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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밸리 나들이 - 십이년만에 다시 만난 George Segal

오크 밸리 - 강원도 원주시

오늘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오크밸리에 놀러갔다. 이년전 워크샵 때문에 이곳에 왔었다. 2006년 5월 이곳에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했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서 서쪽 능선을 타고 한바퀴 돌았었다. 좁은 오솔길 위 낙엽을 밟으며 혼자 걷던 이른 아침 산의 쾌적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슬에 젖은 납엽들이 숨죽여 사각거렸다. 그때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는데 <차이와 반복>이었나?

▲ 오크 밸리 전경 (골프콘도 A동 307 베란다)

어제(일요일) 오후에 두시 반에 출발하여 네시 반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골프장을 끼고 서있는 콘도가 좋아보였다. 방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가 나와 순호는 수영을 하고, 아내는 처남과 자전거를 탔다. 아내는 수영장에 아무도 없이 썰렁하여 싫단다. 오랜만에 아이랑 둘이 수영을 하였다. 지난 여름 몇번 수영장엘 간 후 처음이다.

▲ 오크밸리 수영장 (실내수영장과 야외수영장이 연결되어 있다.)

아내는 자전거를 차고 콘도 언덕을 따라 콘도 아래까지 내려갔다 머리에 바람이 들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좋았는데 자전거를 끌고 다시 위로 올라오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수영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은 다음 드라마를 봤다. TV를 잘 안보지만 요즘 주말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엄마가 뿔 났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로맨스까지를 보는데 이날은 볼링장 문 닫는 시간 때문에 앞 두개로 만족했다. 처남이 "옛날에는 이런데 오면 할 일이 없었는데"하면서 TV가 잘나오는 것에 새삼 감탄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보니 콘도는 안방 앞에 산을 갖다놓은 꼴이다. 열시정도에 나가 한시간 동안 볼링을 쳤다. 순호가 처음에 한번 맞추고 그 다음부터는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빠지면서 어꺠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기편이 잘 칠양이면 소리지르며 야단이다.

볼링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순호와 처남은 방으로 가고 아내와 함께 우산을 들고 주변을 산책했다. 땅 속으로 스며드는 가는 봄비처럼 시원한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이 없어 낮보다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을 조금씩 밀쳐내는 오렌지색 수은등 사이로 유성처럼 비방울이 스쳐지나갔다. 불빛을 따라 가다보니 조각공원이 나타났다. 이삽십 여점의 조각들이 불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 두 벤치위의 연인(Couple on Two Benches, George Segal, 127X155X155, 브론즈, 1985)

George Segal의 <두 벤치 위의 연인>
늦은 밤 산 속 콘도에서 빛과 어둠, 길게 늘어선 그림자와 가는 빗줄기를 따라 촉촉하면서 맑고 시원한 대기 속을 이리 저리 거닐다가 George Segal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정말 뜻 밖의 만남이었다. 

1993년 호암갤러리의 <포스트 모더니즘전>에서 아마 처음 보았던 것 같다. 그때는 함께 전시되었던 로버트 롱고의 작품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보았던 롱고의 작품보다 시걸의 작품에 마음이 갔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1993년 전시회에는 조지 시걸이 없었다. 1995년에 호암갤러리에 <조지 시걸展>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전곡에 있다 금곡으로 부대를 바꾼 후 주말에 나와서 보았을 텐데, 그러면 그때도 아내도 함께 가지 않았을까?)


▲ 조지 시걸- Walk, Don't Walk (1976) | Woman Sitting on Bed (1996)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은 뉴욕 출신의 미국의 조각가이다. 1950년대까지 회화에 전념하다가 카프로(Allan Kaprow)를 만나 해프닝(happening; 비연극적, 탈영역적 연극형식)의 공간적 공연을 하면서 석고에 의한 인체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의료용 석고 붕대를 이용해 인체에서 직접 본떠 주형으로 실물과 꼭 닮은 모조품을 만들어 일상생활 속에 있는 환경적 오브제와 함께 전시했다. (의료용 석고 붕대! 미적 체험을 통해 우리가 지닌 병을 치료하려 했을까?)
그는 로이 리히텐스타인이나 앤디 워홀 등과 함께 팝아트의 중심인물로 1960년대 미국 대중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했다. 하지만 리히텐스타인이나 워홀이 광고, 잡지, 만화 등을 소재로 삼아 영감을 얻은 것과는 달르게 시걸은 일상(하찮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20세기 최고의 조형조소가가 되었다.

