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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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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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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한신대),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관하여>, 브레히트와 현대연극을 읽으며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 중 '원근관계의 착종현상'을 설명하며...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를 예로 들어보자. 그림 속에서 우리는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일원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원성은 그림 속의 등장 인물을 어떠한 장소에 국한시키지 않고 있다. 등장 인물은 가까이 서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러니까 성모가 위치한 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커튼은 어떤 아우라를 형성시키고 있는 틀로 작용하고 있는데 , 성모가 커튼 앞에, 혹은 커튼 사이에, 혹은 커튼 뒤에 둥둥 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성모는 내려오는 듯이 솟아오르고 계시며. 천국에서 내려오면서도 상승하는 것 같다. 성모가 계신 곳은 한마디로 납치 당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귀향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광스러운 성모의 특성은 둥둥 떠 있는 상태인데, 파우스트에서 이와 근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pp.135~136 (인용 그림위치: http://l-club.lesvacances.co.kr/premium/focus/view.asp?premMenuFlag=T&premGubn=F&fcusSeqnCode=20060710162953&fcusThemCode=00001#top)후자의 이것(자연적 대상에 대한 아우라-역주)을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먼 곳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서 휴식하는 사람은 그림자를 드리운 먼 지평의 산맥 그리고 나뭇가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때 산맥과 나무 가지의 아우라는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숨쉬고 있다. pp.134~135 (원문: 발터 벤야민,
김하우 교수, 인도철학사, 춘일계명
"저녁에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에또, 고향집을 생각하는 갖 시집온 색시의 마음을 감싸주는 부엌신 ..." 종교와 아우라에 관한 탁월한 연결점을 보여주는 사례?
예술작품은 오래 전에 마법, 주술 등과 같은 종교적 제식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랫동안 일회적이고도 신비로운 독창성이라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독창성은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생적 권위인데, 관찰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없듯이, 예술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상 역시 함부로 쳐다볼 수 없다. pp.129~130
☞이런 관점으로 위 그림을 볼 것. 그리고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분위기'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것. 신의 얼굴... 이 부분에서 이정우의 <세계의 얼굴>에서 분석한 안면성 관련 부분이 떠오른다.
예술작품은 오래 전에 마법, 주술 등과 같은 종교적 제식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랫동안 일회적이고도 신비로운 독창성이라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독창성은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생적 권위인데, 관찰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없듯이, 예술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상 역시 함부로 쳐다볼 수 없다. pp.129~130
☞이런 관점으로 위 그림을 볼 것. 그리고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분위기'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것. 신의 얼굴... 이 부분에서 이정우의 <세계의 얼굴>에서 분석한 안면성 관련 부분이 떠오른다.
자생적 권위 p.130, 자생적 작품 p.132. 여기서 말하는 자생적은 자연적(자연의 미와 같은 자연)에 해당한다.
아도르노의 발터 벤야민 해석에 대하여 pp.132~133에서 살피고 있다.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에 대한 언급과 인용도 있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현상을 설명하며...
아우라의 경험이란 인간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반응 형식을 인간에 대한 생명없는 무엇 혹은 자연의 관계로 이전시키는 데 근거한다. 누군가에 의해 바라보이는 자 혹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는 자는 눈을 부릅뜬다. 우리가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부릅뜰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p.136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아우라의 경험은 자연적 풍경, 유년 그리고 시대상 등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 내지 착종을 통한 어떤 가능한 화해의 상을 암시한다. p.137
아우라의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을 통해서 드러나는 갈망의 구조이다. p.138
"부릅뜬 눈"을 듣는 순간 무의식 중에 이철규와 관련된 일련의 이미지들, 냄새들, 상황들이 떠올랐다. 80년대와 90년대 초의 시대상에서 발견되는 경험들이 나타난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특정 아우라가 개념화 되어 표현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교적 제식에의 참가자가 홀연히 느낌는 체험... 이런 측면에서 벤야민은 신비주의적이다.
은폐의 발현과 매개 현상을 설명하며...
만약 우리가 무의지적 기억 속에 자리잡은 채 직관의 대상들을 모으려고 애를 쓰는 상상들을 '아우라'라고 명명한다면, 직관의 대상에 있는 아우라는 어떤 연습으로서의 실용적 대상으로부터 일탈되는 경험과 일치한다. p.138 --- 그밖에 그것들[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 - 역주]은 일회적이다. 즉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아우라 현상의 주술적 특성을 투영시켜주어야 한다. 본직적으로 멀리 있는 것은 근접 불가능하다. 실제로 근접 불가능함이란 종교적 제식에 관한 상의 어떤 주요한 특징이다. p.139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일회적이다", "빠져나간다"는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킨다. 아우라는 체험적/경험적이다. 특정 사이트의 특정 페이지(패러디나 영상물에서)에서 아우라가 존재한다면 아주 일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는 다른 사람이 동일한 곳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에게는 체험이 없는 것이다. 김진우교수의 궁(MBC 드라마인 궁에 대한 UCC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한 논의들을 발터 벤야민의 <얘기꾼과 소설가>(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를 비교하면서 읽어 볼 것. '부릅뜬 눈'이란 말에서 내가 이철규를 떠올릴 때,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거나, 또 다른 상황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라가 이런 방식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구가 있다.
