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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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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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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의 대항해, 지식인들의 망명 1930~1965』, 개마고원, 2007
9월 29일부터 지식인들의 망명을 읽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을 떠나 영미로 망명한 지식인들에 관련된 사회사상사이다. 비트게슈타인, 보르게세, 노이만, 아렌트,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르트만, 에릭슨 등에 대한 이론소개, 평가, 약전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 내용은 읽기 쉽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배경·시대적 맥락에 대한 소개가 좋다. 스튜어트 휴즈가 지은 총 3권으로 되어있는 서구지성사 3부작 중 한 권이다.
![]() | 지식인들의 망명 - ![]() 스튜어트 휴즈 지음, 김창희 옮김/개마고원 |
발터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주변 인물들은 연관관계를 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중문화, 복제, 기술 등에 대한 20세기 초기의 철학적 생각을 정리하고 "아우라 부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읽은 부분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에 해당되는 2장 <대이주의 서곡 - 영국의 철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책에서 알지 못했던 그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2.0-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p.35의 "언어놀이(spradhspiel)"에 대한 설명
언어 게임이란 어린이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의 언어형식이다. 언어 게임의 연구는 원시적인 언어형식 혹은 원시적인 언어의 연구이다. 만약 우리가 진위, 명제와 실재의 일치여부, 주장·가정·질문의 성질 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면, 이러한 사유형식들이 고도로 복잡한 (현대의) 사고과정처럼 우리를 혼란시키는 배경을 갖지 않는, 그런 원시적인 언어형식을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단순한 언어형식을 보게 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사용을 둘러싸고 있는 정신의 안개는 말끔이 걷힌다. 우리는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본다. 우리는 또 한편으로 이 단순한 과정들 속에서 우리의 보다 복잡한 언어형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어형식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시적인 언어형식에다 새로운 형식들을 점진적으로 더붙여 나감으로써 복작한 형식을 세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p.75
웹2.0의 "집단지성"(<미디어2.0>, p.35를 볼 것)은 아주 "원시적인 언어형식"으로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기대할 수 있도록하는 "언어게임"이다.
사진 속의 비트겐슈타인과 책 속의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이 길들여졌다거나 그가 '정상적인' 학자로 변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는 여전히 외적 형식을 대할 때와 똑같은 혐오감으로 대학생활의 관습을 피했다. 그는 트리니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식사하려 하지 않았고, 또 교수처럼 행동하거나 옷을 입으려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비트겐슈타인이 정장하고 넥타이를 매거나 모자를 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갸름하고 갈색이었으며, 그의 옆모습은 약간 굽은 듯하면서도 매우 수려했다. 그의 머리는 숱이 많은 갈색 곱슬머리로 덮여 있었다.
강의할 때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든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강세를 넣어서 독특한 어조로 말했다. 간혹 그의 구문 중간에 독일어투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그는 교육받은 영국인의 억양이 포함된 훌륭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의 목소리는 맑았고 음조는 보통 남자의 목소리보다 약간 높았지만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언변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아주 표정이 풍부했다. 그의 눈은 그윽했고 종종 무엇인가를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은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에게 그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조금이라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지독한 고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학자로서의 경력에는 잠정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미가 엿보였다. 1930년대 중반에 그는 소련을 방문해서 그곳에 놀러앉으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자 그에게 대학생활의 일상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 의료기술자로 복무함으로써 자신이 항상 존경해오던 물리적 사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청년기의 연구주제는 공학이었으며 일생 동안 기계를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다. 전쟁이 끝나자 2년 동안 교수직에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94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이런 사람에게 그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조금이라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지독한 고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학자로서의 경력에는 잠정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미가 엿보였다. 1930년대 중반에 그는 소련을 방문해서 그곳에 놀러앉으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자 그에게 대학생활의 일상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 의료기술자로 복무함으로써 자신이 항상 존경해오던 물리적 사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청년기의 연구주제는 공학이었으며 일생 동안 기계를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다. 전쟁이 끝나자 2년 동안 교수직에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94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그는 아직 60대 전이었는데 실제보다는 젊어보였다. 그러나 마치 앞으로 살날이 수 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하던 작업을 완성시키는 데 그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극도로 민감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은 그의 지적인 생활을 시작했을 때(아래 러셀과의 일화를 볼 것)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방랑자로 그 생활을 끝나쳤다. 결혼도 하지 않고 교제도 남자에게만 국한한 채-물론 그 교제는 정열적이기도 했고 때론 순탄치 못하기도 했지만-비트겐슈타인은 니체나 베버처럼 거의 광인에 가깝게 살았다. 자신이 이미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 자신이 도덕적으로 순결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의식을 잃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멎진 인생을 살았다고 그들에게 말해주시요"라는 것이었다. pp.71~73
