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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적 우위 확보를 위한 전략: Peacock의 경우 (넷플릭스와 다른 전략적 접근에 대한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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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2021.08.03 / 
Peacock, Update - Leveraging Comcast’s Xfinity platforms with Sky in Europe

update, 2020.11.09 / peacock 성과
: Comcast’s Peacock At Nearly 22 Million Sign-Ups; Q3 Sales, Profit Dip; Theme Park, Theatrical Revenues Plunge
Peacock sign-ups hit 22 million, exceeding every internal engagement metric for the new streaming service — even without the Olympics or The Office — the company said Thursday. At last check — a media conference in mid-September — it had 15 million sign-ups, which was up 50% from the 10 million Comcast reported with its second quarter numbers in July.
  • 2020.6월 말: 1,000만명
  • 2020.9월 중순: 1,500만명
  • 2020.10월 말: 2,20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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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일 Peacock 서비스가 런칭됐다. 피콕은 NBCUniversal의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streaming video service, OTT)이다. 개인적으로 피콕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SBS사이트에서 처음 서비스하면서부터 NBC를 관심있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Peacock의 포지셔닝

7.2일 쓴 ⟨국지적 우위 확보 - Online Streaming Service / OTT산업에서 포지셔닝 전략⟩에서 넷플릭스, 아마존 비디오, BBC iPlayer 등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했다. ⟨국지적 우위 확보⟩의 그림3 서비스 포지셔닝에서 피콕의 위치는 BBC와 같은 방송사지만 3/4분면이 아닌, 2/4분면 정도에 위치한다. 그 이유는 실시간 스포츠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COVID-19 이전 런칭이 7.15일로 계획된 것도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미국에서 스포츠 이벤트를 앞세운 Peacock의 선전을 기대했던 까닭에 5.12일 쓴 글의 말미에 "언젠가 나는 '코로나19'라는 우연한 사건이 넷플릭스를 살렸다라는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넷플릭스의 진원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update. 2021.1.4 
2021년 넷플릭스 전망 밝지않다는 내용은 지난 7월 말했던 우리의 기대/예상에 부합한다. 또 스포츠 이벤트를 앞세운 Comcast (Hulu, Peacock)의 선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The leading streaming service has been a big winner in odd-numbered years, but next year could be different.

2020년, COVID19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행해진 사회적 거리두기와 락다운(lockdown)은 넷플릭스의 성장에 큰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Disney Plus와 HBO Max, Peacock 등 경쟁 업체들의 등장은 이제 사실상의 독점적 지위가 부식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년간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은 계속되겠지만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순히 경쟁자들이 아닌 미디어 콘텐츠업계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했었고, 넷플릭스는 그들의 콘텐츠로 가입자들을 모았다. 
넷플릭스 가입자들은 오리지널 프로그램 만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 The Office, Friends 등의 인기 시리즈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가입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더욱 더 한국과 다른 미국의 파편화된 콘텐츠 이용/접근 환경에 주목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Mint] 디즈니·애플TV 플러스·HBO맥스… 해외 OTT 플랫폼 한국상륙 작전 (2021.1.4)

미국에선 ‘훌루’와 스포츠 채널 ‘ESPN플러스’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번들(묶음) 상품이 인기다.


넷플릭스와 다른 Peacock의 경쟁력

오늘은 넷플릭스와 그 결이 아주 다른 피콕 이야기를 하겠다. 앞서 살펴본 넷플릭스가 안하겠다는 3가지 중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빼놓고 라이브 방송, 광고(유료 구독모델 집중)에서 피콕은 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 위치는 NBCUniversal과 Comcast가 가진 넷플릭스에 비교해 '상대적/국지적 우위' 지점이다. 한국의 방송사들도 그 지점 근처에 서있을 것이라 가정해 본다. 이런 가정(전제) 위에서 6.18일 쓴 ⟨다시 n스크린 결합상품을 생각한다⟩를 읽어보면 좋겠다.

피콕의 모회사는 미국의 케이블 TV, ISP 사업자이고, NBCUniversal과 SKY는 뉴스,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스포츠 이벤트 등에 대한 독점적인(exclusive) 방송권을 가지고 있다. Hastings(넷플릭스 CEO)가 유럽에서 ⟨House of Card⟩를 빼앗긴(?) 곳도, 4K 월드컵 라이브 중계를 이야기하다 막힌 곳도 아마 이들일 것이다(확인해 봐야하겠지만). ⟨② Reed Hastings, Netflix CEO가 안하겠다는 3가지 - 두 번째, Live Streaming은 없다! 특히, Sports ..⟩에서 '어떤 사건이 있어고, 넷플릭스는 무엇인가 깨달았다!' 했는데 그 깨달음의 배경에 이들이 있지않았을까! 

약점으로 변할 수 있는 Peacock의 강점

피콕의 약점과 강점은 미국과 유럽에 근거를 둔 미디어 회사에 기반한 모델이라는 것인듯 하다. 넷플릭스(독립적 OTT사업자)만큼 미디어/콘텐츠 회사가 기존의 거래관행과 매출, 내부경쟁(유통 vs. 플랫폼 부서간) 등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하게 전개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아마도 내부경쟁자들은 Peacock보다 더 많은 경쟁자원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CNBC나 E(엔터테인먼트)채널이 Local 방송사(SBS미디어그룹)와 제휴해 사업을 하고있다.

Peacock 사업모델, 광고와 유료 양날개

피콕이 광고모델도 함께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광고영업(AD Sales Power)가 강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이미 컴캐스트의 유료TV 고객을 잡아두고(cord-cutting을 막고), OTT-Tier를 추가해 업셀링(Up-Selling)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있겠다. 넷플릭스가 광고를 안하는 이유의 반대이다. 넷플릭스는 광고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했지만, 피콕은 기술 이전에 오랜 방송사업의 업력(방송 브랜드, 다양한 채널, 영업력)으로 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 판단이 깔려있다.

