀족적 정신에로의 귀의(투항?)가 아닐까?

김종철씨의 이야기를 문맥/상황 속에서 읽으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안하고 표적수사와 확정되지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기 등에 대한 질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명집단(엘리트집단)이 요구하는 노무현식 막말이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하기에 듣기 싫어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야비하게 행동을 한다. 야비하게 행동해서 성공하면 그것이 맞고 실용적인 것이다.

이성과 야만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 문명과 야만도 그렇다. 우리는 문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야만의 얼굴(핵전쟁, 아우슈비츠 ...)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많은 야만 속에서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더 잘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일까?

비극의 원천, 성찰적 삶의 취약성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의 원천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기존 지배질서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난 야생성을 가진, 그래서 그 질서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또 그의 야만성은 (모순적이지만) 감정이 아닌 윤리적, 성찰적 이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야만성/야생성에 기반을 두고 그는 기존 질서(이 나라에 깊이 깔려있는,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엘리트주의, 권위적 지배구조)에 도전했고, 그 도전의 근거는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성찰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에 기반한 삶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성찰적 이성은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유보될지라도 적어도 언젠가는 .... 따라서 진리의 담지자로서 계몽의 사명을 갖게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그런데 검찰의 최근 수사는 그 자신도 "another brick in the wall"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그가 서있던 도덕적 근거가 무화되었을 때, 그 자신이 이 운동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의 선택이 '다른 벽돌 중 하나'가 아닌 이성적 근거를 다시 새움일 때 ...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제가 이 일을 책임감을 갖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적는다.(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성찰적 이성은 어떤 과정이 잘못되었을 때 - 우리의 행동이 실패했을 때 그 목표가 진리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순교자의 지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반성의 진정성을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성적 회고와 성찰이 없는 실용주의와 다른 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또 더 확대하여 이명박 정권)이라면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1조에서 수천억원을 해먹고도 떳떳하게 살아 숨을 쉰다. 해먹었기 때문에 이것이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반성적,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진리 앞에서 전두환씨처럼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뻔뻔하지 못함'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함'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과 수치심이야 말로 오랜 세월 문명이 만들고자 했던 더 중요한 정신적 기율이 아니던가!  감정을 속인 예의 섞인 말도 (귀족적 삶에서 그저 몸에 배인 형식주의가 아닌) 이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하여 죽음과 배를 맞대고 있는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때문에 그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는 생명력을 얻어 영원성을 획득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래된 경구가 생각난다.

배제의 원리

요즘, '배제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적 앞에서 왜 분열되는가? 연구대상은 91년 강경대사건 전후에 있었던 김지하씨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외유를 다녀온 황석영씨이다. 어떤 진보적인 지식인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이들을 어떻게 밀어내고, 그 밀려나간 끝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하는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권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는 잡다한 구체(삶) 속에 박혀 있는 어쩔 수 없는 차이들에 좀 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그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추상적 이론(목표)의 힘과 필연성만을 믿을 때, 날선 칼끝에 함께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어떻게 보면 의례화된 문명이란 이런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회의 지속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안전판일 수 있다. 이성화되고 야만성을 버릴수록 우리 스스로 관료화된 강철 새장(Iron Cage)에 갇혀지내야 한다. 강철 새장을 깨트리려는 사람들에게 의례화된 문명이란 없어져야 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막스 베버의 종교적 카리스마에 대한 분석을 보면 이런 운동 과정은 하나의 의례를 없애고 다른 의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시지프나 오이디프스의 비극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예시한다.

저들의 구역질 나는 삶에 욕 한마디 못하고 삶의 윤리적 우위성과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배제의 원리를 논하는 내 자신이 ... 애닮다! ... 다시 시를 써야겠다.


문학일기2
- 대학

처음엔 어떤 진실을 간직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87년, 인천 어딘가에 있던 공사장은 아버지의 유배지였다
우리는 도망하듯 한달에 서너번 이사를 했었다
가족 모두 흩어져 어렵던 겨울 내내 
눈화장이 묻어난 어머니의 눈물처럼 
검게 흐르던 유등천 뚝방에 앉아 눈물을 흘리다 
국문과에 원서를 썼다 그것이 타협처럼 보였었다
어머니는 時流에 따라 살아야한다고 말을 했고
철학은 때 늦은 방석 깔은 점쟁이나 때 이른 의식화된 데모꾼이었다

1989년, 재수를 해서 철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時流에 대한 시위라고 생각했다
1990년, 쌍문동 아파트들 사이에 낀 난쟁이 옥탑방에서 
감정의 군더더기로 몰아 세워 썼던 시를 모두 태웠다
鐵의 規律로 武裝한 前衛가 되고 싶었다
쌍문동과 방학동의 고층 아파트 사이 여름 내내 썩은 내 나던 
개울 옆 머리 흐트러진 판자집이 승리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해 오월 처음으로 광주엘 갔었다 검게 타고 부어올라서도 
눈만 살아 빛나던 이철규의 얼굴은 그때 본 그림처럼 생생하다 

1991년, 강경대가 죽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고 관료처럼 생각했다
정권의 유감처럼 분노는 수사였고 정세판단이 중요했다 
구호는 사막의 삭막하게 부는 바람처럼 들렸다  놀라 울던 가슴,
감정의 군더더기가 더욱 인간적이었고 진리처럼 보였다
분노를 가진 이성이고 싶었다 다시 억제하던 감정에 빠지고 싶었다

초라하게 주져앉았던 1991년, 방황했던 1992년이 가면서 시적 감정은 
도구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합리적 이성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1996.1.16


2009.5.28 .. 아니 그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부터 났던 이런 저런 생각을 오늘(5.31)쓴다.

http://dckorea.co.kr/tc/trackback/215

산토리니(Santorini) - Authentic Greek Cuis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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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9.05.16 옛 블로그(태터툴즈)에 게시했던 글을 웹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것입니다.