… 그들[비트겐슈타인의 친구가 된 학생들]은 그의 엄격함과 우울함을 참아냈고 그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순간을 드물게만 맛보았다. 그들은 그의 지적·도덕적 성실성을 인정했으며 그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한번은 인간의 위대함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는 위대함의 척도가 "그 일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희생을 그 사람이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잘 아는 학생들은 그가 스스로 어두운 세상에 가냘픈 이해의 등불이라고 취급하던 것을 위해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p.77
20대 중반에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12년의 세 학기와 다음 해의 두 하기를 수학했다. 여기서 그는 무어와 특히 러셀을 알게 되었는데, 러셀 경은 이 젊은 방문자가 한 학기 수업을 마친 후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느낀 당혹감을 이렇게 회상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완전히 천치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는 왜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라고 내가 반문하자, 그는 "그것은 제가 천치라면 저는 조종사가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철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 나는 자네가 완전히 천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만 만약 자네가 이번 방학기간 동안 무엇이든 흥미있는 철학적 문제에 관해 글을 한 편 써서 보여준다면 내가 그것을 읽고 자네에게 이야기해주겠네." 그렇게 해서 그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자 자기가 쓴 글을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그 글의 처음 문장을 읽자마자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게 전혀 조종사가 될 필요가 없음을 설득시켰다.
이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 정착해서 체계적으로 철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행동에 대한 러셀의 당혹감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한반중에 나를 찾아와선, 성난 야수처럼 침묵 속에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곤 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자네는 지금 논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자네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둘 다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계속 방 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가 내 방을 나서는 순간 그는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와 나 모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출중한"-에 대한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무에 그런 부담스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다시는 철학의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손아래 사람의 기술적인 비판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pp.58~59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사진을 보면서 그윽하고 깊은, 하지만 어딘가 침울하면서도 고독하고 두려움에 떠는 듯한 눈빛에 끌렸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아닌 삶을 보면 왜 이런 눈빛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눈을 들여다보면 착 가라앉은 심연 모양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높은 파도 아래 어둡고 무게에 눌려 꿈쩍도 않하는 심연이 있는 것처럼 강렬한 열정 아래는 견디지못할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면서 들뢰즈를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둘 사이에 어떤 '가족유사성'이 존재한다. 언어상황과 의미의 계열화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생각려는 그의 태도(p.82~83)는 알뛰세르의 방법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을 아닌가?
이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 정착해서 체계적으로 철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행동에 대한 러셀의 당혹감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한반중에 나를 찾아와선, 성난 야수처럼 침묵 속에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곤 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자네는 지금 논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자네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둘 다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계속 방 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가 내 방을 나서는 순간 그는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와 나 모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출중한"-에 대한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무에 그런 부담스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다시는 철학의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손아래 사람의 기술적인 비판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pp.58~59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사진을 보면서 그윽하고 깊은, 하지만 어딘가 침울하면서도 고독하고 두려움에 떠는 듯한 눈빛에 끌렸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아닌 삶을 보면 왜 이런 눈빛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눈을 들여다보면 착 가라앉은 심연 모양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높은 파도 아래 어둡고 무게에 눌려 꿈쩍도 않하는 심연이 있는 것처럼 강렬한 열정 아래는 견디지못할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면서 들뢰즈를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둘 사이에 어떤 '가족유사성'이 존재한다. 언어상황과 의미의 계열화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생각려는 그의 태도(p.82~83)는 알뛰세르의 방법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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