차별화 전략 - 핵심역량 기반 활동체계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넷플릭스의 반대편에 서있다. 그곳에서도 Originality(독점권)의 확보와 프리미엄을 갖은, '서비스 포지셔닝'에서 2/4, 3/4분면을 덮을 자신이 있는 것이다. 또 무료-광고모델(Ad-Supported Model)까지 병행함으로써 4/4분면까지 자기 세력 아래 두려고 하는 듯 하다. 


이런 자신감은 기존 사업군의 '전략적 재배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재배치와 그들의 활동체계(핵심역량, 또는 강점)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서 나온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업의 객관적 조건'과 '주체역량'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은 시뮬레이션과 테스트(Hulu 참여)를 해보고, 자신이 생겨 달려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두마리 토끼 쫓기가 아닌, 하나의 전략: 일관성

하지만 내가 감탄스러운 것은 이들의 전략적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시도, 즉 전사적인 하나의 전략적 활동체계를 만드어내는 것은 항상 한계에 봉착한다. 

'전략적 재배치'라는 것은 이렇다. 잘하는 것을 하는 것! 앞서 NBCU와 Sky가 미국과 유럽에서 뉴스, 엔터테인먼트(쇼와 코메디), 스포츠의 강자라고 했다. 이들은 "by delivering timely and topical content"을 들고나온다. 적시에(timely), 시사적인(topical) 콘텐츠는 넷플릭스가 피가겠다는 실시간 방송에 가깝다. 스포츠와 같은 실시간 이벤트 산업적 특성은 '그 시간/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Monetizing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건-시의성-이슈 중심'의 이 쟝르는 아카이브를 통한 시간의 확대(재방송/재시청)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올 수 있다.

(드라마와 같은 VOD와 실시간 이벤트에 관련된 경제이론에 입각한 논의는 다음에 다루겠다.)
(지켜봐야겠지만) 이들은 유튜브에서 어떤 콘텐츠들을 빼고, 넷플릭스와 훌루 같은 OTT 플랫폼에서 Peacock을 위해 편성/유통전략을 바꿀 자세가 되어있는 것 같다. 피콕 차별성 확보를 위해 유통전략(플랫폼별 편성전략)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현재(launching period) 전체 전략의 중심점은 Peacock에 맞춰져 있는 듯 하다. 아래 장표는 밸류체인 조정을 위한 피콕의 계획을 정리한 것이다. 

서있는 토대에서 경쟁력 찾기

아래 장표처럼 (상대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피콕의 Product(서비스)는 역사성과 현실적 조건의 산물이다. 또 그 복잡성 때문에 조직의 역량이 약화되거나 아주 많은 사람의 고용이 필수적이라면 피콕은 얼마안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린 '활동체계'의 정비/재배치를 이야기한 것이다. 

인적투자의 최소화와 기존 조직의 활용, 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너지가 전략의 핵심요소이다. 한국에서 웨이브나 티빙 같은 방송사를 근간으로 하는 OTT를 살펴볼 때도 같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이것에서 실패할 때(예를 들면 조직이 이원화되거나 중복될 때), 특정 사업군의 성공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볼 때, '넌센스'이다. 이런 점에서 티빙이 지상파보다 앞선 것은 아닐까! 앞섰다는 것이 잘했다, 먼저했다는 아니다. '조직적 이중화에 따른 부담이 덜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우린 초기 계획했던 역할의 분배에 실패했다.

위 장표를 보면 OTT 산업 내에서 유의미한 전략 중 하나가 시장분할과 콘텐츠 제휴모델이다. 제국주의시대 초기 열강들이 '땅따먹기'하듯 시장을 분할하고, 콘텐츠를 교환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존 사업과 함께 돌아가는 회로/기계 만들기

(구경꾼 입장에서) 웨이브 등의 상품정책을 볼 때, 넷플릭스와 같은 '단일' 상품팩키지로 가는 것은 경쟁력이 제한된다고 생각된다. 이런 상품은 조달비용에서 만들어진 가격경쟁력, 이에 기반한 초기 시장 침투력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피콕이 낮은 가격으로 시장침투력을 높이고, 다른 경쟁자(여기서는 넷플릭스)가 들어오기 힘든 수익모델(광고)에 힘을 주는 것은 "국지적 우위" 확보 방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하나의 회로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앱/웹에서 이용자를 모아 TV로 보내거나, TV이용자가 앱/웹을 이용하면서 추가매출(up-selling)을 올려 ARPU를 올리거나! 이들이 가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계'는 넷플릭스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이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계/회로를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이들은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따라서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생존을 위해, 생존해있다면) 이런 기계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기존사업과 접속된, n스크린 기계가 되고 싶은 Peacock

우린 이런 지점에서 n스크린이란 이슈, 서비스를 다시 꺼내살펴볼 필요가 있다. 6.18일 ⟨다시 n스크린 결합상품을 생각한다⟩란 글을 쓴 배경이다. 컴캐스트가 "피콕이 넷플릭스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왜 OTT사업에 뛰어들었을까! 그들은 디즈니플러스나 넷플릭스가 만들지 못하는, 제공하지 못하는 밸류를 만들수있다고 자신한다. 그것이 n스크린인 듯 하다.

NBC에서 배운 라이브 이벤트의 활용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2008년부터 지켜봤던 NBC의 Subscriber모집 전략을 살펴보겠다. 그전에 우리가 그들의 전략을 살펴보며 배워, 따라했던 사례이다. 우린 이런 방식으로 OTT를 강화하거나, 또는 콘텐츠의 가치(판매가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글에서 인용한 장표들은 2020.1월 취미생활로 만든 ⟨200120 NBCUniversal OTT Service_Peacock 전략분석⟩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NBC를 보면서 배운 내용들이 바로 아래 장표이다. 이 글(peacock)과 관련된 포스팅은 제일 아래 링크를 보라.

