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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erence and Repetition, 차이와 반복❯ 중역 (영어 to 한글): 한역본 2. 대자적 반복, 4절. 반복과 무의식: "쾌락원칙을 넘어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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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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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psychical life implies a field of individuation in which differences in intensity are distributed here and there in the form of excitations.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 The word 'id'[Ça] in this sense is not only a pronoun referring to some formidable unknown, but also an adverb referring to a mobile place, a 'here and there'[Ça et lá] of excitations and resolutions. It is here that Freud's problem begins: it is a question of knowing how pleasure ceases to be a process in order to become a principle, how it ceases to be a local process in order to assume the value of an empirical principle which tends to organise biopsychical life in the Id. Obviously pleasure is pleasing, but this is not a reason for its assuming a systematic value according to which it is what we seek 'in principle'. This is the primary concern if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not the exceptions to this principle, but rather the determination of the conditions under which pleasure effectively becomes a principle. The Freudian answer is that excitation in the form of free difference must, in some sense, be 'invested', 'tied' or bound in such a manner that its resolution becomes systematically possible. This binding or investment of difference is what makes possible in general, not pleasure itself, but the value taken on by pleasure as a principle: we thereby pass from a state of scattered resolution to a state of integration, which constitutes the second layer of the Id and the beginnings of an organization.
❮Difference and Repetition❯
질 들뢰즈 (지은이),Paul Patton (옮긴이)Columbia Univ Pr1994-05-19, page.96
❮차이와 반복 | 현대사상의 모험 13❯
질 들뢰즈 (지은이),김상환 (옮긴이)민음사2004-03-20원제 : Diffe'rence et Re'pe'tition (1968년), page.220~221
질 들뢰즈 (지은이),김상환 (옮긴이)민음사2004-03-20원제 : Diffe'rence et Re'pe'tition (1968년), page.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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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psychical life implies a field of individuation in which differences in intensity are distributed here and there in the form of excitations.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하는데, 이 장 안에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 형태로 여기저기에 할당되어진다.
-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한다.
- 사람의 정신과 신체는[생명체인 인간은] 개체화의 장[바탕/토대]이다.
- 인간-생명[심신]은 개체화의 장을 '주름 잡고있다(implied / enfolded)'.
- biopsychic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of, relating to, or involving both psychic and biological phenomena : relating to the place of mind in life
- 개체화의 장 '안(in)'에 강도의 차이가 분배되어'있다'.
- 어떤(a) 개체화된 장(field)의 특징은 강도 '내(內, in)' 차이의 분배/할당에 있다.
- 어떤 개체화된 장은 생물심리학적 삶이고, 이 삶은 강도 내 차이의 분배이다.
- 삶이 과정이고 겪는 것이라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강도 내 차이의 분배가 '변할 것(change)'이다. 삶은 어떤 실체가 아닌 (시간 속에서) 변화를, 차이를 전제한다.
- 분배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의 형태으로 되어있다.
- 형태는 외관, '띠고있는' 양태이다.
- 모든 강도가 아닌 '생물심리학적 삶'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강도이다.
- 생물학의 대상인 생명체는 흥분을 한다. 흥분이 강도적 차원에서 볼 때, 생명체의 특성이다. 흥분이 생물학적인 특성만이 아닌, (이후에 보겠지만) 심리학적인 특성이 된다. 또는 흥분이 심리학적인 것의 기반(바탕)이 된다.
- '여기저기'는 강도가 할당/분배되는 양태이다.
- 장 안에서 여기저기, 유동적(mobile)으로 할당된다.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이고, 개체화의 장은 강도 내 차이로 구성되고, 강도 내 차이는 흥분의 형식으로 장 내에 분배된다.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이런 차이들의 양적이고 질적인 해소 과정이 우리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쾌락은 차이들[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
- 강도의 차이들이 흥분의 형식으로 되어있다고 했으니, 차이들의 해소 과정은 흥분의 해소 과정이다.
- 따라서 쾌락은 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
- '쾌락은 흥분의 해소'라는 개념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온 것이다. 의사인 프로이드는 흥분을 '병리학적'으로 접근하고, 이 흥분이 해소되는 것을 '치유'라고, 쾌락은 이런 흥분의 해소 과정, 치유 과정에서 도달하는 정신적인 안정화 상태로 본다. 정신적 안정화 상태가 'equilibrium'이다. equilibrium의 정의는 'a state of balance'이다. 일반적으로(일상적으로) 쾌락은 어떤 흥분상태를 말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흥분은 '어떤 병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
강도적인 장 안에서 차이들의 유동적 분배[할당]와 국소적인 해소들, 이런 종류의 총체[전체성]는 프로이드가 이드(Id)라고 불렀던 것, 또는 적어도 이드의 제1차적인 층위에 해당한다.
