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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09의 게시물 표시

요즘 관심사 - 독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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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모자이크 - 10점
스티븐 홀츠먼 지음, 이재현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학문적 관심이 없다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나는 8장 디지털의 한계와 9장 모자이크를 재미있게 읽었다. "각기 동일한 것일지라도 다른 맥락에 있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된다."(p.180)

어제 쓴 글에서 현장성/가시성을 이야기하면서 참조하라고 말했던 책이다. 책을 들쳐보니 이 책 내용이 아니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와 <The World As Phantom And As Matrix>(Gunther Anders) 올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범벅이 되어 만들어낸 '착각'이다. 

작년말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생각/주제들이 있다. "매스미디어와 개인미디어의 결합/공생 관계", "현실/사건을 가지고 유령(Phantom)/가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 - 공감, 정서적 연대 등의 관점에서", "개인미디어의 진보적 성격",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입장" 등

지난해부터 관심을 가진 벤야민의 맥락(aura)에 대한 관심이 생각과 독서를 여기까지 진전시켰다.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귄터 안더스>에 대해서는 올초 강의를 하면서 진중권씨의 글을 참조했었고 최근 미국에 있는 선배에게 독일어의 영어 번역본을 받았다. 놀랍게도 11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에세이였다! 아마 진중권씨의 주석이 더 긴듯하다.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맥락을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는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를 읽으면 좋을듯하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것 중 하나이다. 돈벌이만 좇는 미디어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다른 한권은 박영욱의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라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관련된 책이다. '난해한'한 두 프랑스 철학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 훌륭하다. 들뢰즈 책만 책꽂이 한칸을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그를 읽는다며 혼자 앉아 '오해/오독'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 10점
W. 랜스 베넷 지음, 유나영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있다면 꼭 읽어볼 책. 미국에서 뉴미디어을 포함한 미디어산업에 투기적 자본이 들어와 어떻게 망쳤나를 알고 싶어도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10점
박영욱 지음/김영사

창의성/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싶다면 세계/존재 자체가 다양체라는 것을 알면 된다. 쉽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만만찮을 수 있다.


아래는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7.14일 적은 메모가 있다. (메모는 책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임)




"미디어는 노상강도이다. 맥락에서 특정 장면을 빼앗아 온다"
"노상강도가 강탈적으로 만든 세계는 모자이크이다"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텔레비전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 <디지털 모자이크>,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등과 김종철의 <텔레비전과 민주주의>등의 신문기사를 함께 읽으면서 나온 메모이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는 그 뒤에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책 저책 읽다보니 아직도 읽고 있다. 매주 열댓장씩)

이즈음 메모들 사이에 "텔레비전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아동의 정서적, 지적 능력의 정상적 발달을 가로막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김종철의 글(7.25일 한겨레신문)과 아마도 다른 란에서 백은하씨가 <찬란한 유산>을 평가하며 "허구적 매체는 ......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이야기가 쓰여있다.

2009.12.24. 17시 update --------------------------------------------------------

인용한 "문화적 대안"에 대한 이야기는 백은하의 글이 아니다. 백은하가 <찬란한 유산>을 칭찬하며 문화적 대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읽고 있던 <인권의 발명> 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허구적 매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드라마, 공감, 정서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읽고 있었다. 보편적 인권 관념이 어떻게 형성/구성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TV라는 매스미디어가 어떤 진보성을 갖을 수 있는가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기능(이전 같으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을게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개인미디어가 어떤 시각에서보면 사회적 분열을 극심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스미디어(객관적 관념론 경향을 갖음)과 개인미디어(주관적 관념론/유아론적 세계가 될 수 있음)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어떻게 만들까? 요즘 매달리는 화두 중 하나이다.)