아래 장표에 있는 광고와 유료는 미디어사업(방송사업)의 두 날개이다. 이것 이외의 모델을 아직까지 발견/발명하지 못했다. 이 두개의 모델을 이용해 더 많은 가능성/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미디어 전략의 방향(즉, 구체화된 전술)이다.
그림출처: 上同


위 글에서는 Peacock에 대한 언급이 있다. Peacock의 관점에서 n스크린 중심의 경쟁방식을 고찰한 글이 ⟨경쟁에 대한 관점 변경 - 플랫폼 경쟁에서 "전체" 동영상 시청 시간 점유율 경쟁으로⟩이다. 경쟁우위에 있는(서비스)  지점으로서 n스크린!

2020.7.16일 시작해 7.27일 작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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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2020.8.11
update.2020.9.28 

Disney의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광고업계의 지각 변동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TV 광고 시장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eMarketer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 상반기 미국 TV 광고비 지 출이 2019년 상반기 대비 22.3~29.3%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하였다. 2019년 상반기 338 억 6,000만 달러에 달했던 미국 TV 광고비 지출이 올해 상반기에는 감소세가 263억 달러~239 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관측한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대규모 광고 매출을 견인해 왔던 스포츠 생중계 콘텐츠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중단의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TV광고부문에서 디지털광고시장으로의 광고비 이탈현상이 더 뚜 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방송사 진영은 통상적으로 대규모 광고 매출을 견인하는 라 이브 스포츠 중계의 공백을 중대한 위기로 파악하고 있다. (page.30)

스포츠와 관련된 comment는 ⟨독점적 경쟁시장에서의 전략 - OTT산업의 경우, 2020.5.12⟩를 볼 것. 이곳에서 "언젠가 나는 '코로나19'라는 우연한 사건이 넷플릭스를 살렸다라는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NBCUniversal이 peacock과 도쿄 올림픽, 예능 라이브를 앞세워 하려던 '차별화' 시위는 한풀 꺽였을 것이다."라고 했었다. 

 

 


 


유료 동영상 OTT의 주전장터에 대해 - TV vs. Mo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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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2020.12.2

퀴비의 철수/실패 원인 중 하나가 저작권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OTT업계 “사활걸렸다"…저작권료 상향 움직임에 우려 증폭❯이란 기사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음악 저작권료 관련 해외 판례와, 국내 라디오 방송 다시듣기에서 음악듣기가 안 되는 사례 등 여러 불합리한 점들을 정리해서 전달했다"며 "혁신매체는 일단 이용을 활성화한 후에 저작권 등의 권리를 주장해야지, 처음부터 저작권 문제에 발목 잡혔다간 미국 OTT 퀴비 사례처럼 사업자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고 말했다. 퀴비는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미국 OTT다. 퀴비의 실패 사유로 저작권 과보호가 꼽힌다." (조선일보, 2020.12.02)


post, 2020.10.28, AM 10:03 

"모바일 전용 OTT 퀴비, 6개월 만에 서비스 종료"라는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POOQ(현 WAVVE)와 넷플릭스를 비교했던 글이 생각났다. 이런 관점에서 아래 기사와 지난해 10월에 썼던 글을 살펴보자.

  • (유료) 동영상 OTT의 주전장터는 어디인가? TV인가 Mobile인가?
    • 주전장터가 TV, (말 그대로 OTT의 어원에 내재하고 있는) Set Top Box라면 경쟁의 방식을 바꿔 볼 수 있다. 
  • (언급은 안되어있지만 추론해보면) Mobile OTT에서 사업모델로 ⟨구독서비스⟩가 괜찮은 걸까? Ad-Support모델인가 구독모델인가?

우리나라에서 카카오TV나 네이버TV 등을 두번째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 살펴보면 괜찮을 것 같다. 기사에서 "디즈니플러스와 넷플릭스에 비해 콘텐츠 경쟁력이 부족하고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란 분석은 양면적이다. 콘텐츠 규모/내용도 있지만 서비스모델(사업모델)도 있다. 또 틱톡에 대항한다고 하면서  ⟨구독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틱톡이 있는 경쟁지대로 들어선 것이 아닌, 모바일을 강조하는, 모바일에서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흉내내는 몸짓'일 뿐이다. 틱톡 이전에 안드로이드폰/구글과 결합되어있는 유튜브도 (모바일에) 있다.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틱톡에 대항해 야심차게 출범한 쇼트폼(Short form) 동영상 플랫폼 퀴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결국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21일(현지시간)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퀴비는 곧 서비스를 중단한다. 퀴비의 공동대표인 맥 휘트먼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주주들의 투자금을 지키기 위해 서비스 종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미 퀴비는 출시 이후에도 시장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CNBC에 따르면 퀴비 내부에서는 출시 후 1년 후에는 글로벌 구독자가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출시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독자는 50만명에 그쳤다.

올해 1월 퀴비는 OTT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HP와 이베이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맥 휘트먼이 드림웍스 공동 창업자이자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을 지낸 제프리 카젠버그와 손잡고 만든 Z세대를 겨냥한 쇼트폼 플랫폼이라는 점에서다. 제작자 파트너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을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쟁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타 OTT가 성장세를 타는 와중에도 퀴비 성장세는 지지부진했다. 디즈니플러스와 넷플릭스에 비해 콘텐츠 경쟁력이 부족하고 차별화에 실패한 것도 부진 원인으로 꼽힌다. 맥 휘트먼과 제프리 카젠버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용자를 실망시킨 데에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아주경제, 2020.10.23)

update, 2020.11.10,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


와이즈앱은 2020.9월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을 조사해 발표했다. 앱 사용시간이 많은 상위 10개 앱 중에서 작년 동월 대비 사용시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앱은 Netflix로 159%이다. 그런데 아래 그래프를 보면 1등과의 격차가 아주 크다. Netflix의 다른 사용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유료결제자 등 가입자를 변화를 고려해, 우리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TV가 아닐까. 모바일에서의 시청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앱들의 성격(주요 기능)을 생각해보면 10위에 올라선 것 자체가 놀랍다. 유튜브의 영상과 넷플릭스의 영상은 우리를 '오해하게 만드는 그 형식적인(기술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내용과 성격이 다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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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독점적 경쟁시장에서의 전략 - OTT산업의 경우(2019.10)에서 다시 가지고 왔다. 동영상 OTT에서 Mobile 콘텐츠로 성공가능할까에 대한 질문대해 생각해 볼 재료를 제공한다. 이때 ⟨구독서비스/유료월정액⟩만으로라는 전제가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넷플릭스 이용자의 70%가 TV를 이용한다. 푹의 경우 10%정도이다. 우리가 Screen 기준으로 서비스를 나눈다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다. 

