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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게르숌 숄렘과 한나 아렌트의 서신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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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와 게르숌 숄렘의 1963년 서신 교환

“Eichmann in Jerusalem”
An Exchange of Letters between Gershom Scholem and Hannah Arendt
  • 게르숌 숄렘: Gershom Scholem, 1897–1982: 독일 출생의 이스라엘 유대학자이자 카발라·유대 신비주의 연구자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 독일 출생의 미국 정치사상가로 전체주의와 정치적 행위를 연구한 사상가

아렌트는 왜 '유대 민족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을까: 숄렘에게 보낸 1963년 편지 원문 해석

2019년에 쓴 포스팅 「스토리텔링과 지옥문을 연 인터넷」에서 아렌트의 말 하나를 인용했다. 켄 크림슈타인의 그래픽 전기에 나오는 대사다.

사랑은 사적인 거예요. 난 유대 민족을 사랑할 수 없어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가족과 친구들 정도죠. 그런 열정을 공적 영역으로 가지고 나가면 오히려 더 많은 아이히만이 탄생하게 돼요. 
(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최지원 옮김, 더숲 (원제 The Three Escapes of Hannah Arendt), p.230)

이 대사의 원문을 찾아 만화 속 말과 실제 편지는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가 살펴보고, 아렌트가 말한 '사랑'과 '마음'은 정치에서 어떤 자리에 놓이는가를 생각해 본다.

원문은 1963년 아렌트가 게르숌 숄렘에게 보낸 답장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두고 숄렘이 "자네에게서 아하바트 이스라엘(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고, 아렌트가 이에 답한 편지다. 

다만 "가족"이라는 말과 "더 많은 아이히만"이라는 문장은 이 서신에 없다. 만화가 편지의 취지를 풀어 쓴 것으로 보인다.

번역은 직접 했다. 원문의 어순과 문장부호를 되도록 살렸고, 뜻을 보충한 말은 〔 〕에 넣었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였으나, 나이 차가 있으므로 숄렘의 편지는 '자네'를 쓰는 하게체로, 아렌트의 답장은 '당신'을 쓰는 합니다체로 옮겼다. 인물 설명 등 괄호 속 풀이는 내가 덧붙인 것이다. 지면 때문에 아래에는 인용한 대목에 가까운 문단만 골라, 문단마다 쪽수를 달았다.


숄렘의 물음, 아하바트 이스라엘 (pp. 241–242)

시작은 숄렘이다. 그는 아렌트의 책에서 '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대 전통에는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아하바트 이스라엘(Ahabath Israel), ‘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개념이 있네. . . . 독일 좌파 출신의 그 많은 지식인들에게서처럼, 친애하는 한나, 나는 자네에게서도 이것의 흔적을 거의 찾지 못하겠네.
In the Jewish tradition there is a concept, hard to define and yet concrete enough, which we know as Ahabath Israel: “Love of the Jewish people. . . .” In you, dear Hannah, as in so many intellectuals who came from the German Left, I find little trace of this.

"흔적이 없다"는 말은 비판이면서 동시에 질문이다. 논쟁의 축은 책의 사실관계가 아니라 어조와 마음에 있다. 숄렘은 같은 문단에서 아렌트를 "우리 민족의 딸"로 본다고 덧붙인다. 이 호칭이 다음 문단의 불씨가 된다.


"우리 민족의 딸"이라는 호칭 (p. 246)

아렌트는 먼저 그 호칭을 짚는다. 사랑 이야기에 앞서 정체성부터 정리하는 순서다.

사실 저는 다른 무엇인 척한 적도, 저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인 척한 적도 없으며, 그런 쪽으로 유혹을 느껴 본 적조차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남자이고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말하자면 일종의 미친 짓입니다.
The truth is I have never pretended to be anything else or to be in any way other than I am, and I have never even felt tempted in that direction. It would have been like saying that I was a man and not a woman—that is to say, kind of insane.

유대인임은 '선택하거나 포기할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사실이라는 말이다. 아렌트는 이어서 이를 퓌세이(physei: 본성상 주어진 것)와 노모(nomō: 인간이 약속으로 만든 것)의 구별로 설명한다. 자랑할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


사람에 대한 사랑 (pp. 246–247)

만화가 가져온 대목이 바로 여기다. 아렌트는 숄렘의 말이 맞다고 먼저 인정한다. 그리고 이유를 두 가지 든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저는 이런 종류의 ‘사랑’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어떤 민족이나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독일 민족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노동계급도, 그 밖의 어떤 집단도 말입니다. 저는 실제로 ‘오직’ 제 친구들만 사랑하고, 제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둘째로, 저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 ‘유대인에 대한 사랑’은 제게 다소 의심스럽게 보일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나 제 인격의 일부이자 한 부분〔떼어낼 수 없는 일부〕이라고 알고 있는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You are quite right—I am not moved by any “love” of this sort, and for two reasons: I have never in my life “loved” any people or collective—neither the German people, nor the French, nor the American, nor the working class or anything of that sort. I indeed love “only” my friends and the only kind of love I know of and believe in is the love of persons. Secondly, this “love of the Jews” would appear to me, since I am myself Jewish, as something rather suspect. I cannot love myself or anything which I know is part and parcel of my own person.

