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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인생의 변곡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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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통령 선거와 상위중산층 문제"보다 박형준씨에 대해서, 아니 박형준씨 자체보다 <그는 1992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했다. 좌파 지식인이었던 그가 지금은 '좌파정권 종식'과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는 보수정당에서 활동을 하고, 이젠 권력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이런 분이 또 있는데 같은 한나라당의 이재오씨도 이에 해당된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지금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까?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 “지난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이후 43년간 제가 걸었던 투쟁의 역사는 끝났다”고 이재오씨가 말했다고 한다. (아래사진) 그가 말한 투쟁이 무엇이었을까? 민족을 위한 투쟁이었을까? 노동자,농민, 민중을 위한 투쟁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었을까?
교수 시절 박형준씨는 <계급분석의 지위에 대한 재론>(창작과 비평, 1991, 겨울호)에서 '계급관계가 사회관계의 본질을 이루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종말을 선고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박형준씨와 함께 이론적/실천적 행보를 같이 했던 이병천 교수(강원대 경제학과)가 <민주주의론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비판한다>(창작과 비평, 1992, 봄호)를 발표하였다.
<재론>에서 박형준씨가 처음 인용한 글은 "만일 사유하는 것이 한 사실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뒤따르는 것이라면 사유는 중도에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에 집착하기보다는 진행과정을 주시하라고 하고 싶다"는 하이데거가 <동일성과 차이>에서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철 지난 그의 글(사실)을 가지고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의 변화 '과정을 주시'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재론>을 쓰기 시작할 때가 박형준씨에게 인생의 변곡점인 것 같다. 또 그때가 이재오씨에게도 인생의 변곡점일 수 있다. 1980년대를 산 많은 '투쟁'가들에게도 그렇다.
이 변곡점에서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론의 맺음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함께 숨 쉬고 살아왔던 동료들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가 보여주는 사실들(진리)에 대한 겸허함이랄까? 그리고 사유/진리는 이런 비난(왕따)을 감수하고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의무감과 사명감에 있지는 않았을까? 이때가지만 해도 말이다.
이병천교수가 <민주주의론>에서 인용하는 것은 "네 갈 길을 가거라.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내버려두어라."는 단테의 말이다. 이 말은 단테보다는 마르크스가 사용하면서 재발견하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안에도 이런 진지함이 깔려있다.
박형준 교수의 맺음말은 이렇다. " 이글을 쓰면서 예상될 수 있는 여러 비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가장 손쉬운 비판은 '맑스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계급분석의 공통된 가정을 깨뜨림으로써 '맑스주의 위기를 극복할 맑스주의적 방법'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합리적 토론을 어렵게 한다. 그러한 단정에는 맑스주의 내에 특정 진리 또는 합리적 핵심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문제는 이러한 '합리적 핵심에 대한 공유된 생각'이 입장에 따라 매우 편차가 클 뿐 아니라, 그렇게 공유된 생각조차도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이론의 성격' 때문에 끊임없이 의문에 부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맑스주의를 둘러싼 지적, 정치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은 '의문의 범위'에 제한을 가하지 말라는 것, 따라서 생각의 자유를 스스로 차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떠났다' 또는 '포기'라는 판단에는 은연중에 '배반'이라는 개념이 배어 있다. 또 그러한 씨니피앙은 '공포'의 역사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많은 이론 및 실천들이 '수정주의' '개량주의' '쁘띠부르조아지' '부르조아지 이데올로기에의 투항'이라는 이름으로 '배반'을 고발당했던가?
결국 이러한 논법은 혁명과 과학의 유일한 담당자가 한 분파의 견해임을 입증하는데 사용되곤 했다. 프로이트가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즘'이라 부른 것에 의해 끊임없이 상처받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그로 인하여 진리의 담당자는 더욱 소수로 귀착되는 폐쇄적 진리관을 의연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강조는 필자)
그리고 박교수가 예상하는 몇가지 비판이 뒤에 더 있다. 당시 그가 썼던 것처럼 가장 수준이 낮은 저열한 수준의 비판이라고 생각했던 배반이라는 개념이 오늘 한나라당, 이명박정권의 핵심권력에 들어선 사람을 보면서 배반이 맞지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 발전/변화해 나갈 때 사후적으로만 사전에 내렸던 어떤 판단이 맞는지 틀리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
일요일(23일)에 박형준씨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오늘 이글을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이 '배반'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이 사람이 노동자나 농민, 그리고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주길 바랄뿐이다. 이미 부르조아 이데올로그/정치가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말이다.
