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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전제정 : 토크빌 -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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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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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0 update 과거에 한번도 국가가 대다수의 국민(시민/서민)들에게 '보호자/후견자'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또 K-방역이라는 선제적 행동과 국민들을 비행기에 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감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함께 국가/정권은 " 물질적 향유를 만족시켜주고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거대하고 보호자적인 권력" 의 성격을 더욱 띄게 되는 것 같다. 이제야 명시적으로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생체권력( biopower) - 미시권력'의 작동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세월호 이후 - 촛불혁명'으로 출발한 정부라 '안전, 생명, 시민/국민'에 대한 각별한 태도 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동의 효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주적 전제정❯ 말이다. 만들어진 법/제도는 사용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 부유한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예절을 갖춤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생활상태의 차이를 드러내는 은혜는 받는 사람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소박한 예절은 못 견딜 정도로 매혹적이 된다. 상냥함은 인간을 도취시키며 설사 세련이 덜 된 점도 반드시 불쾌하지만은 않다. 토크빌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시민들은 예절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예의를 지킨다고 이야기 한다.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II, 674) 이것은 19세기 이야기이고 지금의 미국은 그렇지않다. 박홍규 교수는 토크빌의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이점을 계속 지적한다. ( 박홍규,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242-256) 하지만 프랑스의 (구)귀족들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사람들과 같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들(귀족들)과 평등해진 모든 사람을 억압자로 간주하게 되며, 그 억압자들의 운명은 아무런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