스피노자는 내적 역량(정동)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같은 말라고 해서 같은 말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짐을 끄는 말은 경주마와 다른 종이고 소와 같은 종이다. 역량(할 수 있는 능력)의 차원에서 그렇다. 넷플릭스와 웨이브, 티빙의 역량도 다르다. 전략은 이때, 어떤 다른 역량을 갖으려고 할 때 필요한 말(speech)이 아닌 행동(act)이다. 인터넷망을 이용해 VOD 서비스를 한다고 모두 OTT라는 이야기는 시장을 분석하고, 나누고 배치하는데 도움을 주지않는다. 

그림3.  OTT이용자 시청시간 비교 (푹 vs. 넷플릭스)

위 장표는 지난 1월부터 (일과 무관한 취미생활로) 조금씩 쓰고 있는  OTT에 대한 시장현황과 전략방향 분석글에서 가져왔다. 그림3을 보면, 적어도 Netflix가 OTT의 일반명사이고 한국의 POOQ이 OTT라면 '특이하다'는 것, 즉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예외적인 설명 가설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그림의 아래쪽에 있는 국가별 넷플릭스 이용 매체 비율과 푹을 비교해 보라. 푹(웨이브)은 2019.12월 중 모바일(태블릿 포함)로 본 시간이 전체의 73%를 차지하고, 2018년 넷플릭스는 글로벌 평균 모바일 시청시간이 15%이다.

참고로 웨이브가 '셋톱박스가 없는 mobile-OTT' 강세를 보여준다면 넷플릭스의 모바일 사용도 다른 지역보다 한국이 훨씬 높을 수 있다. 하지만 TV를 통한 넷플릭스 이용자는 웨이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태국만 해도 넷플릭스의 TV 이용시간이 35%이다.

이런 상황에서 LGU+의 전략이 돋보인다. POOQ에 투자해 WAVVE를 만든 SKT보다 나아보인다. LG는 주전쟁터인 TV에서 차별성을 만든 것이다. 경제학원론은 ⟨독점적 경쟁시장⟩에는 어쩔 수 없는 과잉설비가 존재하고,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 차별화에 있다고 말을 한다. 차별화가 가장 기본이고, LG는 TV에서 가진 넷플릭스의 장점/강점을 그대로 가져갔다. LG의 선택은 다소간 '강요된' 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update 2020.8.25 - LGU+의 넷플릭스 제휴 결과에 대한 평가 
 
엘지유플러스는 넷플릭스 성장세에 편승해 수혜를 본 기업이다. 2018년 11월 넷플릭스와의 독점 제휴를 통해 치열한 인터넷티브이 경쟁에서 단기간에 큰 폭의 성장을 이뤄냈다. 엘지유플러스 인터넷티브이 가입자는 2018년 4분기 402만명에서 2020년 2분기 473만명으로 늘었다. 이 기업 관계자는 “2018년 11월 이후 업계 최고의 성장을 이룩한 데는 넷플릭스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케이티(KT)도 지난 3일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고 850만 올레티브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넷플릭스 서비스에 나섰다. 케이티는 국내 최대 유료방송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 오티티(OTT)인 ‘시즌’도 있지만, 엘지유플러스의 독점기간이 끝나자마자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매출 증대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기존 가입자 유지와 이탈 방어 목적이 크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없이 가입자 유치 경쟁을 힘겹게 벌이고 있다. 게다가 에스케이텔레콤이 지상파 3사와 연합해 지난해 9월 출범시킨 ‘웨이브’는 가입자가 줄고 있다. 월간이용자 수는 지난해 10월 379만명에서 올해 5월 346만명으로 8.8%나 감소했다. 케이터처럼 자체 오티티를 보유한 채 넷플릭스와 제휴 서비스에 나설 수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료 소송이다.
 (한겨레신문, 2020.8.24)

comment: KT와 넷플릭스의 제휴는 결국 LGU+의 차별화 전략의 효과를 없애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KT가 1위인 상황을 유지하는 것! TV에서의 KT의 전략방향은 항상 이런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SKT가 모바일에서 그런 염려로 'pooq과의 제휴' 전략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다만 SKT는 모바일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제휴의 효과가 제한 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휴대폰 시장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콘텐츠 등의 부가서비스가 아니라 단말 보조금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와 유사한 것이 애플TV 출시 후 잡스가 깨달은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50% 가까운 시장 점유율 문제였던 것같다. 방어가 아닌 다른 산업(미디어)으로 확장적 모델, 그런데 미디어에서 핵심은 TV다!

KT는 이미 유료TV에서 확고한 1위이고, 30% 규제를 고민해야하는 상황이었고, SKT/SKB는 모바일에서 확고한 1위 유지라는 다른 선택이 있었고, 유선에서는 KT를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 사이에 낀 선택, 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이란 점에서 강요된/어쩔수없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미디어의 본류인 TV가 아닌 모바일에서 1위를 지키는 게 목표라면 이런 방향에서 SKB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1번(TVing의 주이용자)에 대한 생각도 의심을 가지고 봐야한다. 이미 TV로, Live로 봤을 가능성이 있다. 또, 2번은 '채널 주도권(remocon)'이 중요하지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엄마, 아빠가 TV를 보면 나는 모바일 앱에서 다른 채널을 보면된다.

