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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삼국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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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디어 삼국지』(김영환, 삼성경제연구소, 2007)를 읽었다. 저자는 필자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위치에 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읽고 있다. 같다는 것은 저자나 필자는 모두 SBS 미디어 그룹의 우산 아래 있으면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는 것이라면, 다른 위치는 '조직 관리와 전략을 담당하는 SBS 보도본부 특임부장'과 SBSi에서 전반적인 뉴미디어 서비스 전략을 담당하는 미디어기획팀장으로서의 위치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결론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 미디어 삼국지 - 김영환 지음/삼성경제연구소 |
이런 차이를 조직의 건강성이라고 애둘러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서 있는 기반이 다르다는 것과 함께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들의 상이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법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살아온 저자와 철학을 공부하고 IT 및 인터넷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해온 필자 사이에는 책의 내용을 넘어서 글을 써가는 방법, 형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느껴진다.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가 어떤 사건과 거리를 두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면, 필자는 『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에서 사건에 논쟁적으로 개입하고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 또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집중된 저자와 달리 필자는 뉴스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콘텐츠 전체의 유통방식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필자의 『미디어2.0』 머리말에 언급한 "우연히 뉴스 관련 전략수립 과정에서 국외자로서 짧은 의견을 내게" 한 분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이다.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필자는 TV방송(전통미디어)이 인터넷 포털과 현재와 같은 뉴스 생산, 유통방식을 가지고는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YTN이 아닌 이상 24시간 뉴스를 내보낼 수 없다는 편성상의 한계와 더불어 플랫폼의 폐쇄성, 전통적인 방송/신문 등이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당파성(입장) 등이 개방된 뉴스 플랫폼인 포털과의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경쟁환경을 떠나 경쟁의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자로서 저자의 고민과 국외자로서 필자의 상황판단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상황판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고향을 뒤에 두고 떠날 수 없는 저자에게 답답함을 더했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했으리라. 그런데 필자는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서 상황판단이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한 언론 기업이 TV와 신문, 인터넷,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을 경우 각 매체별로 필요한 뉴스를 생산하는 조직(뉴스룸)을 별개로 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로 합쳐서 원소스 멀티유스를 구현하자는 아디어가 통합뉴스룸이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되면 기자는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이른바 멀티미디어 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들이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적/물적 투자가 요구된다. 다수의 뉴스룸 운영에 비해 효율성이 높더라도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 통합뉴스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기자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기자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경영진으로서 결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소비자와 매체 환경의 변화는 통합뉴스룸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과도 같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하는 언론사라면 통합뉴스룸 이슈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는 통합뉴스룸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듯 하다.
하지만 저자도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의 언론 소유와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는 외국의 선진기업(아니 거대 미디어 그룹)에서 추구하는 통합뉴스룸이 한국적 현실에서는 목숨을 건 일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저자는 미디어 비즈니스세력(통신사나 포털)이나 개인 진영(블로거 등)과의 동거라는 '이상적 모델'을 그려보고 있다.
이런 미래상이 좋아 보일 수는 있어도 요원한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디어 비즈니스세력들 중 뉴스 콘텐츠에 있어서 (온라인에서 그리고 점점 더 오프라인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털들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법적, 사회적 규제'를 받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런 융합은 어려울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네티즌들의 90% 정도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현실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이솝우화의 왕이된 까마귀 이야기처럼 전통미디어의 콘텐츠를 모아 붙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아 붙인 까마귀가 가장 아름다운 새로 뽑힌 것과 같은 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새들이 각자 자기 깃털을 뽑아가버리자 초라한 까마귀의 모습이 드러난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은 이런 역관계를 알고 이것을 뒤집으려는 전통미디어들의 대응, 특히 신문사들의 뉴스뱅크 콘서시엄과 같은 대응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아직도 화산이 폭발하고 격렬한 조산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계속 유지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또 개인 미디어(블로거 등)는 그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의제를 이끌어내는 힘과 신뢰성에 있어서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사건/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 웹에 캐스팅한 콘텐츠가 갖는 신속성이란 우연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따름이다. 미국의 Current TV와 같은 시도들을 보면 블로거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프리랜서들(또는 PCC, VJ 등으로 불리는 직업적 콘텐츠 생산자들)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이동한 측면이 크다.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위대함'은 전체를 향해 개인이 자신들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일 따름이다. 언젠가 전체가 개인을 위해 개인이 전체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가능성, 다양성과 투명성의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릴 콘텐츠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개인 미디어의 미래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마이뉴스 패러독스'를 통해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더 크게 요구받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 편집자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기능이 필요해진다. 이로써 시민기자의 기사가 메인 페이지톱에 오르는 기회는 줄어들고 상근기자의 비중이 높아진다. 시민언론이 성공하여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전통 언론의 발목을 잡는 신뢰성의 시험에 들게 되고, 순수한 시민언론으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면서 시민기자들의 참여도가 낮아져 영향력은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린다. 이를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으며, 곧 망할 것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측면이 강한데 사실 언제나 기술에 의해 매체(미디어)가 뒤바뀐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없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전통미디어는 뉴미디어를 만나 스스로 새로워지기도 하고, 뉴미디어가 전통미디어의 양식을 흡수하면서 변하기도 한다. 포털의 많은 경영진이 전통미디어의 기자출신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을 데려다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할 때 필자는 그들도 미디어의 세계를 이룰 여럿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더 강조점을 두고 이해한다. (필자가 출장 중 쓴 유튜브의 미래에 대한 글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서있다. 