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게시물
문학일기 - 가방을 열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작성자:
dckorea
-
오늘 베란다쪽 광을 청소하면서 군대에 있을 때 쓰던 가방을 꺼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망치와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강제로 열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난 한 뭉치의 종이와 노트를 찾아 냈다. 사실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육군노트에 이리 저리 휘갈겨져 있는 시를 보니 느낌이 새롭다.
지난번 "불안한 희망의 세계: 댄싱섀도우"에 올렸던 시의 원본을 찾았다. 처음 제목은 "연혁 - 나의 존재"였다가 정리하면서 "태생"으로 바뀐 것 같다.
1995.11.19
지난번 "불안한 희망의 세계: 댄싱섀도우"에 올렸던 시의 원본을 찾았다. 처음 제목은 "연혁 - 나의 존재"였다가 정리하면서 "태생"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무협지"라는 제목의 시도 보였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입대하기 바로 직전부터이고, 군대에 있는 동안 죽어라고 시를 썼다. 일과가 끝난 후 별 할일이 없었으니 BOQ 구석에서 시를 쓴 것이다. 특히 영천, 광주에서 군사교육을 받을 때는 더 했던 것 같다.
문학일기1
- 무협지
국민학교 졸업하고 겨울 내내 무협지만 읽었다
언제나 거친 갱지의 몇줄 안되는 내용에서 여백의 미를 배웠다
머리 속에선 도검이 산을 이루고
피어 젖어있던 어린 가슴은 발길질에 주먹이 난무했다
기준조차 모호한 선악의 싸움과 배신과 복수의 세상에서
밤을 샌 눈은 충혈되었고
아침이면 내내 참던 오줌을 장독대 뒤 까죽나무에 내갈겼다
밤새 보았던 것들이 오줌발에 쓸려나가고
남은 것은 피로와 어서 어른이 되어 강호를 주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바램은 세월이 장강의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었고
그것을 잴 수 있는 전자시계를 차는 것이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겨울 내내 무협지를 읽었다
언제나 갱지의 몇자 안되는 내용에서 가슴 속 헐떡대기만 하는
욕망을 알았고 머리 속에선 얽힌 육체가 꿈틀거리고
항상 백점을 맞던 도덕책은 정파의 위선이었고
선보다 악이 더욱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밤새 읽다 던져버린 무협지가 머리맡에 가득 쌓이고
그때마다 위선적 정파와 위선적 군자
그렇게 배워온 위선적인 나에게 침을 뱉았고 침을 뱉듯
자위를 하고 남은 것은 허탈감과 가슴 짙누르던 수치심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며 내내 무협지를 읽었다
가끔 무협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장부는 독해야 한다
가슴에 독을 차야만 하는 줄 알았다
황량한 바람이 불고 고독한 먼지가 일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내 독하게 굴었지
아픈 가슴에 비수를 박고
피를 흘리면 그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수천만의 사람을 꿈쩍않고 죽여야만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1995 .11.19="">1995>
지금도 무협지를 좋아한다. 예전처럼 그렇게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일년에 2~3번은 무협지를 빌려다 밤새워 본다. 최근에는 군림천하 18권을 만화방에서 빌리기 어려워 사버렸다.
희망의 거처
나의 희망은 돈 몇푼 모아
집칸 마련하고 사는 것,
살다 가끔 한번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는 것일 수는 없다
나의 희망은 몇푼 돈으로
공부 몇자 더 하고 배운 것 팔아먹으면서
예쁜 마누라 손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없다
이런 모든 것이 희망이 될 수 없을 때,
이런 것 모두 하나 둘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 바라는 희망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질문을 해보지만
대답할 수는 없는데 나는 희망은
지금 이곳에 있다고 쉽게
누군가에게 말한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침울한 얼굴로 위로하듯 말한다
그래 바로 이곳에 희망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함성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노인처럼 항상 무표정한 얼굴만 남고
서로를 말 없이 바라고보만 있는데 그래도
희망은 가파른 일상의 절벽을 넘어서 있고
일상은 봄이면 녹는 임진강 두터운 얼음도 아닌데
희망은 두터운 얼음 밑 흐르는 물 속에 있다
나의 희망은 돈 몇푼 모아
집칸 마련하고 사는 것,
살다 가끔 한번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는 것,
나의 희망은 몇푼 돈으로
공부 몇자 더 하고 배운 것 팔아먹으면서
예쁜 마누라 손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희망이 되면
내 지금 바라는 세상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1995.4.26
생각했던 희망은 거처를 잃었다. 그래서 여전히 불안한 희망이다. 시집에 대해 이야기 하면 ❮불안한 희망❯이란 제목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1997년에 270페이지가 되는 시집으로 묶었다. '문학일기'는 연작시로 이곳에 들어있다. '희망의 거처'와 '태생'은 95년에 묶은 ❮더딘 봄 - 장탄리 안개❯에 들어 있고, 94년에는 ❮넘어서 - 투명한 사회❯를, 93년에는 ❮최종심급❯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묶었다. 한 10권 제본하여 친구들과 돌려보기 위해서 였다.
대학시절에 쓴 시들은 모두 불태웠다. 군대 소집 영장을 받고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읽어보면 ❮최종심급❯은 무슨 투쟁선언문이나 원전같은 느낌을 준다. 97년 후 10년간은 책을 묶지 않았다. 한 뭉치 있지만...
http://dckorea.co.kr/tc/trackback/21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