넷플릭스와 모바일

넷플릭스에게 모바일은 무엇일까? (그림3을 보면) 마케팅 창구이다. TV 25%보다 많은 30%의 이용자가 모바일을 통해 모집된다. 그런데 모바일 가입자 중 10%정도만 모바일로 시청을 한다. 우리의 경우 60%정도가 모바일 시청을 한다. (시청시간 기준으로) 결은 다르지만 넷플릭스에 대한 이런 접근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니다. ⟨로아 데일리⟩는 Andreessen Horowitz 애널리스트 Benedict Evans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Netflix에 있어 중요한 질문은 결국 Sky나 Hulu와 마찬가지로 테크와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 TV와 관련된 질문이다. 몇 개의 쇼를 제공하는가, 어떤 장르의 쇼를 제공하는가, 쇼의 퀄리티는 어떠한가, 제작 예산은 얼마인가, 어떤 스타를 캐스팅하는가, 오리지널 쇼들이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했는가, 경쟁사들이 라이센싱 콘텐츠를 Netflix에서 제거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Disney와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등이다. Netflix가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실리콘 밸리에서 흔히 묻게 되는 질문이 아니라, LA나 뉴욕에서 물을 법한 질문들의 답에 의해 Netflix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인용자가 일부 내용을 Evans가 말하는, 직설법으로 고침)

 


 


Evans와 주장의 결이 다르다는 것은 Disney나 콘텐츠 거인들과의 관계나 테크보다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입장에 내가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OTT, 특히 테크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줄 곧 해왔다. 테크의 한계가 표출되는 방식은 스포츠 중계에서 이다. 국가적인 제의를 만들 수 있느냐에서이기도 하다. 실시간 참여를 이끄는 뉴스, 스포츠 등이 미디어 사업에서 중요한데, Netflix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이곳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에반스와 다른 계열(가치)로 넘어간다. 

또 부연해서 말하면 컴캐스트/NBCU의 peacock이 Netflix와 다른 결의 전략방향을 보여주는 지점이 이곳이다. 나는 이벤트성 짙은 실시간 안에서  OTT의 어떤 결점점/특이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결절점/특이점을 "생명의 나무"에 비유해서 보면 종이 나뉘는 지점이다. 인터넷 위에서 스트리밍되는 영상서비스의 종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 개체군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책 찾아 다른 모습으로 개체화되는 것처럼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결국 다른 역량을 가진 비즈니스모델의 성립이다. 이 변곡점에서 'Old-Media'의 승리가, 성공이 나온다면 게임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것도 언젠가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이고, 이렇게 생각할만한 근거도 제시할 수 있다. (2018년 아시안게임을 분석한 글에 이 주제가 들어있다.)⟩




KT-넷플릭스 제휴를 보며, 다시 TV포털을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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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KT의 제휴를 보면서, 그리고 그 이전 LGU+과 넷플릿스를 보면서 우리가 2006년 IPTV시범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진행했던 SBS TV포털이 생각났다. 우리가 그렇게 '싸우면서도' 가지 못한 길을 넷플릭스는 훌쩍 올라탄다. 우리가 7~8년 넘게 졸라도 '안해주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N스크린 전략이나 DCP(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의 구체화된 모습을 넷플릭스가 보여준다. 국내로만 한정하면 우리 꿈(가입자수)이 훨씬 컸었던 것 같다! 그런 '욕심' 때문에 안된건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아전인수'식으로 생각하면 넷플릭스의 (아래 기사에서 말하는) 무임승차를 따질 수 있는 곳은 통신사보다 방송사가 아닐까! IPTV가 초기 투자가 많이 들어가고, 가입자 마케팅에 돈을 많이 써서 적자일 수 밖에 없으니 콘텐츠를 싸게 달라 말에 넘어가, 콘텐츠를 제공해 천만이 넘는 가입자를 모으는데 힘을 보태놓고도 이젠 넷플릭스보다 못하다는듯 차별을 받는 곳 말이다. 내가 느끼는 '차별'을 '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보자! '우리도 넷플릭스와 같은 조건으로 셋톱에 올라가고 싶어요!'라고. 이걸 받아준다면 차별이 아니라고 하겠다. 우린 이런 조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는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사실 나는 '못 간'이 아니라 '안 간'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부터 2012년 푹(pooq)까지 모든 plan에 넣어 놓고도 선택하지 않은 길이다. 상대인 통신사의 반대도 있었지만 내부의 도전도 만만치않았다. 우리의 데브옵스 수준(능력)을 보라는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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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많다. 복합연계성(complex connectivity) 개념이 떠오른다. 2012년 ❮뉴미디어 탐구, 10년❯ 기념으로 그간 쓴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인용하고, 이용자 상황에 적용했었다. 의사결정 과정에 적용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야 '아전인수'식 해석을 못할테니.

" … 신자유주의에 의해 개인적,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블록적, 지구적 차원이 서로 복합적으로 연계된 지구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멸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추동하는 것은 로망스 서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국가의 로망스 서사도 파편화되고, 현재 국민국가가 동원하려고 해도 로망스를 아이러니로 전환해서 받아들이기에 잘 동원되지 않는 상황이다. 복합연계성(complex connectivity) 덕분으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국민국가에 고착된 민족문화만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렬, ⟨뒤르케임의 전통에서 본 신자유주의와 문화⟩ (뒤르케임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사회이론학회 엮음, 동아시아, 2008, pp.290~291))

'복합연계성'란 개념을 스마트TV, 스마트폰이 출시된 새로운 매체상황에 적용했었다. 사람의 몸(경험) 중심으로, 현상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겠썼다.