"허구적 매체(TV)는 객관적 관념론을 만든다. 2가지 방향으로. 보도/뉴스는 현실을 관념화시켜 보수화하는대로, 드라마는 이상을 관념화시켜 급진화하는 대로. 역도 가능하다. 결국 TV는 보수화 또는 급진화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할지 용법/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사회적(또는 개인적) 선택이며 구조적인 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아래 메모를 볼 것)

인권의 발명 - 10점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돌베개

나는 책을 읽으면 얼토당토 않은 방향으로 읽어댄다. 인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미디어의 논리, "미디어의 효과-경험-정서"라는 것을 읽으려 했다. 세계는 다양체이고, 일원론적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믿음 속에

인터넷/뉴미디어 관련된 일을 하면서 솔직히 백은하의 말보다 김종철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footnote]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footnote]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매클루언의 이해 - 10점
스테파니 매클루언.데이비드 스테인즈 지음, 김정태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 현상에 관심있다면 아래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보다 읽기 편하고, 내용주는 시사점도 더 많았다.


그런 까닭에 무엇보다 "이념(스위치 끄는 곳)"의 문제에 천착하려했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다갔다. (SBS콘텐츠허브 입사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 한해였던 것 같다.)

2008년 말 잡았던 에세이의 순서이다. 벤야민을 통해 다른 미디어 철학/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가지 현상을 분석하기로 했었다.

벤야민
벤야민과 아도르노
벤야민과 매클루언
벤아민과 군터 그라스?
벤야민과 브루디외
벤야민과 플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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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
미세지각
시민종교, 아우라
블로그, 신화적 사고
유동적 자아매몰
흐름, 체험
미디어와 정서
(개인 미디어가 만든) 유아론적 세계
(매스미디어가 만든)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
모자이크와 퍼즐

연초에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0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밤새 글을 쓸 열정도 식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또 여러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8~9월에 다시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5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앞에 썼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잉여가치학설사>의 지대 관련 장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디어2.0>에서 이야기했던 기술지대 개념과 사례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비판적 미디어론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도 긁적댔다.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라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글을 보고 열을 받은 상태에서였다. 박사들도 미디어를 연구하면서 (앞뒤 자르고 말하는) 공력을 쌓았나 철학자들의 주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용비어천가'성 이야기를 유포하는듯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앞의 세이야기의 주제를 합쳐 <기술, 경험, 정서, 그리고 이념의 문제>라는 제목만 지어놓고 이 책 저 책 들척이면서 밤마다 놀고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올해 사 본 책들이다. 이것 저것 들고 띄엄 띄엄 웹서핑하듯이 읽었고, 또 읽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주관적인 매체라는 책"의 내용이 이리 저리 통접(연접+이접)되어 이상한 모습을 띄는듯하다. 한권의 책에서 주는 생각의 연속성이 깨지고 단절과 비약이 심해 비선형적인 웹서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11월 ----------------------------------------------
공간 속의 시간(도시사 연구 총서 1)(양장본) 외 3개
텔레비전과 동물원
미술사의 역사
기나긴 혁명 (문화사, 대중문화에 대해)
벤야민 & 아도르노(지식인마을30) 외 2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데리다 들뢰즈)

10월 ----------------------------------------------
미디어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가 외 2개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디지털 모자이크>에서 말한 '모자이크'에 대해 역사/예술 내에서 알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기술지대의 발생 동력인 기술혁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9월 ----------------------------------------------
공론장의 구조변동: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외 3개 (부르조아 미디어/공론장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 알기 위해)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비평정신1)
유혹하는 에디터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군림천하. 21

8월 ----------------------------------------------
참회록(성 어거스틴의)
인권의 발명
디지털 모자이크

7월 ----------------------------------------------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외 3개
비판과 화해(아도르노의 철하과 미학)
미술의 불복종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군림천하. 20
강연과 논문 - 마르틴 하이데거 (이학문선 03)(양장본) 외 1개
비트겐슈타인(하룻밤의 지식여행 51)

