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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목수를 꿈 꾸다

아내에게 톱과 드릴을 사주면 선반을 매주겠는 약속을 하고 이사를 한 다음 날(2008.1.15) 전기톱과 드릴을 샀다. 목수를 꿈꾸며 평소 갖고 싶었는데 선뜻 주머니로 손이 가지 않던 물건들이다. 겨울에 추워 각목을 얼기설기 엮듯이 못질하여 비닐 문짝을 만들었던 때가 대학 다니면서 일이다. 

그때 문을 만들고 흄(David Hume)을 극복했다고 떠들던 생각을 하면 우습다. 흄이 제기한 세계의 인식불가능성(또는 인식의 주관적 성격)의 문제의식/질문/문제틀이 중요한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면서' 낄낄 댔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극복했다는 것은 인식된 것에 대한 진위가 실천(개인적/사회적 실천, 또는 생산 등)을 통해서 검증된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보면 목수와 조수 이야기가 한참 나온다. 또 플라톤의 책들 어딘가에도 목수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사람들이 모여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면서 나온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목수일 것이다. 의식주에서 '주(住)'를 만드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대상, Idea(이데아), 인식, 기술 등을 이야기할 때 목수들을 예로 들곤하였다. 농부/목동 보다는 훨씬 더 창조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머리 속에 설계를 하고 이것에 따라서 똑같이 건축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목수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만지작 거리면서 만드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있을 때면 소소하지만 이런 저런 것을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선무당은 장구 탓을 하기 마련이다. 멋진 의자나 책상, 침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톱, 드릴, 대패 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있을 때 포대(砲隊) 목수가 침대를 만들어줬는데 2x2, 2x4 각목과 커다란 톱, 가스 불 분사기(후끼), 사포만 이용했었다. 그런데 나는 고작 선반을 달자고 거창한 장비들을 카트에 주워담은 것이다.

▲ 전기 톱: 날이 작아 직선뿐 아니라 곳선 등 원하는
모양대로 목재를 재단할 수 있다.

▲ 드릴: 나무, 콘트리트, 금속 등에 구멍을 뚫고
드라이버를 부착하여 나사를 박을 수 있다.

▲ 수평잡는 기구 - 수포가 가운데로 오도록 하면 된다.

여하튼 선무당이 장비를 샀으니 '사람이라도 잡아야'할 판이다. 그래서 어제부터 선반을 달기 시작했다. 선반을 달 베란다 폭과 깊이를 재고 그것에 따라 연필로 목재에 표시를 했다. 재단용 연필을 목수인양 귀에 꼽은 모양을 보자 아래는 깔깔대며 웃어댄다. 이렇게 수선을 떨어대며 어제, 오늘 선반들 두개 맸다. 아내는 선반 다섯개는 달아야 장비 값을 한단다.

오늘 아침에는 선반에 쓸 목재를 구하기 위해 이제 막 입주를 하기 시작하여 아파트 단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쓸만한 자재를 주우러 다녔다. 지난 번 살고 있던 집에서 가져온 거실장 윗덮개를 이용해서 어제 선반을 하나 설치했고 다음 선반 만드는데 쓸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거실 소파 위에 책꽂이를 달때 쓸 프레임을 사려고 집 옆 철물점에 들렸다. 작년 여름에 사다놓고 쓰지않은 화장실 하수도관 덮개를 6개월만에 참 빨리도 반납하고 프레임으로 바꿔달라고 할 심사였다. 그런데 철물점 아저씨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물건을 받아주며 그런 것은 인테리어 전문점에 가란다. 미안해 돈으로 돌려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이왕 목수로 나선 김에 수평을 잡아주는 도구를 천원 더 주고 집어들고 나왔다.

조금전 14시 반정도에 두번째 선반도 모두 달았다. 그런데 아내도 얘도 얘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고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어디 선반맸다고 어디 자랑할 곳이 없다. 원래 선무당이 장구 탓도하고, 사람도 잡으면서 요란을 떠는 법이다. 새참겸 점심으로 국수라면을 끓여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 어제 안방 베란다쪽 선반을 만들며 받침을 둥그렇게 잘아낸 모양
- 장비가 좋으면 아무나 다 할 수 있다.

▲ 어제 맨 선반 - 선풍기를 올려놨다.

오늘 11시 정도부터 부산을 떨며 선반을 만든 과장을 이다. 먼저 연필로 목재 위에 자를 곳을 표시한 후 톱을 이용해 자르고 선반을 달 벽에 선반 받침을 수평을 맞춘 후 못을 박는다. 재단하여 만들어둔 선반 받침을 거는 간단한 과정이다.

① 목재 위에 연필로 자를 곳을 표시한 후 톱으로 자른다.

② 선반 받침 수평을 잡은 후 못을 박아 받침을 고정한다.

③ 선반 받침을 같은 높이로 벽 양면에 모두 박는다.


④ 만들어둔 선반을 받침 위에 올린다.

⑤ 완성된 선반 모습

⑥ 물건이 올려진 선반

올 여름이 지난 후에 선반 앞에 문을 달을 생각이다. 아파트를 지은 지 얼마 안되어 곰팡이가 안나나 여름을 지내봐야 한다. 곰팡이가 나면 다시 방수처리(?)를 하고 페인트를 칠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달면 일이 커진다. 아내는 새로 산 거실장이 마음에 안든다며 거실장을 짜란다. 윽.. 난이도가 높은 것은 몇년 후로 밀어야 하는데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는지. 거실장을 짜려면 작업실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해야 하나! 

조만간 거실 소파 위에 책꽂이를 하나 만들어 설치할 예정이다. 소파에서 바로 손에 닿는 곳에 책과 CD, DVD, 게임 팩 등이 놓여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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