디지털화와 경쟁의 심화로 서로 다른 많은 수의 기기들, 네트워크들, 플랫폼들, 서비스들이 (과거와 비교하여 콘텐츠 제공 경로가) 파편화되지만 사용자의 몸(경험)을 중심으로 복합적으로 연계 

➔ TV 경험을 더 이상 TV만 놓고 이야기하기 어렵게 됨

똑같은 개념을 TV포털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도 적용한다면 개별적인 산업적 주체들(players), 또 어떤 특정회사 내의 주체들(부서들)에도. 다 떠나 생각보다 복잡하다, 많은 연결들이 있고, 그 연결선들의 힘의 관계에 따라 '어떤 것'이 출렁되면서 만들어진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한번 들어진 개체(entity - business model)는 잘 분해되지않는다. 응축된 역관계는 제도(법, 계약, 관행/관습  등)로 고정되기 때문이다.그 개체(사업모델) 안에 rule이 내재되어있다. 그 rule의 적용이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넷플릭스가 변화된 rule을 보여준 것이라면 방송사도 현재의 rule과 변화된 rule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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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옛날 발표자료들을 들쳐본 이유는 어제 읽은 아래 기사 때문이다. 또 어제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OTT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동기가 되었다.

"지상파 3사와 연합해 지난해 9월 출범시킨 ‘웨이브’는 가입자가 줄고 있다. 월간이용자 수는 지난해 10월 379만명에서 올해 5월 346만명으로 8.8%나 감소했다"는 내용을 보면서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 결과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 자기정체성을 정한 댓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품종이 다른 것과 비교되면서 회초리를 맞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2011년, 푹을 사업계획서를 쓰기 바로 직전 발표한 자료이다. "CP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면, 또 "네트워크 없는 플랫폼 사업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도달해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KT-넷플릭스 제휴를 보면서 그 구체적 모양을 보게된다.

"한국형 OTT"의 진짜 모습은 넷플릭스와 같은 방식으로 원하는 '방송사'에게 IPTV와 D-Cable TV 셋톱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넷플릭스 대항마가 여러 개 나올 듯 하다. 한국에서 OTT 플랫폼 사업자가 안나오는 이유는 콘텐츠 문제라기 보다는 기존 미디어(IPTV-방송사) 간 맺어진 관계 때문이라 생각된다.


위 장표에 있는 'TV포털' 요청(요구)사항과 현재 넷플릭스-KT 제휴 내용과 다른 게 없어보인다. 다른 게 있다면 사업자가 다르고, 그 사업자의 국적이 다른 것 뿐인데 ... 







제일 아래 장표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9년, 지상파3사가 돈을 모았고 ACAP 기반의 언바운드 앱과 TV포털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끝을 보지못하고 2011년 푹을 만드는 곳에 합류했다. 자리를 비우자 TV포털은 사라졌다. 그 결정을 내린 계기가 '너무 한심스럽고 창피스럽다'.

그 뒤 2013년 말쯤인가 그 결정을 내린 분이 불러 TV포털을 다시 할 수 있겠냐 질문을 했다. 한 7년을 했었으니, 다시 시작한다면 적어도 2년이나 3년은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본인에겐 시간이 없다며 (푹으로) 돌아가라 했다. 그렇다 전략의 핵심 중 하나는 '시간이 많아요!' 정신이다. 

'시간이 많다' 믿고 하는 수 밖에 없다. 역시 '믿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제 넷플릭스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다시 똑같은 기회를 달라고 다시 한번 더 말하고 싶다. 적어도 그들보다는 더 잘할 수 있겠노라고! 우린 단번에 IPTV 가입자만큼의 이용자를 보을 수 있노라고! 지금부터 한다면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넷플릭스가 했으니 'global trend'이다! 글로벌 트랜드를 좋아하는 분들, 특히 KT의 동조와 참여가 벌써 느껴진다. 

이제 우리도 연습과 훈련을 많이 해 그 정도의 서비스는 개발, 운영할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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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관련해 최근 쓴 포스트이다.  붉은색 밑줄 ..

❮Difference and Repetition, 차이와 반복❯ 중역 (영어 to 한글): 한역본 2. 대자적 반복, 4절. 반복과 무의식: "쾌락원칙을 넘어서" 부분

Biopsychical life implies a field of individuation in which differences in intensity are distributed here and there in the form of excitations.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 The word 'id'[Ça] in this sense is not only a pronoun referring to some formidable unknown, but also an adverb referring to a mobile place, a 'here and there'[Ça et lá] of excitations and resolutions. It is here that Freud's problem begins: it is a question of knowing how pleasure ceases to be a process in order to become a principle, how it ceases to be a local process in order to assume the value of an empirical principle which tends to organise biopsychical life in the Id. Obviously pleasure is pleasing, but this is not a reason for its assuming a systematic value according to which it is what we seek 'in principle'. This is the primary concern if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not the exceptions to this principle, but rather the determination of the conditions under which pleasure effectively becomes a principle. The Freudian answer is that excitation in the form of free difference must, in some sense, be 'invested', 'tied' or bound in such a manner that its resolution becomes systematically possible. This binding or investment of difference is what makes possible in general, not pleasure itself, but the value taken on by pleasure as a principle: we thereby pass from a state of scattered resolution to a state of integration, which constitutes the second layer of the Id and the beginnings of an organization.

❮Difference and Repetition❯
질 들뢰즈 (지은이),Paul Patton (옮긴이)Columbia Univ Pr1994-05-19, page.96