호들갑 떨지말고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이 힘들고, 미디어 비즈니스 세력이나 개인 진영과의 연대가 진화 중인 미디어 세계에서 불명확하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냥 안된다고 말하고 '앉아서 죽자'는 것인가? 필자는 본원적인 경쟁력을 기르자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뉴스 콘텐츠를 잘만들라는 것인데 여러 매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뉴스, '원소스멀티유즈'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짧은 토막기사, 문자중계하듯 이어지는 뉴미디어의 휘발성에 대응해서 심층적인 취재와 명확한 분석,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방송 뉴스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자의 경쟁력, 뉴스의 경쟁력은 모두 이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소스멀티유즈의 문제 등의 유통의 문제는 달리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기자가 통합뉴스룸을 만들어 모든 매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사, 콘텐츠를 생산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방송된 원재료(생산된 뉴스)나 방송은 안되었지만 취재된 내용을 이용하여 이것을 가공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자가 불필요할 수도 있고, 다른 조직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 현재의 수준에서는 '멀티유즈'를 위한 전문조직, 기능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멀티유즈의 문제는 아주 기술적이거나 기능적인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대미디어그룹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통합과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양식으로 생산된 콘텐츠를 융합하는 것보다는 방송된 콘텐츠, 또는 씌어진 신문기사의 재사용(reuse)이 현재 요구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는 방송기자에게 취재,촬영도 하고 신문기사나 잡지기사를 쓰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고 이것을 요구해도 표출할 매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해외사례를 보면서 이런 요구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도 힘들어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지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는 것은 쉽지않기 때문이다. 방송에는 장기간 만들어진 방송의 양식이 있고, 신문에는 신문의 양식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는 인터넷의 양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IPTV나 DMB가 활성화된다면 그곳에서는 기존의 미디어와 같으면서도 다른 어떤 형식, 문법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웹이 그러한 것처럼. 차이와 한계를 인정할 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노력보다 현재 잘하는 것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탁월성을 끌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일은 아닐까?
저자가 뉴스, 미디어의 세계/관점에서 벗어나 전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가치판단(저널리즘)이 담겨진 뉴스에서 벗어나 좀 더 추상화된 콘텐츠/디지털 콘텐츠의 측면에서 사태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 있다. 걱정과 위기, '미래가 불안한 기자'의 시각, 집단적 동류의식에서 벗어나야 전체의 변화를 좀 더 심도깊게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은 전세계적인 저널리즘/미디어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처방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집단적 환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떻게 슈퍼맨/원더우먼이 될 것인가?
방송의 본원적 경쟁력, 또는 기자들이 생산한 뉴스 콘텐츠의 본원적인 경쟁력이 전제되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강력한 뉴스 브랜드를 통해 뉴미디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이 브랜드 우산 아래 현재 발전 중인 온라인 독립언론 매체를 흡수할 수도 있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인참여의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뉴스룸 아래의 통합이 아닌 브랜드 아래의 통합을 추구할 수도 있지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생존을 위해서는 성문을 열고 광야의 전투에 나서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한걸을 더 나가 성을 가치를 새롭게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생존을 위해 진지로서의 성의 가치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광야의 전투에 보급과 새로운 병사,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는 튼튼한 성을 갖고 있다면 누구보다도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이다.
기동전과 진지전을 모두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광야의 적을 찾아 성을 버리고 나가는 장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법적, 제도적 보호막인 성을 높이 쌓는 전략도 유효할 수 있다. 적어도 이런 보호막이 서서히 제거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도 있을 수 있다. "성을 열고 광야의 전투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하면 적(경쟁상대)의 논리에 빠질 위험도 있다. 광야에서 거칠게 자란 상대의 입장에서야 이렇게 나온다면 손뼉을 치면서 반길 것이다. 상대들은 지금 성을 버리고 나와 정정당당하게 겨루자고 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상대의 전쟁기계(자본주의적인 비즈니스)가 더 강하다는 것은 저자도 아는 상황이다.
결국 필자는 저자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만 그 해결책, 또는 대응방식은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미디어의 작법(성을 위주로한 공성전)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고, 광야에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동전식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을 가지고 있다면 성을 버리는 것이 '시대의 미덕'처럼 떠벌이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성을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처지가 틀린 해외의 거대 미디어 그룹을 따라해야할 이유도 없다.
그저 원칙을 견지하면서 긴 호흡으로 현재의 변화들, 사건들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지금보면 혁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예기가 꺽이거나 여러개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는 사태를 그렇게 보고 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성마른 논리들이 횡횡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물론 변화의 시도들을 전혀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보다도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싸움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최후까지 살아있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고 이해의 끈을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또 개인들(기자들, 특정조직)의 위기감이 조직 전체(드라마, 예능, 교양 등의 다른 콘텐츠/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조직)를 감염시키지 않도록해야 한다. (뉴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윈도우와 기회가 오는 것일 수 있고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하기 나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 자체는 미디어 사업자가 아니지만 각종 미디어 단말기(device)를 만드는 전기, 전자 회사들은 향후 미디어 정책과 업계의 향방에 결정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들 중 많은 업체들이 이미 미디어 사업자이거나, 미디어 사업자가 되길 꿈꾸고 있다. 필자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세력, '보이지 않는 위협'을 꼽으라면 이들을 말할 것이다. 이들은 개방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언제든지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설정 또한 전략적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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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저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도 그 정도(고민의 강도)를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은 서로가 느끼는 위기감에도 해당될 것이다. 저자의 고민 중 한조각이라도 나눠들 수 있었으면......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상대들도 별 두려울 것이 없는 살과 피로 된 사람들이며 똑같이 새로운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어리숙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위협은 두려움에 찬 비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을 갖았다면, 우리의 말들은 성안 갇혀 있어 달리는 법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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