시걸은 실물크기의 석고조소 제작으로 유명하다. 초기의 순백한 석고상과 환경적 장치는 차츰 그 규모가 커져 1970년대 이후에는 색채를 가한 인체상까지 제작했다. 그의 환경조각은 대도시 대중의 군상을 표현했고 이런 작품을 통해 그는 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걸의 작품 소재는 산업사회의 발전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들이다. 산업사회의 상징인 규격화된 주유소, 대형 상업광고판, 레스토랑, 모텔, 지하철, 극장, 세탁소, 간이식당, 거리 등 평범한 도시의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낯익은 일상 속에 서있는(내던져진) 인간들은 호퍼의 그림처럼 소외되고 고독하며 '현대적 쓸쓸함'이 짙게 묻어난다.

그는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이름 없는 존재들인 시민들의 일상, 그 속에 배인 존재의 무기력, 권태를 표현했고, 그 중에서도 군중 속의 고독을 포착했다. 표정 없이 서 있는 사람들, 사람들 속에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들은 실제 인체를 떠내어 살아있는 듯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붕 떠 있고 비개성적인 모습인 도시민의 소외된 모습을 더욱 심화시킨다.


1993년 호암갤러리, <포스트 모더니즘전>
(잘못된 기억이지만) 조지 시걸을 처음 보았던 곳으로 생각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전>이 있었던 해에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 봄에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에릭 피슬(Eric Fischl) , 그리고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네 사람의 작품을 보았다. 아래 포스터를 하나 사서 액자로 만들어 내 방에 걸어놓은 후 군에 입대했다. 왜 평소 안하던 그런 짓을 했을까? 지금도 미스터리다.

▲ AMERICAN POSTMODERN ART 포스터 (위 시계방향 슈나벨, 살르, 피슬, 롱고의 작품)

조각공원에서 1993년 <포스트모더니즘전>을 기억한 것은 조지 시걸의 작품과는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익명적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1953~)와 두 사람이 자주 비교되기 때문이었을까? 롱고도 일관되게 탐구한 것이 시걸과 같이 도시의 삶과 문화였다. 이를 통해 현대인 일상적 부담, 고통,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제도와 장치가 지닌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려 한다.
그가 표현한 춤추는 듯, 쓰러질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누구일 수도 있다. 역동적인 포즈와 함께 가려진 얼굴, 즐겨 사용하는 흰색은 익명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지만 절제된 이미지(표현양식)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당시 제일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은 '미국 부르조아계급의 문화적 타락'으로 읽혔던 에릭 피슬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했던(!) 시기였던 만큼 롱고의 <이 얼간이들아! 신 앞의 진리>에서 우둑허니 한동안 서 있었다. 두 작품이 버무려져 1993년 봄 <서울풍경2 - 호암갤러리>를 썼다. 입대 기념으로 묶은 『최종심급』에 들어있다. 

시의 첫부분은 로버트 롱고의 작품(포스터에서 좌측 하단)에 대한 이야기고 중간부분인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는 에릭 피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80년을 넘어 90년대가 맞닥뜨린 이념적 상황에 대한 원론 수준의 생경한 외침이다.