❮차이와 반복 | 현대사상의 모험 13❯
질 들뢰즈 (지은이),김상환 (옮긴이)민음사2004-03-20원제 : Diffe'rence et Re'pe'tition (1968년), page.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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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psychical life implies a field of individuation in which differences in intensity are distributed here and there in the form of excitations.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하는데, 이 장 안에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 형태로 여기저기에 할당되어진다. 
  •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한다. 
    • 사람의 정신과 신체는[생명체인 인간은] 개체화의 장[바탕/토대]이다.  
    • 인간-생명[심신]은 개체화의 장을 '주름 잡고있다(implied / enfolded)'.
    • biopsychic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of, relating to, or involving both psychic and biological phenomena : relating to the place of mind in life 
  • 개체화의 장 '안(in)'에 강도의 차이가 분배되어'있다'.
    • 어떤(a) 개체화된 장(field)의 특징은 강도 '내(內, in)' 차이의 분배/할당에 있다.
    • 어떤 개체화된 장은 생물심리학적 삶이고, 이 삶은 강도 내 차이의 분배이다.
    • 삶이 과정이고 겪는 것이라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강도 내 차이의 분배가 '변할 것(change)'이다. 삶은 어떤 실체가 아닌 (시간 속에서) 변화를, 차이를 전제한다.
  • 분배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의 형태으로 되어있다. 
    • 형태는 외관, '띠고있는' 양태이다.
    • 모든 강도가 아닌 '생물심리학적 삶'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강도이다. 
    • 생물학의 대상인 생명체는 흥분을 한다. 흥분이 강도적 차원에서 볼 때, 생명체의 특성이다. 흥분이 생물학적인 특성만이 아닌, (이후에 보겠지만) 심리학적인 특성이 된다. 또는 흥분이 심리학적인 것의 기반(바탕)이 된다.
  • '여기저기'는 강도가 할당/분배되는 양태이다.
    • 장 안에서 여기저기, 유동적(mobile)으로 할당된다.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이고, 개체화의 장은 강도 내 차이로 구성되고, 강도 내 차이는 흥분의 형식으로 장 내에 분배된다.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이런 차이들의 양적이고 질적인 해소 과정이 우리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쾌락은 차이들[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
    • 강도의 차이들이 흥분의 형식으로 되어있다고 했으니, 차이들의 해소 과정은 흥분의 해소 과정이다.
    • 따라서 쾌락은 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
    • '쾌락은 흥분의 해소'라는 개념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온 것이다. 의사인 프로이드는 흥분을 '병리학적'으로 접근하고, 이 흥분이 해소되는 것을 '치유'라고, 쾌락은 이런 흥분의 해소 과정, 치유 과정에서 도달하는 정신적인 안정화 상태로 본다. 정신적 안정화 상태가 'equilibrium'이다. equilibrium의 정의는 'a state of balance'이다. 일반적으로(일상적으로) 쾌락은 어떤 흥분상태를 말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흥분은 '어떤 병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 

강도적인 장 안에서 차이들의 유동적 분배[할당]와 국소적인 해소들, 이런 종류의 총체[전체성]는 프로이드가 이드(Id)라고 불렀던 것, 또는 적어도 이드의 제1차적인 층위에 해당한다.
  • 이드(Id)-에고(자아, ego)-슈퍼에고(초자아, superego)에서의 이드이다.
  • 이드는 생명체[사람의 심신]와 관계된다. 생물심리학적인 삶의 바탕이 된다.
  • '사람에게서 발견되는(프로이드가 이론적으로 가정하는)' 이드는 강도적인 장, 개체화의 장, 장 내에서의 차이의 분배/할당, 또는 흥분의 전체적 분포/해소의 제1차적(primary) 층이다.
  • 1차적인 층이라고 하는 이유는 위에서 본 위상학적인 '이드-에고-슈퍼에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 2차, 3차적인 층이 나올 것이다.
The word 'id'[Ça] in this sense is not only a pronoun referring to some formidable unknown, but also an adverb referring to a mobile place, a 'here and there'[Ça et lá] of excitations and resolutions. 

이런 의미에서 '이드'라는 단어는 무엇인가 답을 내기 곤란한 미지의 것을 지시하는 대명사가 아니고, 흥분들과 해소들이 [일어나는] '여기저기', 유동적인 장소를 지시하는 부사이다.
  • 이드는 대명사가 아니고 부사(adverb)이다.
    • Id는 아마 영국에서 번역할 때 사용한 단어이고, 프로이드가 사용한 독일어는 Es로 '그것'을 의미하는 대명사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대명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부사'는 동사, 형용사 또는 다른 부사를 설명하는 단어이다. Id의 의미가 명사가 아닌 동사, 형용사, 부사가 될 때, 동적인 (생성적인) 의미(뉘앙스)를 담게 된다. 따라서 Id는 어떤 실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 어떤 (생성) 과정을 지시한다고 할까!
    • 이드가 대명사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지시대상, 실체가 아니라는 것 같다. 이드는 부사이기 때문에 형용사(띤다는 의미에서 양태), 동사의 일시적인 상태, 특성을 설명한다.
    • 그래서 이드는 [심신 내에 있는, 개체화된 장 안에 있는] 어떤 유동적인 장소가 된다. 그 장소는 특정한 수 없고 움직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심신 안에 있으면서 무엇인가 계속 변화(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장소가 이드이다.
  • 이드는 '무엇인가 답을 내기 곤란한 미지의 것(some formidable unknown)'이지만, 심신 안에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면서 있다.
It is here that Freud's problem begins: it is a question of knowing how pleasure ceases to be a process in order to become a principle, how it ceases to be a local process in order to assume the value of an empirical principle which tends to organise{organize} biopsychical life in the Id. 

프로이트의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어떻게 쾌락이 원칙이 되기 위한 과정이기를 그치고, 어떻게 그것[쾌락]이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라는 경험적 원칙의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위한 국소적 과정이기를 멈추는가를 아는 문제이다.
  • '프로이트의 문제'는 프로이트가 제기한 문제라기 보다는 들뢰즈가 볼 때, 프로이트가 말은 안했지만 보여주는 '프로이트에게 숨겨진 문제'이다.
    • 프로이트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쾌락의 원칙을 넘어, 더 깊은 곳에 '죽음 욕동[충동]'이 있다고 하는데, 들뢰즈가 보기에 이 죽음 욕동이 실제 제기한 문제가 '프로이트의 문제'가 된다.
  •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쾌락의 원칙이 적용되지않는[벗어난], 이것을 넘어선 것이 있는가?'로 이야기할 수 있다. 
    •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초월론적인 선험적(?)  기반/조건이 되는, 죽음 욕동과 다른 어떤 것을 프로이트가 간파했지만 이곳까지 사유를 밀고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이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 들뢰즈의 목표이다.
    • 이 지점(장소)는 이드 안에 부사형태로, 유동적으로, 흥분/차이의 강도적 할당 형태로 있다.
  •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통해 들뢰즈는 쾌락이 원칙이 되게하는 조건을 찾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 프로이트 이론에서 쾌락은 원칙이고,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고, 이것은 경험적 원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그런데 프로이트는 '외상적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쾌락의 원칙에서 벗어난 병리학적 사례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죽음 욕동(타나토스)'가 쾌락의 원칙 넘어에 있지않은가 하고 가정한다.
    • 프로이트 이론 속에서 죽음 욕동은 생명체가 그 원천인 무기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 자연적 충동을 말한다.
Obviously pleasure is pleasing, but this is not a reason for its assuming a systematic value according to which it is what we seek 'in principle'. 

