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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volution in Platform Age❯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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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미래성장동력으로 융복합 문화산업 육성 방안> 토론회에 제출한 토론문이다. 임성희 SK플래닛 신사업개발실 부장이 <콘텐츠와 플랫폼 융합>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했고, 토론문은 발제문의 순서에 맞춰 작성했다. 발제문은 1.Contents Evolution in Platform Age, 2.Digital Video Platform Rush, 3.Change of Viewers, 4.Technological Background, 5.Evolution of Contents, 6.what is to be done?으로 구성되어있고, 1, 2, 6번에서 토론문의 소제목을 가져왔다. 어떤 토론회나 그렇듯이 시간에 쫓겼고, 사전 발제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내 몫의 시간은 토론문으로 대체했다. 대신 토론회에서 떠오른 생각 몇가지를 두서없이 짧게 이야기를 했다. 같은 섹션에 이인화교수(이화여자대학교)가 <콘텐츠와 타분야의 융합>이란 제목으로 발표하며 블로흐의<희망의 원리>를 인용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우발적 사건이었고, 사건적 융합(관계맺기, 연상작용)이었다.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웹툰은 한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포맷이다. 많은 스토리가 그려지고 다른 쟝르(영화, 드라마, 연극 등)에서 활용된다. 그런데 웹툰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1년에 13만명(?) 정도가 경연에 참여해 30여명 정도가 살아남는 혹독한 경연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 그 안에서 훈련된 몇 명의 우수한 작가가 선발된다.  웹드라마, MCN 등의 사업을 보면서 일자리를 못찾는 젊은 친구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고문이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 한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이 시장에 뛰어든 젊은이들 대부분은 부불노동으로 플랫폼(IT업계)에 착취당한다. 열정 페이만큼의 월급도 없이 일을 시키는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수익률은 높을 ...

민주적 전제정 : 토크빌 -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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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0 update  과거에 한번도 국가가 대다수의 국민(시민/서민)들에게 '보호자/후견자'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또 K-방역이라는 선제적 행동과 국민들을 비행기에 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감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함께 국가/정권은 " 물질적 향유를 만족시켜주고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거대하고 보호자적인 권력" 의 성격을 더욱 띄게 되는 것 같다. 이제야 명시적으로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생체권력( biopower) - 미시권력'의 작동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세월호 이후 - 촛불혁명'으로 출발한 정부라 '안전, 생명, 시민/국민'에 대한 각별한 태도 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동의 효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주적 전제정❯ 말이다. 만들어진 법/제도는 사용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 부유한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예절을 갖춤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생활상태의 차이를 드러내는 은혜는 받는 사람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소박한 예절은 못 견딜 정도로 매혹적이 된다. 상냥함은 인간을 도취시키며 설사 세련이 덜 된 점도 반드시 불쾌하지만은 않다.   토크빌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시민들은 예절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예의를 지킨다고 이야기 한다.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II, 674)  이것은 19세기 이야기이고 지금의 미국은 그렇지않다. 박홍규 교수는 토크빌의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이점을 계속 지적한다. ( 박홍규,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242-256) 하지만 프랑스의 (구)귀족들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사람들과 같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들(귀족들)과 평등해진 모든 사람을 억압자로 간주하게 되며, 그 억압자들의 운명은 아무런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