만화 대사와 견주면 차이가 보인다. 원문에는 "가족"이 없다. 아렌트가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오직 친구들"이다. 그리고 대상이 유대 민족만이 아니다.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노동계급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다. 거부하는 것은 유대 민족이 아니라 '집단'을 사랑한다는 발상 자체다. 두 번째 이유는 더 날카롭다. 내 일부인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므로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유대 민족을 믿는다"는 정치인 (p. 247)

아렌트는 이스라엘에서 만난 한 저명한 정치인의 말을 소개한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신은 믿지 않지만 "유대 민족을 믿는다"고 했다. 아렌트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는 답하지 못했다고 쓴다. 그리고 편지에 결론을 적는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유대인들을 ‘사랑’하지도, 그들을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단지 당연한 사실로서 그들에게 속할 뿐입니다, 논쟁이나 논증의 여지 없이 말입니다.
Well, in this sense I do not “love” the Jews, nor do I “believe” in them; I merely belong to them as a matter of course, beyond dispute or argument.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지만 속해 있다. 이 한 문장이 아렌트의 위치를 가장 짧게 말해 주는 것 같다. 사랑은 선택과 감정의 말이고, 소속은 사실의 말이다.


정치 속의 '마음' (p. 247)

내가 보기에 만화의 마지막 문장, 곧 "공적 영역으로 가지고 나가면"이라는 대목과 이어지는 것은 이 문단이다. 아렌트는 숄렘이 말한 헤르첸스탁트(Herzenstakt: 마음의 섬세함)를 정치의 문제로 옮겨 놓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치에서 ‘마음(heart)’이 맡는 역할은 제게 전적으로 의심스럽게 보입니다. . . . 달리 말해, 우리는 이런 감정들이 사실적 진실(factual truth)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둘 다 알고 있습니다.
Generally speaking, the role of the “heart” in politics seems to me altogether questionable. . . . We both know, in other words, how often these emotions are used in order to conceal factual truth.

아렌트는 감정이 공개되어 정치의 요인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기서 논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혁명론』(On Revolution)에서 연민(compassion)이 혁명적 성격을 만드는 과정의 재앙적 결과를 다루었다고 덧붙인다. "더 많은 아이히만"이라는 문장은 이 편지에 없다. 만화는 이 대목의 취지, 곧 사적인 열정이 공적 영역으로 넘어올 때의 위험을 아이히만과 이어 붙여 압축한 듯하다. 


정리

  • 원문: 아렌트가 숄렘에게 보낸 1963년 7월 24일 편지, 『The Jew as Pariah』 pp. 246–247.
     
    Hannah Arendt, The Jew as Pariah: Jewish Identity and Politics in the Modern Age (『파리아로서의 유대인: 근대의 유대인 정체성과 정치』),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Ron H. Feldman, 1st Evergreen ed., New York: Grove Press, 1978; distributed by Random House. Part III, The Eichmann Controversy, pp. 240–251. 
     
    Internet Archive, jewaspariahjewis00aren (쪽수는 이 판본 기준)
    https://archive.org/details/jewaspariahjewis00aren

  • 같은 말: 민족이나 집단은 사랑하지 않고, 사랑은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점
  • 다른 말: "가족"과 "더 많은 아이히만"

사랑이 사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온라인에서 쉽게 쓰는 '○○을 사랑하는 모임'의 사랑은 어디에 속할까? 아렌트에게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이런 말을 공적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라고 생각한다. 설혹 사랑을 하더라도 말이다. "○○"의 자리에 정치인이, 어떤 집단의 지도자가 들어간다면 ...

사적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취향을 갖지않았다고 비난하거나, 동조하도록 종용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관련 글: 스토리텔링과 지옥문을 연 인터넷

관련 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게르숌 숄렘과 한나 아렌트의 서신 교환

Abstract — Love of Persons, Not of Peoples: Tracing Hannah Arendt's Remark on "Ahabath Israel" to Her 1963 Letter to Gershom Scholem

A line attributed to Hannah Arendt in a graphic biography says she cannot love the Jewish people and that carrying such passion into public life would produce more Eichmanns. This post traces the remark to its source, Arendt's letter of July 24, 1963 to Gershom Scholem, reprinted in The Jew as Pariah (pp. 240–251). Scholem had charged that she lacked "Ahabath Israel," love of the Jewish people. Arendt replied that she has never loved any people or collective, only her friends, and that she merely belongs to the Jews as a matter of course. She also doubts the role of the "heart" in politics. The sentence about "more Eichmanns" does not appear in the exchange; it seems to be the graphic biography's own condensation.

Keywords: Hannah Arendt, Gershom Scholem, Ahabath Israel, Eichmann in Jerusalem, banality of evil, The Jew as Pariah, love of persons, Herzenstakt, public and priv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