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에서 현장성/가시성을 이야기하면서 참조하라고 말했던 책이다. 책을 들쳐보니 이 책 내용이 아니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와 <The World As Phantom And As Matrix>(Gunther Anders) 올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범벅이 되어 만들어낸 '착각'이다. 작년말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생각/주제들이 있다. "매스미디어와 개인미디어의 결합/공생 관계", "현실/사건을 가지고 유령(Phantom)/가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 - 공감, 정서적 연대 등의 관점에서", "개인미디어의 진보적 성격",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입장" 등 지난해부터 관심을 가진 벤야민의 맥락(aura)에 대한 관심이 생각과 독서를 여기까지 진전시켰다.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귄터 안더스>에 대해서는 올초 강의를 하면서 진중권씨의 글을 참조했었고 최근 미국에 있는 선배에게 독일어의 영어 번역본을 받았다. 놀랍게도 11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에세이였다! 아마 진중권씨의 주석이 더 긴듯하다.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맥락을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는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를 읽으면 좋을듯하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것 중 하나이다. 돈벌이만 좇는 미디어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다른 한권은 박영욱의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라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관련된 책이다. '난해한'한 두 프랑스 철학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 훌륭하다. 들뢰즈 책만 책꽂이 한칸을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그를 읽는다며 혼자 앉아 '오해/오독'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7.14일 적은 메모가 있다. (메모는 책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임) ![]() "미디어는 노상강도이다. 맥락에서 특정 장면을 빼앗아 온다" "노상강도가 강탈적으로 만든 세계는 모자이크이다"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텔레비전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 <디지털 모자이크>,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등과 김종철의 <텔레비전과 민주주의>등의 신문기사를 함께 읽으면서 나온 메모이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는 그 뒤에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책 저책 읽다보니 아직도 읽고 있다. 매주 열댓장씩) 이즈음 메모들 사이에 "텔레비전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아동의 정서적, 지적 능력의 정상적 발달을 가로막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김종철의 글(7.25일 한겨레신문)과 아마도 다른 란에서 백은하씨가 <찬란한 유산>을 평가하며 "허구적 매체는 ......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이야기가 쓰여있다. 2009.12.24. 17시 update -------------------------------------------------------- 인용한 "문화적 대안"에 대한 이야기는 백은하의 글이 아니다. 백은하가 <찬란한 유산>을 칭찬하며 문화적 대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읽고 있던 <인권의 발명> 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허구적 매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드라마, 공감, 정서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읽고 있었다. 보편적 인권 관념이 어떻게 형성/구성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TV라는 매스미디어가 어떤 진보성을 갖을 수 있는가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기능(이전 같으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을게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개인미디어가 어떤 시각에서보면 사회적 분열을 극심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스미디어(객관적 관념론 경향을 갖음)과 개인미디어(주관적 관념론/유아론적 세계가 될 수 있음)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어떻게 만들까? 요즘 매달리는 화두 중 하나이다.) "허구적 매체(TV)는 객관적 관념론을 만든다. 2가지 방향으로. 보도/뉴스는 현실을 관념화시켜 보수화하는대로, 드라마는 이상을 관념화시켜 급진화하는 대로. 역도 가능하다. 결국 TV는 보수화 또는 급진화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할지 용법/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사회적(또는 개인적) 선택이며 구조적인 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아래 메모를 볼 것) ![]()
인터넷/뉴미디어 관련된 일을 하면서 솔직히 백은하의 말보다 김종철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1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무엇보다 "이념(스위치 끄는 곳)"의 문제에 천착하려했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다갔다. (SBS콘텐츠허브 입사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 한해였던 것 같다.) 벤야민 연초에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0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밤새 글을 쓸 열정도 식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또 여러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10월 ---------------------------------------------- 9월 ---------------------------------------------- 8월 ---------------------------------------------- 5월 ---------------------------------------------- 3월 ---------------------------------------------- 2월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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