6월 ----------------------------------------------
군중심리(완역본) 외 4개 (인터넷에서의 군중심리를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해 보기 위해)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 (시민종교로서의 미디어, 공감과 연대에 대한 접근법을 보기 위해)
이미지시대의 역사기억
텔레비전론
생각의 탄생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 미세지각에 대한 사례를 보기 위해)

5월 ----------------------------------------------
진중권의 이매진 외 2개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촛불에 길을 잃다: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정권퇴진 운동까지 (촛불반대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 구입한 책, 진보적이라 생각한다면 사보지 말것)

4월 ----------------------------------------------
몸의 역사(살림지식총서 274) 외 1개
휴대폰이 말하다(아로리총서 4)

3월 ----------------------------------------------
서양 미술사. 1 외 1개
일방통행로

2월 ----------------------------------------------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외 3개 (맥루한에 관심이 있다면 이책을 볼 것, <미디어의 이해>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자본주의적 문화, 예술론의 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 행진 (예술에서 모작, 원본이 없는 기술적 복제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빠의 몰락

1월 ----------------------------------------------
문화예술경제학 (예술, 문화의 경제학적 함의를 살피기 위해, 기술지대 관련)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폭력에 대한 성찰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부커진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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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TV용 쌍방향서비스의 차별성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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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22) IPTV "인터랙티브 융합콘텐츠" 개발 결과물 평가에 참여했다. 왜 이런 것에 세금을 사용해서 지원해야할까? 또 실제 이 서비스가 상용화되어 서비스될까? 이 분들이 얼마 벌고, 몇명이 서비스를 가입하고 등 제시하는 목표가 달성될까? 평가에 참여하면 거의 매번 이런 생각이 든다.

공무원(관료)들은 예산을 세우고 이것을 쓴 정도에 따라 평가받고, 집행된 것이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해서는, 즉 사후관리는 거의 없는 것이 IPTV든 IT 관련된 시범사업들의 관행인듯 하다.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행정학과 교수분이 관료조직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몇가지 들어 설명해주셨는데 그렇다면 대부분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럴수록 더 더욱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이런 일을 할까? 이 돈으로 차라리 학교무상급식을 하든, 어려운 가구들을 돕는 것이 났지않을까? 

정부가 아니면 이런 저런 선도적인 서비스나 사업을 누가 만들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만일 이것이 도로를 닦는 것과 같은 공공재 성격이 크면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공공재라기보다 사적 성격이 훨씬 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정부 지원이 없다면 안할 서비스들이라고도 한다. 왜 안하냐면 시장성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부의 용역을 받은 전문가 집단들이 과제를 염출하고 정부가 이 과제를 기준으로 지원을 하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사기업에 근무한다. 나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면 자신들이 할 일들을 정말 시장성이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니면 단순히 개발비를 타기 위해 제안을 한다. 혁신, 선도는 예산을 만들기 위한 수사처럼 보이는 것이 더 많다.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지만 '정부 돈'을 '눈 먼 돈'처럼 생각한다.

결국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관료들이 눈이 먼 것아닐까?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런 저런 생각하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평가시스템 문제이다.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하는 것 중심이 아니고, 해당 예산이 잘 쓰였는지를, 그것도 회계년도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추적관리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쪽으로 쏠린다. 

어떤 과제, 일을 담당했던 사람의 이력을 관리하자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IT 관련된) 정부의 예산이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려면 그해 그해의 산출물(구현물)들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돈 = 국민세금"을 받는 분들이 실제 약속(제안)을 지키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언제가 이런 이야기를 과제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했다가 좀 썰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어느 한분은 관료들이 평가받고 다른 자리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속적 관리가 안된다는 현실론도 이야기하셨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특정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생각보다는 "지원을 받는 업체의 진정성"을 살펴보자는 것이 더 강하다. 