"의지적 기억"이 일상에 바탕을 둔 것이며, 과거의 체험에 국한된 것이라면, "무의지적 기억"은 우연히 떠오른 - 현재의 심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은 - 과거에 대한 내밀한 경험이다. p.139
이것을 보면 단순하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떠올리며 현재의 심적 상태가 태풍 속에 휘감겨드는, 또는 현재 심적 상태가 고양되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심적 상태의 태풍 속에 휘감겨들어 융화되어 something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은 예를 들면 생명이 깃든 자연의 모습,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 주객적인 조우일 수 있으며, 나아가 신을 바라보는 일종이 접신론적 광휘이거나,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경험일 수 있다. p.141
어제(10/6) <판의 미로>를 보았는데 처음부분에 이와 관련된 동일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흐른다. 그리고 햇빛(이성)을 본 공주의 기억 상실을 이야기 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식, 아우라에 대한 평가부분(p.141~143)과 햇빛, 기억상실 등에 대한 판의 미로의 이야기 구조를 연결시켜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승리자의 손에 의해서 진척되었다. 의지적 기억은 현대사회의 주어진 제반 현상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벤야민에 의하면 인간의 일상적 현재 삶과 밀착되어 있을 뿐, 역사의 퇴행에 의해서 상실되거나 망각된 과거의 순수성 내지 이상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유년, 근원 상으로서의 자연, 과거의 황금의 시대 등은 오로지 무의지적 기억에 의해서 떠오른다. p.141" 공주는 자신이 공주였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육체(반달 모양의 어깨에 있는 점)와 요정들이 살아 숨쉬는 자연은 알고 있다. 꿈과 같은 요정과의 관계를 통해서 유년, 근원, 지하왕국으로 다가간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코 총통이 지배하는 파시즘하의 스페인이다. 주인공의 양부인 대위에게서 히틀러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 지점에서 벤야민에 대한 비판과 확장을 시작할 수 있다. 의식적인 것(이성)들에 대한 부정(이런 것들은 바이마르공화국과 히틀러의 나찌즘을 겪는 비판적 독일 지성인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무의지적/무의식적인 것과 과거의 기억 등에 대한 강조가 될 수 있다. 아우라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상황(심적 상태)과 관계를 맺는다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흐가 하며, 박설호는 에세이의 말미에서 벤야민과 블로흐를 비교하고 있다. 미래와 연결되면 목적론으로 귀결되기 떄문에 연결시키지 않았을까? 왜일까? 미래의 심적 상태라는 것은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확장은 정말 아우라가 체험적인 것이지 표기(개념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체험적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벤야민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 아우라가 사라지거나, 감소해도 영화와 같은 양식이 약하더라도 체험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이부분은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강조와 함께 소외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외도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외는 어떤 하나의 완결적인 상황을 전제하며 과거에 기반한다. 왜냐하면 ~에서 소외되었다에서 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빠져나가 소외로 빠져드는 과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특정한 이상 상황을 전제하는 것과 같은, 목적론처럼 보이는 측면)에서 나는 소외에 대한 논의를 '싫어'한다. 이런 생각은 대학교 3,4학년 아니면, 졸업 후부터,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것이다. 소외와 목적론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을 것같다.
아우라에 대한 사전적 정의
아우라는 유일한 원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복제되는 작품에는 아우라가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아우라는 종교 의식에서 기원하는 현상으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 so nah sie sein mag)"이라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에서도 과거의 종교적 숭배가 세속적인 미의 숭배로 대체되었으므로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보았다.또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진이나 영화처럼 현존성이 결여된 작품은 아우라가 없다는 것이다. 독특한 거리감을 지닌 사물에서만 가능한 아우라는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 '유일한 원본'을 '유일한 사이트(일반적인 사이트가 아닌 디씨인사이드와 같이 독특한 기풍/아우라을 지닌 사이트)' 읽어볼 것. 구전설화와 같이 증식하는 디지털 콘텐츠.. 연세대 김진우교수의 UCC 콘텐츠에 관한 분석
☞ 이런 느낌, 생각을 '아우라'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같다라는 지은숙씨 지적.. 속초가는 길 밤샘 대화 중.. 이런 지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우라'라는 개념 안에서 '아우라의 부활'로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함께 든다. 미묘한 뉘앙의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를 집어내 다시 개념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
발터 벤야민 주요저서
"Goethes Wahlverwandtschaften;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1928 veroffentlicht), "Einbahnstraße" (1928)"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vollstandig herausgegeben 1956)
"Passagenwerk" (fragmentarisch geblieben, postum veroffentlicht)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6)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193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1937)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반성완 외 역, 민음사, 1983
우연히 발견한 글들 --------------
발터 벤야민 에세이를 게시한 블로그: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
디지털과 생성, 아우라를 연결한 진중권의 글: '생성 이미지' 디지털시대 대중의 취향 예고[진중권의 상상] <3>복제에서 생성으로3>
세상에 없는 피사체 촬영한 듯… 사진같기도 그림같기도
후기산업사회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에 이별 고해
강형구 작품 인물들의 쏘아보는 시선서 '아우라' 느껴져
아우라의 파괴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④
진중권의 현대 미학 강의-숭고와 시뮬라르크의 이중주 (진중권, 아트북스 출판사, 2003)
디지털 복제 시대의 문화(2) (백욱인, 1997)
동시대 미학 50문답 (막 지메네즈, 임연 역, 서광사, 2003, 29번째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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