- 이드(Id)-에고(자아, ego)-슈퍼에고(초자아, superego)에서의 이드이다.
- 이드는 생명체[사람의 심신]와 관계된다. 생물심리학적인 삶의 바탕이 된다.
- '사람에게서 발견되는(프로이드가 이론적으로 가정하는)' 이드는 강도적인 장, 개체화의 장, 장 내에서의 차이의 분배/할당, 또는 흥분의 전체적 분포/해소의 제1차적(primary) 층이다.
- 1차적인 층이라고 하는 이유는 위에서 본 위상학적인 '이드-에고-슈퍼에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 2차, 3차적인 층이 나올 것이다.
The word 'id'[Ça] in this sense is not only a pronoun referring to some formidable unknown, but also an adverb referring to a mobile place, a 'here and there'[Ça et lá] of excitations and resolutions.
이런 의미에서 '이드'라는 단어는 무엇인가 답을 내기 곤란한 미지의 것을 지시하는 대명사가 아니고, 흥분들과 해소들이 [일어나는] '여기저기', 유동적인 장소를 지시하는 부사이다.
- 이드는 대명사가 아니고 부사(adverb)이다.
- Id는 아마 영국에서 번역할 때 사용한 단어이고, 프로이드가 사용한 독일어는 Es로 '그것'을 의미하는 대명사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대명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부사'는 동사, 형용사 또는 다른 부사를 설명하는 단어이다. Id의 의미가 명사가 아닌 동사, 형용사, 부사가 될 때, 동적인 (생성적인) 의미(뉘앙스)를 담게 된다. 따라서 Id는 어떤 실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 어떤 (생성) 과정을 지시한다고 할까!
- 이드가 대명사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지시대상, 실체가 아니라는 것 같다. 이드는 부사이기 때문에 형용사(띤다는 의미에서 양태), 동사의 일시적인 상태, 특성을 설명한다.
- 그래서 이드는 [심신 내에 있는, 개체화된 장 안에 있는] 어떤 유동적인 장소가 된다. 그 장소는 특정한 수 없고 움직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심신 안에 있으면서 무엇인가 계속 변화(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장소가 이드이다.
- 이드는 '무엇인가 답을 내기 곤란한 미지의 것(some formidable unknown)'이지만, 심신 안에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면서 있다.
It is here that Freud's problem begins: it is a question of knowing how pleasure ceases to be a process in order to become a principle, how it ceases to be a local process in order to assume the value of an empirical principle which tends to organise{organize} biopsychical life in the Id.
프로이트의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어떻게 쾌락이 원칙이 되기 위한 과정이기를 그치고, 어떻게 그것[쾌락]이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라는 경험적 원칙의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위한 국소적 과정이기를 멈추는가를 아는 문제이다.
- '프로이트의 문제'는 프로이트가 제기한 문제라기 보다는 들뢰즈가 볼 때, 프로이트가 말은 안했지만 보여주는 '프로이트에게 숨겨진 문제'이다.
- 프로이트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쾌락의 원칙을 넘어, 더 깊은 곳에 '죽음 욕동[충동]'이 있다고 하는데, 들뢰즈가 보기에 이 죽음 욕동이 실제 제기한 문제가 '프로이트의 문제'가 된다.
-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쾌락의 원칙이 적용되지않는[벗어난], 이것을 넘어선 것이 있는가?'로 이야기할 수 있다.
-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초월론적인 선험적(?) 기반/조건이 되는, 죽음 욕동과 다른 어떤 것을 프로이트가 간파했지만 이곳까지 사유를 밀고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이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 들뢰즈의 목표이다.
- 이 지점(장소)는 이드 안에 부사형태로, 유동적으로, 흥분/차이의 강도적 할당 형태로 있다.
-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통해 들뢰즈는 쾌락이 원칙이 되게하는 조건을 찾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 프로이트 이론에서 쾌락은 원칙이고,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고, 이것은 경험적 원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그런데 프로이트는 '외상적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쾌락의 원칙에서 벗어난 병리학적 사례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죽음 욕동(타나토스)'가 쾌락의 원칙 넘어에 있지않은가 하고 가정한다.
- 프로이트 이론 속에서 죽음 욕동은 생명체가 그 원천인 무기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 자연적 충동을 말한다.
Obviously pleasure is pleasing, but this is not a reason for its assuming a systematic value according to which it is what we seek 'in principle'.