서울풍경2-호암갤러리
이 얼간이 들아! 신 앞의 진리

무대엔 싸우는 사람들로 하나 가득했다
싸우면서 그들은 거대한 괴물과 무기를
만들었다 핏줄 돋은 공격적인 성기를 앞 세우고
깃발엔 성조기와 적기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리와 함께 이 세계는 끝장 나리라
하지만 달러화는 철갑같이 단단하다
고르비만 쓰러지고 레이건은 황제처럼 버티고
웃고 있었다 오페라좌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신들도 따분한 구경을 그만 두고 전투에 참가했다
교황은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해 축복을
내렸다 전투 속에 한쪽 젖퉁이는 두부처럼
잘리워져 나가고 남은 한쪽만이 세상을
유혹한다 여기에 천국같은 지옥이 있다
작가들 이론가들 열심히 그것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평론가들은 논평을 한다 이것은
어떻고 저떻고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이다
우리시대 이성이 만든 제일 마지막 작품이
여기에 있다 와서 보라 싸움은
종반전에 이르렀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싸움은 시작하고 있다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이런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산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좌파가 오른쪽으로 밀리자 우파는
더 오른쪽으로 갔다 따라서 좌파는 여전히 좌파다
하지만 대칭적인 세계는 이미 균형이 깨져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이고 포스트 마르크스다
브레히트가 나에게 말해준다 푼틸라
술만 먹으면 자신이 인간인 체 했다 하지만
술이 깨면 악랄한 지주가 되었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그땐 우파가 왼쪽으로 밀리고 좌파는
더 왼쪽으로 간다 따라서 우파는 여전히 우파다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도 포스트 마르크스도 심지어는
정통적인 마르크스도 레닌도 없다
단지 투쟁하는 인간의 무리들만이
어떤 진리도 거부하고 싸울 것이다
변증법의 냉혹한 철칙 속에
어디에 선언되는 진리가 기생할 수 있겠는가
* '이 얼간이들아!-신 앞의 진리'는 로버트 롱고의 작품명이다.
15년 전의 인식과 소비 자본주의 문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이들이 천착했던 일상이 정말 하찮은 것일까?' 하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인듯 하다. 사람들이 하루 하루의 일상의 중요성 알고 이에 천착할 때, 정말 삶이 힘겹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억압적 구조를 깨달을 때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것들'을 하찮게 만들고 세상이 어차피 그런 것으로 생각하도록, 아니 이런 것을 느끼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세계의 위대함인듯 하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은 이런 것을 알고 느끼는 사람들까지 흡수하여 이것을 '돈을 내고 소비'하도록 만든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1993년, 지금부터 십오년전의 인식이다. 이때도 소비자본주의와 욕망에 대한 책은 읽었지만 이런 생각을 피부에 닿게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 '환상이 계속되리라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60년대의 유럽과 같은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세상이 변했을까? 아니면 내가 변했을까? 아니면...


월송계곡 산책
일요일 아침에 조각공원을 돌아보고 월송계곡, 팔각정(실제는 육각정이다.)을 거쳐 산책로(오솔길)을 따라 콘도로 돌아왔다. 두시간정도가 걸렸다. 밤비를 맞으며 조명 속에서 보았던 조각들을 아침에 보니 달리 보인다.


계곡은 가끔 소나무가 하나씩 있고 대부분이 이름 모를 활엽수와 참나무로 이루어졌고 여기 저기 노란 산수유가 피어 있다. (사실, 산수유가 아닌 생강나무였다.) 참나무 등걸을 한참 바라보다 잿빛 색감과 거친 질감이 화강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각공원에서 본 둥글 둥글한 것이 누이 같았던 <그리움은 저 별이 되어>가 겹쳐졌다.

아내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향기가 좋아!" 하고 외친다. 산수유 꽃에 코를 대고 작은 꽃을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일행 모두 코를 꽃에 들이대고 가슴 깊이 향기를 들이켰다. 잔가지 하나를 꺽어 코에 댔는데 옅은 생강내음이 난다.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네!" 내가 말을 했다. 봄 들녘에서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구별하기는 쉽지않다. 산에서 내려와 콘도 정원에 있는 산수유 꽃에 코를 대보았는데 아무런 냄새도 없고, 꺽인 가지에서는 향긋한 것과는 거리가 먼 구리 구리한 냄새가 났다. 생강나무는 처음이다. 몇년 전 아내가 순호와 숲 체험을 다녀와 생강 냄새가 나는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즈음에 아내가 생강나무를 꺽어 냄새를 맡게 해줬었나? 잘 모르겠다.)



▲ 조각공원, 참나무 껍질, 생강나무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몇 개의 계곡이 있고 지난 밤 비가 내려서인지 계곡 사이로 졸졸 거리며 맑은 물이 흘렀다. 오솔길 아래 계곡은 좀 깊고 습기가 많아 나무와 바위에 파릇한 이끼가 끼어 있어 산 자체가 멋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 그만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봄을 실감케 했다. 이번 나들이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 계곡에 흐르는 물, 그리고 이끼
▲ 겨울에서 봄으로 - 낙엽, 물고기, (무당) 개구리 알, 꽃봉오리,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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