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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 정신 -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를 읽으며

며칠에 걸쳐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고현범, 책세상, 2007)을 읽고 있다. 책은 얇지만 잘 읽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뉴미디어(디지털기술)가 만들어낸 융합적 매체인 휴대전화를 통해 뉴미디어 시대의 쟁점들 - 뉴미디어가 공간과 시간에 미치는 영향, 이로 인한 의사소통 형태의 변화 등을 분석한다고 한다.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 - 6점
고현범 지음/책세상

장치 정신
1장과 2장은 매체철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매체철학을 구성하는 담론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필자가 길어올리는 개념은 미국의 사회학자 카츠(J. E. Katz)의 "장치정신"이다. 이 개념은 기술결정론적인 편향을 갖지않고 기술 공학 시대 혹은 기술 복제 시대에 의사소통 기술 매체의 논리를 반영한다고 한다.(p.54)

여기서의 장치는 특정한 작업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물질들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장치에 작업을 완수하는 능력 그리고 사회적인 작용 또는 어떤 목적을 대체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때로는 정치적인 대상을 갖고, 달성할 수 있는 조직화된 그룹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 장치이다. 그런데 이 장치는 구별된 것을 종합하고 상호관계를 맺게 하는 것, 매개의 의미를 갖는다. 또 우리가 의도하고 목적한 것을 성취하기 위한 '매개'라는 의미에서 수단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기계적인 의미에서는 도구나 인공물을 말하며, 포괄적으로 장치를 뜻하기도 하는 바로 매체개념의 연장선에 서있다. (p.19, p.54)

정신은 피히테, 셀링, 헤겔 등의 독일 철학자들이 완성한 관념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헤겔의 정신 개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함축한다. 또 헤겔은 역사의 운동(변화)을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시대정신)에 따라 파악하는데, 이것은 개별 인간의 행위 조건을 이룬다.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은 변화하고 이 변화가 역동적인 역사의 전개를 추진한다. 이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느 개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정신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위 방식을 지시하는 문화를 의미 한다.(pp.54~55)

결국 카츠의 장치 정신의 강점은 한 시대의 기술과 문화의 상호 작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 그러면 이 '장치 정신'이란 개념을 이런 말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매체 정신, 또는 매체 문화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역사적으로 개념에 새겨져 있는 '의미'의 무늬들이 만들어 내는 '간섭효과'때문이다. 매체 정신, 매체 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뉴미디어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치(device) 의존성은 '매체 정신'과 다른 의미론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디지털 기기들, 장치들의 정신이라는 뉘앙스 말이다.

새로운 개념 만들기 
하지만 헤겔의 철학에 기댄 정신이란 말 자체가 '장치'라는 개념의 선택처럼 잘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신'이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독일관념론적인) 역사성을 넘어 장치 정신에서의 정신이 "어떤 기술이 형성하는 문화적 맥락(상황과 한계)은 개별 행위를 집단적으로 규정한다"고 할 때의 '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정신이란 개념의 선택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엄밀한 학문적 논의, 특정한 글 안에서의 자기 정의를 포함하는 논의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정신과 문화적 맥락을 곧 바로 이어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문화적 맥락이 지닌 관념성(절대정신의 자기구현과정)은 우리가 맑스나, 푸코, 들뢰즈를 통해 보는 (유물론적인) 문화적 맥락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장치 정신이 "확인할 수 있고 일관되며, 일반화된, 역사를 통한 기술적 진보의 패턴에서 명백한, 기술에 관한 추론의 원칙이나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을 의미"한다면 추론의 원칙이나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인 정신을 에피스테메, 계열화(의미)의 논리 등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뉴미디어 기기로 한정한다면 "디지털 기계"는 어떨까? 여기서 기계(machine)은 들뢰즈가 말한 그 '기계'로 접속/계열화(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는 디지털 기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들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장치 정신에서 보여주는 '정신적' 문화라는 느낌이 '기계'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체, 미디어라는 개념이 만들어 내는 다분히 문화적, 정신적인 느낌이 장치 정신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장치 에피스테메, 장치 계열은 ...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을 어렵다. 과거의 개념에 빚지는 순간 과거에 쌓여 있던 의미들이 몰려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 - 차라리 세상에 처음 존재하는 단어를 만들면 그 내용을 채우고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과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이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을 짜고 새로운 전략을 세울 때, 특히 과거의 개념으로 새로운 것을 설명할 때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오해하기 일쑤이다. 비난하거나 추종한다. 또는 아무 것도 변한게 없네. 포장이라도 바꾸지하고 떠난다. 그래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으니 보여 줄 수 없다. 그래서 컨설팅회사가 생기나 보다. 내부 요구를 듣고 정리한 후 해외사례를 하나 더 붙어 보여준다. 권위와 쓴 돈 때문인지 많은 경우 이들의 말을 듣는다. 씁쓸하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세계라 하더라도. 이 책의 필자가 새로운 개념을 하나 만드는 것이 났지않았을까?

계속... 디지털화와 샘플링, 축약 ..... 미세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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