쾌락이 만족시킨다[쾌락을 낳는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발견하려고(seek) 하는 '원리[원칙]적인' 것을 따르는 그것(pleasure)의 당연시하는(assuming) 체계적인 가치에 대한 원인[이유]이 되지는 않는다. 
  • 쾌락이 만족시키는 것은 (생물심리학적 삶을 영위하는) 생명(생물, 인간)이다.
  • 따라서 쾌락이 (위 문장의 내용처럼) '이드 안의 생물심리학적 삶을 조직화하는 경향들'이고, 이 '조직화된 삶의 경향들'이 쾌락을 낳는다는 것은 맞다[사실이다]. 그래서 쾌락이 원칙이 된다.
  • 하지만 '그것의 가정된 체계적인 가치', 즉 '쾌락의 원칙'이 원칙이 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쾌락의 원칙' 아래에는 다른 이유[원인]가 있다. 들뢰즈는 프로이드의 '쾌락의 원칙'을 넘어선 것, 어떤 다른 원칙이 있다고 넌짓이 주장한다.
This is the primary concern if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not the exceptions to this principle, but rather the determination of the conditions under which pleasure effectively becomes a principle. 

쾌락의 원리를 넘어선다면 이것이 일차적인 관심사이다: 이 원리의 예외가 아니라, 차라리 그 아래에서 쾌락이 실제로 원리가 되는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 쾌락이 실제 원리가 되도록 하는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프로이드의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The Freudian answer is that excitation in the form of free difference must, in some sense, be 'invested', 'tied' or bound in such a manner that its resolution becomes systematically possible. 

프로이드의 답변은 자유로운 차이의 형태로 흥분이, 어떤의미에서는, '[리비도] 집중이 일어나고', '연결되고[묶이고]' 또는 '다발로 묶여져' 그 해소가 체계적으로 가능해지는 그런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tied를 연결된으로 해석하면 강도장(신체) 안에 너른 분포 뉘앙스를 갖을 수 있고, 묶이다로 해석하면 어떤 좁은 뉘앙스가 있는 것 같아 '연결'로 해석해 본다. 뒤에 다시 bind가 있기도 하다.
  • '다발로 묶여져'는 bind - bound
  • 들뢰즈는 위에서(제일 첫문장에서) '생물심리학적 삶은 개체화의 장을 함축하고,  이 개체화의 장 '안(in)'에 강도의 차이가 분배되어'있고, 이 분배된 강도의 차이들은 흥분의 형태으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 이에 따라 차이의 자유로운 형태는 흥분이다. 생물심리학적 삶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모양(양태)는 흥분의 형태이다.
  • 생명 안에 '여기저기' 분배되어 있던 흥분이 묶어지는 것이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 집중(생명 에너지가 어떤 촛점에 모여지는 것?)'이다.
  •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 아래에 있는 것은, 프로이드의 답변이라고 말했으니, 흥분의 '수속(收束: 거둘 수 / 묶을 속, 묶기)'이 된다.
  • 그 묶기는 체계적인 과정이다. 체계적이라는 것은 일관된 방식을 가진,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이가 결집되는(묶여지는) 데에 법칙성이 있어야 한다.
  • 흥분의 해소(resolution)를 심신이 평형상태로 가는 '해결책(resolution)'으로 볼 수 있다. 외적 자극에 따른 불쾌가 해소되는 것이다. 위에서 '쾌락은 차이들[흥분]의 해소 과정에서 온다'고 했다.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process of the resolution of such differences is what we call pleasure. 
This binding or investment of difference is what makes possible in general, not pleasure itself, but the value taken on by pleasure as a principle: we thereby pass from a state of scattered resolution to a state of integration, which constitutes the second layer of the Id and the beginnings of an organization{organization}.

이런 차이의 묶기나 집중이 일반적으로, 쾌락 자체가 아니라, 쾌락이 어떤 원리로 취하는 그 가치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분산된 해소 상태에서 통합된 상태로 넘어가고, 이는[이 상태의 전환은] 이드의 두번째 층위와 어떤 어떤 조직화의 시작[첫 단계]을 조성한다.
  • 쾌락의 원리, 쾌락이 획득한 원리적 가치는 흥분의 묶기, 집중 때문에 나온다.
  • 묶기/집중은 분산된 해소 상태에서 통합된 상태로의 이행이다. 
  • 'scattered resolution'은 위 문장에 있는 'local resolutions'과 같은 의미인듯 하다. 강도장 내에 '여기저기, 국소적으로 흩어져 있는 차이를 동반한 미세한 흥분들'이 있고, 어떤 국면(상황)에 이 국소적 해소들이 적분된다(integrated). 
  • the second layer of the Id를 말하는데 이드의 첫 번째 층위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A totality of this kind -- a mobile distribution of differences and local resolutions within an intensive field -- corresponds to what Freud called the Id, or at least the primary layer of the Id"에서 말했다.
  • 첫 번째 층위는 흥분의분산된 해소 상태이고 두 번째 층위는 흥분의 통합된 상태가 된다.
2020.8.4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