내가 보기에는 "정부 관료와 이들의 유착"이 이런 문제를 낳는다. 사기업이나 국가 정책기관들(연구소 등)이 관료를 속된 말로하면 '꼬시고' 산업을 부흥시킨다는 명목으로 예산을 만든다. 관료도 자신의 예산을 만들고 부서나 일의 존속을 위해서 이런 '꼬임'을 싫어하지 않거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말도 않되는 일을 하자고/해야한다는 보고서를 쓰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하자는 이야기는 이런 유착(공생?)을 증거를 가지고 끊어내자는 주장에 가깝다. 어제한 과제가 모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이런 것에 정부에서 돈을 몇억씩 지원해야하는가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원을 받아 서비스를 만들어 국민들 전체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할 때 그해의 예산만이 아닌 과거에 같은 종류의 예산이 투여되었던 사업들의 결과를 꼼꼼히 챙겼으면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해 올해의 예산, 또 내년의 예산을 통제할 수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예산을 넣었지만 효과가 없는 사업, 예산만 따먹고 또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업들을 찾아내 필요한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증거들을 찾을 수 있다.

방통융합 관련된 과제들에 정책자금이 지원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편협된 주관적인 생각이라 애써 눈을 감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오늘 펜을 든 것은 아니다. 10개 업체의 서비스/콘텐츠를 평가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놓고 싶어서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었다.

오늘 평가에서 IPTV를 이용한 교육 관련 콘텐츠들이 많았다. 방과후학교, 사교육비 경감, IPTV 등의 화두가 결합되어 정책자금이 지원된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용 콘텐츠가 DVD 교육 타이틀이나 현재 인터넷(PC)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들을 TV로 옮겨놓는 수준이었다.

DVD, PC/인터넷과 다른 IPTV만의 쌍방향성, 차별성은 무엇일까? 오늘 본 교육용 콘텐츠들은 대부분 영어를 기본으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유아 대상의 서비스들이었다. 유치원, 초등학생 대상의 서비스들은 CUG(Close User Group) 서비스였다. 평가위원들이 지속적으로 TV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물었지만 참여업체들이 명확한 대답 내놓지못했다.




모두 모른다는 것이 답일듯 하다. 그런데 평가를 하면서 차별성이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①(여러장소에서) 여럿이 모여 함께 볼 수 있는가, ②교육자에겐 피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겐 교육자의 가시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가가 아닐까?

①번은 사실 방송의 정의와 관련있다.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방송이 아닌가? 그리고 '함께 보기(공동시청)' Lean Back 매체, 거실매체인 TV의 중요한 (경험적) 속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이런 점에서 PC보다 더 집단적 참여지향적이지 않을까? (매클루언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②번은 인터넷이 가진 쌍방향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현장성/가시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가시성도 인터넷보다는 TV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이다. (<디지털 모자이크>에서 실시간 보도/뉴스에 대한 논의를 볼 것)

하지만 이런 것이 맞다면 구현된 모든 서비스가 ②번(인터랙티브)에 대한 이해는 있었어도 ①번(방송)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래서 또 융합은 어렵고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듯하다. 이것이 부족한 것은 잡종적 사고, 경험을 가진 사람이 드문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동일 내용의 매체간 이동, 번역 수준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TV용 교육콘텐츠에 대해 몇가지 더 첨언한다면 인터랙티브를 이용해 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유아의 수준을 체크해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하고(맞춤형 콘텐츠), 친숙한 캐릭터 등의 활용, 고품질 영상의 활용 등이 따라 붙어야한다.

서비스 환경/사업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떠올랐다. CUG로 4개정도의 유치원을 모아 원어민이 참여하는 영어교육을 할 때, 2,000~3,000개의 유치원을 대상으로 한다면 도대체 몇개의 채널이 필요할까? 사업성이 있을까? 이것도 정권이 요구하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정책코드와 IPTV를 끼워 맞춰 억지사업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제안한 콘텐츠 제작/서비스 업체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들의 진솔한 대답을 듣고 싶다. 우리회사에서 TV포털을 만드는데 배경으로 깔리는 (네트워크 자원 때문에) 동영상 채널 하나를 더 줄 수 없다고 말하는 통신사/플랫폼 사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