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08의 게시물 표시

추천 게시물

일요일 이른 아침 - 호퍼의 그림, 낯설게 보이는 '현대적 쓸쓸함'

이미지
▲ 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on canvas, 35 x 60 in. Edward Hopper(1882~1967),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Early Sunday Morning, 2008.2.24, Seoul 예각의 빛과 공허한 공간 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어디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 공간 속에서 서 있다면 빛과 공간이 만들어낸 외롭고 쓸쓸한 기분을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우리는 외로운 공간 속에 살지만 스스로 자신이 사는 공간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세상을 재현함으로써 우리가 스스로를 대상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그림이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공간이 일요일 아침 바라보면 (사진처럼) 낯설게 보인다. 매일 아침마다 지나지만 한번도 자세히 길 옆에 늘어선 건물에 비춰진 건물의 그림자를 본적이 없었다. 텅빈 거리, 옷깃을 여미고 공중전화 옆을 지나는 여인도.   ----------- 호퍼의 그림을 본 후 의식적으로 일요일 아침 창을 열고 바라본 거리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조차 하다. 호퍼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한다. 아니 너무 관심이 없어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나게 만든다.   호퍼는 그림을 통해 일상의 익숙한 이미지들이 낯설게 만든다. 재현(대상화)를 통하여 '낯설게 하기(Verfremdung)' 효과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심리적 거리감을 만든다. 이 거리감 때문에 호퍼의 그림 자체는 슬프고 쓸쓸함을 뿌려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를 슬프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속에서 서 있는 우리가 바로 그 그림의 대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면. ----------- '낯설게 하기...

남한 사회에서의 국가 형성 - 과대성장국가이론을 중심으로

이미지
사진출처:  http://kr.blog.yahoo.com/cks21kj/folder/2675336.html 남한 사회에서의 국가 형성 - 과대성장국가이론을 중심으로 1. 우리가 단순화시켜 생각한다면 “8•15로부터 한국전쟁이 완료되는 1953년까지의 시기는 ‘갑작스런’ 해방에 의해 식민지시대의 어떤 계급도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두 가지 길, 즉 ‘혁명적 민주주의적 길’과 ‘신식민지적 자본주의적 길’ 간의 첨예한 투쟁이 전개되었던 시기”註1)라고 할 수 있다. 왜 이것이 ‘단순화’된 생각인가 하면 처음부터 이러한 두 가지 경향만이 역사적으로 선택될 가능성을 가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선택의 가능성들이 상존해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내외부적으로 조건 지워진 서로 다른 정치적 집단들의 투쟁이라는 역동적 과정 속에서 위의 두 경향이 서로 형성•강화되고, 서로 대립되면서 내전이라는 파국적 상황까지 달려나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당시의 한국사회가 서 있던 내외부적인 요소들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하여, 그것에 조건 지워져 서로 투쟁하는 상이한 계급•계층적 이해를 담지한 정치세력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 투쟁과정 속에서 두 가지 경향이 생성•대립하면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남한 사회에서의 국가형성과정을 살피겠다. 2. 해방 이후의 남한 사회에서의 폭발적인 계급투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36년간의 일본 식민지 하에서 형성된 혁명과 반혁명의 물질적 기반을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반혁명의 기반을 이후 논의를 위해 좀 더 자세히 살피기로 하겠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한 부르주아국가와 거기에 수반되는 법적, 제도적 틀의 확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식민지에서의 부르주아 혁명은 메트로폴리탄 부르주아에 의한 식민지 통치의 부과와 함께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나 식민지에서의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메트로폴리탄 부르주아의 과제는 단순히 메...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바슐라르 상상력의 위치

이미지
어제에 이어 바슐라르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집어들어 읽다가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단순 문학비평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에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형태로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는 객관적 인식의 정신 분석을 통해서도 쉽게 제거되지 않는 인식론적 방해물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객관적 앎/지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런데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은 그 자체의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는데, 상상력이 이 원형을 향해가는 정신의 자체적인 힘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원형과 외계의 사물 사이에 놓인 상상력은 끊임없이 사물을 원형에 가깝게 변형시키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바슐라르 이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하는 정신 기능이었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의 물질성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물의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슐라르는 물, 불, 공기, 대지의 물질성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유형화된다는 사원소론을 정초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할 뿐 아니라 변형하고 극단적으로는 이미지를 지워버림으로써 <이미지 없는 상상력>의 단계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물 위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취한 나르시스의 신화는 상상력의 작용을 잘 보여준다. 거울에 뚜렷하게 비친 얼굴보다 물 위에 흐릿하게 비친 얼굴이 더 아름답다. 또 물 위에 핀 연꽃을 찍은 사진보다 그것을 그린 모네의 회화가 더 아름답다. 이러한 이유는 물위의 영상이나 회회의 영상은 흐릿하지만 그것 들여다보는 인간의 상상력은 수면의 파동을 따라, 또 그림을 따라 끊어진 부분을 이어가면서 하나의 영상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르시스의 경우 물 위의 영상이 아름답...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 바슐라르, 알뛰세르

이미지
Portrait de Gaston Bachelard   요즘 ❮프랑스 비평사 - 현대편 (1983)❯을 읽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씩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시작을 이 책에서 찾은 듯하다. 프랑스 비평사 (근대/현대편) 김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이 책의 서문에서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바슐라르의 스승이었던 아벨 레이는 사람은 오류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 오류를 완전히 고칠 수는 없겠지만, 그 오류를 객관적으로 정신분석해 나가면, 그 오류를 가능케 한 내 욕망의 뿌리를 얼핏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욕망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을까?" 많은 경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않는다. 관심 갖는 부분만을 읽고, 또 다른 책에서 관련된 부분을 책아 읽고 그러다보면 네다섯권의 책이 며칠간 옆에서 뒹군다. 이런 버릇대로 제3장 <바슐라르의 문학비평>만 읽었다. 바슐라르는 과학철학자로 시작해서 문학이론가로 사고를 전개해 나갔다. 과학철학자로서의 바슐라르의 이야기는 알뛰세르로 이어진다. 막연하게 그렇겠지 생각하긴 했다. 오래된 책을 꺼내들고 그때 몰랐던 사실을 확인한다. 예전 이 책을 읽을 땐 알뛰세르도 푸코도 보기 전일게다. 아마 그 땐 책의 내용도 이해를 못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오해'라는 방식으로 이해했을 게다.  그렇다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바슐라르를 바슐라르 그 자체로 다시 읽으며 이해했을까? 이번엔 알뛰세르식으로 아니면 푸코식으로. 아니다. 실제는 현재의 내 수준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해의 강도를 말 그대로 '털 끝만큼도 틀리지않고 똑같이'라는 기준, 즉 '사고의 동일성'이라는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완벽한 이해란 스스로가 이해할 대상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