쾌락이 만족시킨다[쾌락을 낳는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발견하려고(seek) 하는 '원리[원칙]적인' 것을 따르는 그것(pleasure)의 당연시하는(assuming) 체계적인 가치에 대한 원인[이유]이 되지는 않는다.
- 쾌락이 만족시키는 것은 (생물심리학적 삶을 영위하는) 생명(생물, 인간)이다.
- 따라서 쾌락이 (위 문장의 내용처럼)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고, 이 '조직화된 삶의 경향들'이 쾌락을 낳는다는 것은 맞다[사실이다]. 그래서 쾌락이 원칙이 된다.
- 하지만 '그것의 가정된 체계적인 가치', 즉 '쾌락의 원칙'이 원칙이 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쾌락의 원칙' 아래에는 다른 이유[원인]가 있다. 들뢰즈는 프로이드의 '쾌락의 원칙'을 넘어선 것, 어떤 다른 원칙이 있다고 넌짓이 주장한다.
This is the primary concern if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not the exceptions to this principle, but rather the determination of the conditions under which pleasure effectively becomes a principle.
쾌락의 원리를 넘어선다면 이것이 일차적인 관심사이다: 이 원리의 예외가 아니라, 차라리 그 아래에서 쾌락이 실제로 원리가 되는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 쾌락이 실제 원리가 되도록 하는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프로이드의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The Freudian answer is that excitation in the form of free difference must, in some sense, be 'invested', 'tied' or bound in such a manner that its resolution becomes systematically possible.
프로이드의 답변은 자유로운 차이의 형태로 흥분이, 어떤의미에서는, '[리비도] 집중이 일어나고', '연결되고[묶이고]' 또는 '다발로 묶여져' 그 해소가 체계적으로 가능해지는 그런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tied를 연결된으로 해석하면 강도장(신체) 안에 너른 분포 뉘앙스를 갖을 수 있고, 묶이다로 해석하면 어떤 좁은 뉘앙스가 있는 것 같아 '연결'로 해석해 본다. 뒤에 다시 bind가 있기도 하다.
- '다발로 묶여져'는 bind - bound
- 들뢰즈는 위에서(제일 첫문장에서)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하고, 이 개체화의 장 '안(in)'에 강도의 차이가 분배되어'있고, 이 분배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의 형태으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 이에 따라 차이의 자유로운 형태는 흥분이다. 생물심리학적 삶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모양(양태)는 흥분의 형태이다.
- 생명 안에 '여기저기' 분배되어 있던 흥분이 묶어지는 것이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 집중(생명 에너지가 어떤 촛점에 모여지는 것?)'이다.
-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 아래에 있는 것은, 프로이드의 답변이라고 말했으니, 흥분의 '수속(收束: 거둘 수 / 묶을 속, 묶기)'이 된다.
- 그 묶기는 체계적인 과정이다. 체계적이라는 것은 일관된 방식을 가진,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이가 결집되는(묶여지는) 데에 법칙성이 있어야 한다.
- 흥분의 해소(resolution)를 심신이 평형상태로 가는 '해결책(resolution)'으로 볼 수 있다. 외적 자극에 따른 불쾌가 해소되는 것이다. 위에서 '쾌락은 차이들[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고 했다.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This binding or investment of difference is what makes possible in general, not pleasure itself, but the value taken on by pleasure as a principle: we thereby pass from a state of scattered resolution to a state of integration, which constitutes the second layer of the Id and the beginnings of an organization{organization}.
이런 차이의 묶기나 집중이 일반적으로, 쾌락 자체가 아니라, 쾌락이 어떤 원리로 취하는 그 가치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분산된 해소 상태에서 통합된 상태로 넘어가고, 이는[이 상태의 전환은] 이드의 두번째 층위와 어떤 어떤 조직화의 시작[첫 단계]을 조성한다.
- 쾌락의 원리, 쾌락이 획득한 원리적 가치는 흥분의 묶기, 집중 때문에 나온다.
- 묶기/집중은 분산된 해소 상태에서 통합된 상태로의 이행이다.
- 'scattered resolution'은 위 문장에 있는 'local resolutions'과 같은 의미인듯 하다. 강도장 내에 '여기저기, 국소적으로 흩어져 있는 차이를 동반한 미세한 흥분들'이 있고, 어떤 국면(상황)에 이 국소적 해소들이 적분된다(integrated).
- the second layer of the Id를 말하는데 이드의 첫 번째 층위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에서 말했다.
- 첫 번째 층위는 흥분의분산된 해소 상태이고 두 번째 층위는 흥분의 통합된 상태가 된다.
2020.8.4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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