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07의 게시물 표시

추천 게시물

불안한 희망의 세계: 댄싱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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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댄싱섀도우를 봤다.  댄싱섀도우 는 차범석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나쉬탈라, 마마 아스터, 신다, 솔로몬이고 태양군( 太陽軍) 과 달군( 月軍) 의 전쟁, 그리고 두 군대가 연합한 후 (가상의) 외국군대와의 전쟁이란 시대적 상황 속에 있는 산촌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뮤지컬보다   뮤직컬로 만들어지기 전의 ❮산불❯의 줄거리 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잘 다가온다. 점례, 사월, 인텔리인 규복, 그리고 6.25전쟁 시 소백산맥에의 어느 산골마을, 밤을 지배하는 빨치산과 낮을 지배하는 국군.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 여기서 이런 줄거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태양군 대 달군, 북한과 남한,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을 보았다. 이것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원칙과 이상에는 나쉬탈라가 정점에 서있고, 현실('삶'이라고 해야 할까?)의 정점에는 마마 아스터가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현실주의에 가까운 이상주의자인 솔로몬이, 또 이상주의에 가까운 현실주의자인 신다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도 그 극단 사이 어디엔가 서있을 것이다. 그런데, 희망의 원천은 무엇일까? 댄싱섀도우의 주제의식은 희망일 것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어지는 희망! 그런데,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원하던 어느 상태에 도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 희망의 모습은 이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어떤 희망도-희망에 대한 이야기도-미래가 아닌 현재의 비극성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행동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은 새로운 세계가, 다가올 미래의 상태가 아닌 이미 존재하고 하고 있는 세계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희망-오지않은 미래-이 아닌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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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에 걸쳐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digital content platform)과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 관련되 서비스에 대하여 정리를 할 예정이다. 첫번째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및 서비스 모델이 나온게 된 배경에 대하여 정리하겠다. 위 그림은   동영상 포럼 발표자료 에서 인용한 것임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개념의 발전과정 1.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2005년 말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개념은 이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SBSi 내에 잠재해 있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가 진화하면서 ‘주름’이 펴지고 2006년 5월, 이 개념이 스스로 자기를 드러냈다. 1.1 2005년 상반기 현재 자유이용권S라는 브랜드로 서비스 되고 있는 모든 쟝르가 포함된 디지털 콘텐츠 상품기획에 대한 논의와 의사결정이 있었다. 그 이전에 2002년 9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TV다시보기 쿠폰 100회로 구성된 연정액제 상품인 727멤버십이 있었다. 2. 2005년 5월, 우리는 UCI(Universal Content Identifier) 제안작업을 했고 UCI-RA로 선정되었다. UCI 제안작업을 하면서 야후의 동영상 검색, blinx.com의 동영상 검색 등을 검토하고, 미래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방식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되면서 동영상 콘텐츠에 있어서도 Search & Find가 콘텐츠를 이용, 유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데 생각을 같이 했다.   2.1 이때 개인적으로는 돈을 내고 전문교육기관에 다니면서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IT의 A에서 Z까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인터넷을 거래구조, 웹서비스 구조(등록, 검색,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이비니스 구조), SOA(Service Oriented Architecture)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에서의 혁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록, 검색/요청, 바인딩/계약/사...

이랜드. 비정규직법을 보는 관점: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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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2007년 7월 26일 " 비정규직 법 을 고치려는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이전보다 노동계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일단 비정규직법을 안착시키면서 한편으로 악용 사례를 차단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대해서도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자질이 문제"라며 '법의 문제'가 아닌 '개별 기업가의 부도덕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한겨레신문, 2007.7.27, 13면) 법 자체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자질"과 "개별 기업가의 부도덕성"만을 문제삼아야 할까? 정치체가 아닌 기업체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노동자들)이 법 아래서 자유롭다는 것은 개별기업가의 선의를 통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닌 법 아래서 모두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기업가의 선의를 통해야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닌 기업가에게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유를 유지하려면 (기업가, 전제군주, 또는 독재자의) 임의적 자유재량권의 요소가 없는 정치 체제하에서 살아야 하며 시민권이 국가의 지배자, 지배 집단, 혹은 또 다른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해야만 하는 가능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입법의 유일한 권력이 인민 혹은 그들이 신임하는 대표들에게 있는, 그리고 정치체의 모든 개별적 구성원들이-지배자와 시민 다 함께-그들이 자신에게 부과한 그 어떤 법에도 평등하게 복종하는 체제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치 정부 체제하에서 살아야만 지배자들의 강압적 임의 재량권을 박탈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지배자의 선의에 의존하게 해 노예의 지위로 전락시킬 수 있는 그 어떤 폭군의 등장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