|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1 - 이병천 외/의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2 - 이병천 외/의암 1992년 6월 어느 때 이병천교수와 박형준교수가 역어낸 책을 나는 으적거리며 씹어먹고 있었다. 박형준씨의 '배반'과 달리 이병천교수는 '운동'을 떠나지않고 자신이 주장하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을 보면 어떤 사상에 대한 반대를 쉽게 그 시점에 '배반'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단하는 것보단 현실은 훨씬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적어도 이들이 했던 고민의 진정성과 인생의 변곡점에서 이들이 겪었을 '인간적 갈등'을 존중한다. 좌에서 우로 차를 돌렸던 역사 속의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그리고 그들이 있었던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더욱 우측으로 달려야만 할 때의 고통들 말이다. 충성 서약을 행동/이론으로 보여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그것을 강요하는 적대적으로 분열된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위 글은 이병천 교수와 박형준 교수에 대한 이진경씨의 반론인 <맑스주의의 새로운 출발?>(세계문학, 1992. 여름호)이다. 이진경의 글과 함께 다음 글들을 같이 묶여 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글을 읽으니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 방영준,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문제 - 보비오 논쟁을 중심으로>(민주화 논총, 1992.6)
- 도성달, <마르크스주의적 민주주의, 그 이념과 실천>(민주화 논총, 1992.1)
- 김교환, <복지국가이념으로서의 민주사회주의>(민주화 논총, 1992.10)
또 이병천 교수의 글은 다음 글들과 함께 복사되어 묶여 있었다. 아래 글들은 다시 읽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월러스틴의 글을 한번 읽어볼 예정이다.
- 구갑우, <우리시대 '혁명'의 의미>(창작과 비평, 1991. 여름호)
- 보리스 까갈리쯔키, <러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독재>(창작과 비평, 1991. 겨울호)
- 로빈 블랙번, <러시아의 구원은 동방에 있다>(창작과 비평, 1991. 겨울호)
- 이리프 딜릭 외, <중국 사회주의의 위기와 민주주의 문제>(창작과 비평, 1991. 겨울호)
- 강무구/여현덕, <한국의 민주적 이행과 사회적 변혁의 전망>(창작과 비평, 1992. 겨울호)
- 손호철, <빼레스뜨로이카의 제3세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상호의존성과 종속성을 중심으로>(창작과 비평, 1991. 봄호)
- 김호균, <맑스주의 발전을 위한 시론>(창작과 비평, 1992. 여름호)
- 이매뉴얼 월러스틴, <1980년대의 교훈>(창작과 비평, 1992. 여름호)
- 조셉 매카시, <공산주의 이후의 맑스주의 철학>(창작과 비평, 1992. 봄호)
- 로빈 블랙번, < 동구권 몰락 이후의 사회주의 1, 2>(창작과 비평, 1992. 가을호, 겨울호)
- 이희옥,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와 한반도>(창작과 비평, 1992. 겨울호)
사람들은 자신이 변하는지도 모르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10년, 20년이 넘어 뒤돌아 봤을 때도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그래서 나의 좌우명은 有恒心이다. 변화 속에서도 항상 '합리적 핵심과 공유된 생각'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 윤리적, 성찰적 삶의 취약성을 보면 이런 삶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삶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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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자료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명박정권은 혹시 '고려대-민중당' 정권은 아닐까? 이명박씨를 포함한 이재오씨와 박형준씨는 고려대/대학원 출신이고, 이명박씨는 아니지만 적어도 두분은 촉망받던 운동권의 이론가/투사였다.
박형준씨에 대한 처음 기억은 맑스주의 '계급이론'에 정통한 이론가가 와서 강의를 하니 구경을 가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89년/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이때야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이니 강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가 고려대 사회학과를 나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운듯 말하던 같이 가자고 하던 분의 말투/분위기가 기억에 선명하다.
Tip - 얼짱, 유시민
지금 이재오/박형준씨가 좌파라고 공격하는 유시민씨는 이때 '쁘띠부르조아 정당'인 평민당에 몸을 담고 있었다. 아마도 이때는 유시민씨가 이들을 좌파라고 말했을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아닌가!
이들처럼 알만한 사람들이 (좌파가 아닌 우파를) 좌파라고 우기며 공격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 이제 이들은 이론가가 아닌 노회한/노련한 정치가들이 된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변하는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가차없이 밀어버리는 세월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역사의 변곡점이 인생의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역사적 변곡점 위에 서있어도 방향은 서로 달라 사방으로 뻗어 갈 수 있다.
이병천교수와 함께 "민주주의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 "진정으로 새로운 과학적 정신에 투철한 사람들 사이의 부단한 개방적 의사소통"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전진을 위한 연대"를 말하던 1992년 3월의 박형준 교수가 있었다.(<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1>의 p.3 간행자 공동 서문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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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지막 휴가를 보내며
- 대통령선거와 상위 중산층 문제
- 24일, 26일을 휴가를 냈다. 그래서 22일부터 5일간 집에서 보냈다. 토요일에 무슨 책을 읽을까 둘러보다 책장 위에 있던 논문 복사본 더미에 손이 갔다. 대부분이 92년에 복사한 것들이다(아래 사진). 그런데 처음 빼어든..
- 승부가 아닌 열정 - <식객>의 성찬
- 24, 25일에는 책을 좀 읽다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보았다. 허영만씨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중 한 분이다. 대학 때 <블랙홀>, <화이트홀> 등을 재미있게 읽었고 <날아라 슈퍼보드>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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