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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TV의 연결/배치에 관하여 (미디어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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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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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뭔가를 써보려고 했었나보다. 발터 벤야민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책을 동시에 읽으며 얼기설기 뭔가를 쓰다 말았다. 한 버전이 아래 내용이다. 제목만은 그럴듯하다, <비판적 미디어론으로의 초대>. 그런데 정작 나는 초대를 받지 못한듯 하다. 벤야민의 경구를 몇 개 뽑아, 관심있던 아도르노, 매클루언, 귄터 그라스(가십성으로 말하면 아렌트의 첫 번째 남편이고, 벤야민의 사촌이다.), 브루디외, 플루서 등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어떤 주제나 개념을 가지고 다른 것(개념, 사람)과 연결해 보는 걸 생각을 했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텔레비전 –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 도 함께 읽고 있어나 보다. 살펴보니 ⟨몸-경험’에서 매체로, 그리고 매체에서 ‘몸-효과’로⟩ 도 이때 쓴 거다. 매스미디어인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개인매체(블로그 등)가 어떻게 연결/배치될 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공진화할 수 있는지 이런 관심사를 가지고 쓰던 글이다. 그리고 주변에 만연된 '기술결정론'에 대한 자기방어를 위한 목적도 있었다. POOQ과 스마트미디어렙(SMR)을 만들 때, 바탕에 깐 이론적 배경(싸움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린 비물체적 변환( incorporeal transformation)과 다른 배치, 곧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원했다. 글의 내용과 양이 유행하는 웹의 양식과 달라 자구책(?)으로 '달기어려운' 중간 제목을 억지스럽게 달았다. ------------------ 차례 벤야민 벤야민 벤야민과 아도르노 벤야민과 매클루언 벤아민과 군터 그라스? 벤야민과 브루디외 벤야민과 플루서 --------------------------------------------- 산만함 미세지각 시민종교, 아우라 블로그, 신화적 사고 유동적 자아매몰 흐름, 체험 미디어와 정서 ---------------------------- 『텔레비전: 테크...
스토리텔링과 '지옥문을 연'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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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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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일 정리하던 글이다. 2007년 ❮미디어2.0❯ 이후 나의 관심사는 이렇다. 뉴미디어(인터넷)으로 인해 사적 영역이 공적으로 변할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과 그 결과(효과) 이런 상황에서 스토리, 스토리텔링을 하는 매체로서 매스미디어(TV 등)의 사회적 기능 (스토리는 짧은 글이 아닌 비교적 긴 글/소설이나 구체적인 사람의 일생 등을 말한다. Drama는 어떤 사람과 관련된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Event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다양성) 그리고 이때, 뉴미디어와 전통미디어의 관계와 역할 등등 아래 글은 이런 관점에서 읽던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의 일부 메모글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쓴 글이 최근 포스팅한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 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성에 여러 종류가 있다. 사적 영역의 이야기를 공적(공개)으로 한다는 것이 곧바로 다양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다양성을 만들 것인가! 최근 읽던 한나 아렌트 전기 만화에서 '내가 걱정하던 세계'에 대한 발터 벤야민과 아렌트의 생각을 찾았다. (원문을 찾아 봐야하는데 ...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인 것 같다.)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사이먼 스위프트 지음, 이부순 옮김/앨피 스토리텔링 이론보다 이야기는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주의깊게 다룰 수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새롭고 독특하다. 또 스토리텔링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따라 결말이 바뀌고 달리 해석될 수 있다. (p.17) 다른 세계관과 다른 지각 능력에 의해서 Alberto Manguel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른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행위는 오직 스토리텔러에게만, 즉 역사가의 회고적인 눈에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p.48) ---- 일련의 사건들은 특정 서사...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 - 업의 본질에 대한 사유, 그리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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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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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2년 여름에서 가을 쯤 썼다. 누군가 '업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이기도 하다. 나는 본질이나 기원, 실체에 대해, '그런 것(존재자)'이 영원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사회(공동체)가 존재할 때,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 미디어에 요구하는 기능(function)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해진(judgement) 그 기능에서 벗어날 때, 그 이탈의 결과로 삶이 더 풍요로와질 때, 우린 그런 과정에 있는 어떤 것을 '충만한 탈기관체(body without organ - 기관없는 신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왜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이루고자하는 어떤 목적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그냥 쉽게 일을 하면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하면 쓴 글이다. 지금도 이렇게(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 글을 쓸 때, 그리고 지금도 제목을 '미디어에 대한 역사-철학적 탐구'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 저녁 몸을 씻을 때마다 수백 번 이상 제목을 바꾸었다. 이 글의 마지막을 인용한다. "자신은 바뀌지 않고 주어진 조건,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이것도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글( www.google.com )이 전통 미디어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TV를 인터넷으로 끌어들여 채널이 없는, 흠이 없이 미끄러져갈 수 있는 공터로 만들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듯하다. 하지만 이때도 TV 속의 구글은 더 이상 현재의 구글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물/기업/사람도 다른 것과 만나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만남 ∙ 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하지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역량 역시 객관적 조건 중의 하나이다. 역량을 판단하지 않고 의지만 있다면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가 된다." 이제 고백컨데 나는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이다, 신념과 의지를 가진. 그리고 '환자'임을 행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