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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의 잔치 - 5월 1일 홍대 앞에서

 5~6년만에 홍대 앞에 갔다. 결혼하고 홍대 앞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IMF 사태'가 나고 전세를 살던 집이 거래금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가면서 꼼짝없이 계속 살아야 했다. 그리고 애가 태어난 곳이 여기이다. 그래서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함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없이 결혼하면서 진 높은 이자의 빚을 짊어지고 둘 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여 바로 현재 OK 캐쉬백카드의 기본 시스템이 된 이지플러스카드를 제안하고 서비스와 시스템을 만들면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아내는 여행사에서 남미와 유럽을 담당하고 있어 시차 때문에 자연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애를 가졌을 때 인터넷 사업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한참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을 때이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나을 때 나는 인터넷 사업을 위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미국에 가 있었다.

백목련 
-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열시가 넘어 퇴근하는 
아내의 지친 몸을 
마중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앙상한 가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떨며 
고개를 빼고 내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나무에 돋아난 
하얀 새 아니냐! 
눈짓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멀리 아내의 지친 모습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은 그녀도 
어느새 담장 넘어 
검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하얀 새가 되어 
봄비 같은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향기가 가신 젖은 깃으로 
힘겨운 날개짓을 하며 
날아온다. 
여린 생명들에겐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힘 들다. 

1998. 3. 26 

 

봄 

아내는 봄과 함께 임신을 하고 
이젠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낸 서른 한해 
이제야 한 우주를 끌어안고 뒹굴어본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기차소리보다 
더 큰 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에 
아내와 나는 놀라 신기해하고 
생명을 품에 안은 아내가 갑자기 빛나 보인다. 

내 평생이 가도 그만큼 빛나보질 못할 것 같아 
우울한 서른 한해 째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할 봄 
나도 아내를 따라 입덧을 해본다. 

창가 앞뜰에 또 백목련 꽃망울이 맺혀 
뽀얀 솜털가지 끝이 불러오고 
아내는 봄과 함께 긴 낮잠을 즐기고 있다. 

1999. 3. 14. 

한시간 정도 아내 옷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너무 이른지 옷가게들 대부분이 아직 문도 열지않았다. 점심은 아지오(AGIO)에서 먹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이곳에 왔었으니 적어도 이곳을 안지 십년은 넘었다. AGIO는 예전의 건물 바로 옆으로 옮겼다.


피자와 그릴에 구운 닭과 샐러드를 시켰다. 여전히 담백한 피자 맛이 좋다.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들의 정형화된 맛- 달고, 기름지고, 약간 짠- 대신 구운 밀가루의 구수한 맛이다. '그릴 닭'도 향도 좋고 너무 퍽퍽하지도 않다.

7~8년전 친구들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다. 며칠간 사람이 바뀌면서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날이 훤해질 때 함께 집으로 간적이 있는데, 술집 앞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날이 막 밝아오는 홍대 근처 술집에서 커다란 나무를 보았을 때 들어던 그 생경함, 이상한 느낌! 아마도 놀라움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옮겨온 AGIO의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때 그 나무인 것 같다.(그때는 민가여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처럼 느꼈던 나무, 둥근 모양의 나무가 지금은 외소해져 있었다. 몇개의 굵은 가지가 죽어 있고 가운데 부분만 푸릇한 잎들로 덮여있다. 안본 것만 못하다. 

지난 몇년 세월에 풍성했던 가지들, 푸르른 잎들은 어디로 갔을까? 밤새 술을 먹으며 소리 높여 노래하고 철학에 운동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세월에 쓸려 듬성 듬성 머리 빠진 노인처럼 변해버린 나무같이 꿈을 잊은 것은 아닌지!

백목련
- 원철, 형주에게

보고 싶다
백목련
눈부시게 숨막히는 향기

보고 싶다
검게 주름진 꽃잎
바람에 떠도는 익숙한 목소리

향기 섞인 얼굴들
보고 싶다

여기,
예전 그 자리에서

1996. 4. 11

위에 있는 세편의 시를 보면 모두 백목련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봄은 항상 백목련, 동백꽃과 함께 왔다. 하지만 추상적(가보지 못했기에)인 동백보다 백목련은 훨씬 구체적이다.


예전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이 나무는 목백합이다. 어릴 때 집에서 판매용으로 목백합 묘목을 재배했다. 그래서 고향집 뒤뜰에 몇 그루가 남아자라고 있는데. 그 하얗던 꽃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사는 것일까? 기억이 어떤 사람을 만들고, 유지해주는 것일까? 지식, 어떤 이해, 우리의 마음은 얽히고 섥힌 기억일테니 말이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공각기동대블레이드 러너아일랜드 등)이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기억이 어떤 주체(개별적 인간)를 규정한다. 이런 기억이 없다면 우린 어떤 인간적 관계를 상상하기 어렵다.


오늘은 노동절(메이데이)이다. 이렇게 하루 노는 것도 사실은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다. 아래 글은 1993년 5월 어느 날(아마도 노동절일 것이다) 쓴 것으로 『최종심급』에 실려있다. 노동자도 아니었던 시절 더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동자인 지금은? 역설이다!

노동절을 노래함

1.
보라!
노동에 찢겨진 사람들이 손을 놓고
깃대처럼 일어났다
가슴은 기관차같이 힘찬 소리를 낸다.

2.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가자!
모든 것이 멈춰섰다
세상은 우리의 힘에 돌려지는 기계와 같다.

3.
오늘 노동절 집회는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우리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말자!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의 투쟁에 달렸다.

4.
어깨와 어깨를 걸고
구호 소리 높이며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을 뒤로하고 전진하면서도
생각하자!
오늘은 노동절
전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해방을 향해 달려나가는 날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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