산토리노

5월 1일, 가족들과 함께 이태원 산토리니(Santorini)에 갔다. 정통 그리스 식당이란다. 장모님 주재 하에 한달에 한군데씩 서울 시내에 있는 '정통' 외국 음식점을 돌기 시작했는데 두번째다. 첫번째는 정동에 있는 브라질 음식점이었다. 브라질 음식점은 라스베가스 출장 때 두번 가봤었는데 음식을 주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한국엘 오니 한국법을 따르는 듯하다. 또 귤화위지라고 맛도 좀 못했다.

차를 회사에 세워놓고 오목교역에서 공덕역까지 가 6호선으로 갈아탔다. 산토리노는 이태원 헤밀톤호텔 뒷편에 있다. (아래 지도에서 왼편 골목으로 올라간 후 왼편으로 돌아 조금가면 왼편으로 보인다.)



샐러드, 짜지키, 빵

먼저 짜지키(Tzatziki)와 샐러드, 빵이 나왔다. 플레인 요거트로 만든 그리스 소스인데 맛이 담백하고 개운하여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빵에 짜지키를 찍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빵도 맛있고 부드러워 한번 더 달라고 했다.

Greek blue glass

Greek photograph

식당안은 크지 않지만 파란 하늘, 바다, 하얀 건물들로 이루어진 사진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맞은 편 벽면은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다. 또 창문과 안쪽 카운터 겸 주방이 마주해 있는데 창문에는 파란색 커튼이 파란색 창틀 위를 덮고 었다. 그래서인지 밖에 비가 왔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푸르스름하게 번지는듯 보였다.

한쪽 옆에서 그리스인인듯한 한 가족이 식사를 했고 창가쪽으로 한쌍의 연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오갔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파란 유리잔(Greek blue glass)이 정취를 더 해준다.

폭 스블라끼

폭 스블라끼(Pork Souvlaki)라는 꼬치요리를 시켰는데 훈제한 맛이 감칠 맛이 나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폭 스블라끼로 직화(直火)로 구운 돼지고기인데 한입 크기의 고기를 양파, 토마토, 피망 등의 채소와 번갈아 끼워 올리브 기름을 발라 구워냈는데 짜지키에 찍어 먹으면 새콤한 맛이 난다.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도 시켰다.

기로스는 쇠꼬챙이에 양고기나 돼지고기를 꿰어 구운 뒤 칼로 저며 내 밀전병으로 싼 것이다.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기름이 빠지고 화덕의 향이 배어나온다. 구워진 고기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피타빵 위에 양상추,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 올리브 등의 채소와 함께 넣고 돌돌 말아내는데, 말기 전 이 위에 짜지키 소스를 얹는다.

이것도 화덕 향과 함께 맛이 좋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버거킹 와퍼를 먹을 때 나는 화로향보다 짙은 맛이 나온다.

 Hoegaarden - 맥주

작은 맥주 2병시켜 네명이 나눠마셨는데, 아내가 시킨 Hoegaarden의 맛이 음식과 어울렸다. 맥주 이름을 기억할 요량으로 사진을 찍었다. 병 뒤로 포크를 고추세워지고 열심히 먹고 있는 순호 모습이 보인다.

처남은 그리스 전통 술이라는 우조(ouzo)를 시켰는데 그 독특한 향 때문에 마시지 못하고, 이리 저리 한번씩 맛보라고 돌리다 결국 내려놓고 맥주를 한잔 얻어마셨다. 그 향이 좋지는 않지만 익숙해 잘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만든 돌사탕(?)에서 나는 향 같았다.

바클라바(Baklava)

그리스 커피(Greek coffee)

바클라바(Baklava) 한 조각과 그리스 커피(Greek coffee) 세잔을 후식으로 시켰다. 바클라바는 크라상을 파이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눌러놓은 것 같다. 이렇게 만든 것을 꿀단지든 진한 설탕물에 다가놓은 듯한데 모두 너무 달아 조금씩 입에 댄후 남겼다.

그리스 커피는 원두를 그대로 갈아내어 끓인다고 하는데 그 향과 조금 걸죽하고 달짝한 맛은 있지만 모두 입맛에 맞지않았다. 커피 맛보다 커피잔이 이쁘다고 아내와 처제가 한마디씩 한다.

전체적인 평가는 대만족이다. 모두 다음에 또 와보고 싶다고들 한다. 다만 우조, 그리스 커피, 바클라바는 빼고. 주메뉴는 괜찮은데 곁들여 먹은 것들이 입맛에 안맞은 듯 하다. 우조와 커피를 보면 음식을 먹을 때 향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