진지전, 기동전, 화력전, 그리고 유목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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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 유목민족들이 만들어낸 세계 툰유쿠크의 비문과 '비분강개'한 문체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돌궐 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p.57) 나는 최근 이 이야기를 두번 들었다. 한번은 신문에서 읽은 것 같고 다른 한번은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이다. 이 이야기를 두번 듣는 사이에 이 책을 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유목민 이야기 김종래 지음/꿈엔들(꿈&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뢰즈의 <천의 고원> 과 이책에 대한 해석인  이진경의 <노마디즘1,2> 를 읽으면서이다. 이 책에서는 유목민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노마디즘과 탈주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진경이 자주 인용하고 있는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었는데 최근 일어난 두번의 우연한 만남 때문에 김종래기자의 <유목민 이야기>를 집어들게 되었다.  <유목민 이야기> 를 집어들은 후 내용보다도 문체(style)의 장중함이 더 깊이 다가왔다. 그런데 문체의 장중함은 아주 비극적인 내용들과 뒤섞여 나오면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한 기상을 끌어내는 듯 했다. 그러면서 읽지도 않은 김훈의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이 생각난 것은 왜 일까? 김훈의 예전 직업과 김종래의 지금 직업이 겹쳐지면서 '기자들이 신문이 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쓰는 문체'가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 이야기>의 부제는 '유라시아의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인데 과거의 유목주의가 디지털 사회와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로 코드화되는 듯하다. ...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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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혁명을 전후로 만들어진 자유주의 개념은 아주 " 공화주의 "적이다. "인간 개개인의 육체가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을 할 수 있거나 혹은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것처럼, 국민과 국가의 조직체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원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 의지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약받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국가란 자유로운 인격체로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라는 뜻이다. 즉 자유국가란 정치의 행위가 하나의 전체로서의 그 구성원들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공동체인 것이다. (p.81)"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자유주의는 "사적 개인으로서 침해받을 수 없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17세기 영국혁명을 전후로 형성된  자유주의  개념은 "순전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타인의 혹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며, "정치 제도와도 상관없이 어떤 체제하에서도 느릴 수 있는 것"이라는 현재의 개념이 아니었다. 현재 사용되는 이런 의미의 자유는 "인자한 주인을 만난 노예는 자유인 못지않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7세기 공화주의적인 자유주의 개념을 기준으로 현재, 또는 과거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많은 문제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 국주의의 식민지배 를 한국자본주의가 발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뉴라이트의 주장에 대해서 엄격하게 한국민은 모두 노예상태였으며, 주인(일본)의 시혜없이는 자신의 의지대로는 무엇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아닌 자유주의적인 시각으로도. 또  60~80년대의 군부정치 에 대해서도 똑같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단 전제군주와 같이 한사람만 자유로운 체제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독재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

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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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5년 말에서 2006년 초 게임이론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쓴 것이다. 최근 한반도에서 "핵위기"가 해결될 조짐이 보여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를 이런 시각으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박우석 옮김/양문 죄수의 딜레마』(양문, 2004)를 구입한 날짜는 2005년 6월 16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서평' 비슷한 것을 써야지 생각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다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났다. 이 책은 " 존 폰 노이만 | 핵폭탄 | 게임이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당시 '게임이론'에 대한 관심으로 간략한 입문서를 찾다가 '게임이론'을 확립한 사람(존 폰 노이만)에 대한 전기와 게임이론을 핵무기, 냉전 등에 대한 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적고 있는 이 책을 선택한 것으로 기억된다. 먼저 존 폰 노이만, 게임이론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서평(감상 또는 추천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도록 하겠다. 존 폰 노이만 내가 이 글을 쓸 때, 그리고 당신이 이글을 읽을 때도 우리가 존 폰 노이만이라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왜냐하면 폰 노이만은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에서와 같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수행할 때마다 수천 개의 스위치와 회로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주기억장치(Main Memory)에 내장시켜 놓고 명령어를 하나씩 불러 실행시키는 개념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컴퓨터 구조를 ‘폰 노이만 구조’라고 한다. (p.116 이하) ‘천재’ 수학자인 폰 노이만은 1903년 헝가리에서 태어났고, 1957년 골수암으로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저서로는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 『힐베르트 공간론』, 『게임이론과 경제행위』등이 있다. 특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