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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엽 _ 인간의 길 : The Path of The Human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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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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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5.08.23 옛 블로그(태터툴즈)에 게시했던 글을 웹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것입니다. 황용엽은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강서보고 2학년 때인 1948년 9월 소비에트 학제에 따라 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해, 평양국립미술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50년 12월 6.25전쟁에 따른 강제 징병을 피하려고 대동강을 건너 월남했다. 황용엽의 짓이겨지고, 꺽이고, 묶이고, 비틀려진 인간의 모습은 제국주의적 일본 치하, 사회주의 북한에서 보았던 기독교인에 대한 참혹한 학살과 그후 남한으로까지 이어지는 보복의 행로, 전장의 아수라장과 전쟁에 참여해 상이 군인으로 제대한, (갈 곳 없는 월남한 실향민인) 자신의 삶을 담고있다. 황용엽이 화가로서 이정표가 되는 그림은 1959년의 <여인, 위 그림>이다. 차가운 시선의 두 눈, 기형적이고 비틀어진 팔, 오랜 세월 버려져 두터운 먼지가 쌓은 집처럼 위태롭고 칼자욱 같이 날카롭게 뻗친 선들로 표현된 몸은 언제 흩터져 저 배경 속 물질세계로 딸려들어 갈지도 모르겠다. <마른 소년, 바로 아래 그림>에서 쇠처럼 녹이 슬어버린 듯한 소년과 세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어 보인다.(아래 '부분 확대' 그림을 볼 것) 밀려들어오는 쇠붙이로 된 세계의 흐름 속에 주체가 지워져버리는 듯 하다. 물질성 속에서 주체의 형상은 사라져버린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그림처럼 두텁고 검붉다. 나이프로 짓이겨 쌓아올린 두터운 물감이 물질감을 강화시키고, 단순하고 두터운 색조는 (잭슨 폴락처럼 동적인 물질성과는) 다른 형태의 물질적 추상성을 끌어낸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운동이 아닌 침잠이거나 죽음이 아닐까! <여인, 1959, 가장 위 그림>이나 <변질한 여인, 1960, 바로 아래 그림>에서 칙칙한 물감 더미 사이로 삐져나왔던 선명한 색채를 <마른 소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생명 - 육체와 정신은 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