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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희망의 세계: 댄싱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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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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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댄싱섀도우를 봤다. 댄싱섀도우는 차범석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나쉬탈라, 마마 아스터, 신다, 솔로몬이고 태양군(太陽軍)과 달군(月軍)의 전쟁, 그리고 두 군대가 연합한 후 (가상의) 외국군대와의 전쟁이란 시대적 상황 속에 있는 산촌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뮤지컬보다 뮤직컬로 만들어지기 전의 ❮산불❯의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잘 다가온다. 점례, 사월, 인텔리인 규복, 그리고 6.25전쟁 시 소백산맥에의 어느 산골마을, 밤을 지배하는 빨치산과 낮을 지배하는 국군.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
여기서 이런 줄거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태양군 대 달군, 북한과 남한,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을 보았다. 이것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원칙과 이상에는 나쉬탈라가 정점에 서있고, 현실('삶'이라고 해야 할까?)의 정점에는 마마 아스터가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현실주의에 가까운 이상주의자인 솔로몬이, 또 이상주의에 가까운 현실주의자인 신다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도 그 극단 사이 어디엔가 서있을 것이다.그런데, 희망의 원천은 무엇일까?
댄싱섀도우의 주제의식은 희망일 것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어지는 희망! 그런데,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원하던 어느 상태에 도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 희망의 모습은 이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어떤 희망도-희망에 대한 이야기도-미래가 아닌 현재의 비극성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행동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은 새로운 세계가, 다가올 미래의 상태가 아닌 이미 존재하고 하고 있는 세계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희망-오지않은 미래-이 아닌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하나의 원칙으로서 주장하고, 몸으로 만들며 그 세계에서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주의의 원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정의를 보면 '공산주의는 현실 노동운동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댄싱섀도우에서 나쉬탈라와 솔로몬의 희망은 복고적(과거에 얽매여있다는 의미로)이기 조차하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주의는 현실의 모순, 삶의 어려움의 반영이다. 이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넘어서려는 가장 '현실주의자'이다. 다만 현실을 넘어선 세계가 어떤 세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따라서 공상(다가올 미래라기 보다 새롭게 만들 세상)과 과학(현실 분석) 속에서 좌충우돌해야 하는 운명이다. 하지만 현재의 어려움과 신념, 이들을 추종하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이런 좌충우돌, 내면적인 갈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하튼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베르그송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삶이란, 베르그송이 장벽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야만성이며 사회적인 모임 속에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기주장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의 이런 행동이 선택할 수 없는,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자기 운명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고 슬플 따름이다.
마마 아스터의 입에서 튀어나온 희망이란 단어를 볼때 그렇다면 희망은 현실주의자의 몫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주의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희망'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뱉는 말일 뿐이다. 댄싱섀도우에서 보면 딸인 신다가 자궁 속의 아이를 버리고, 숲을 버리고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딸을 설득해서 살려놓으려는 아주 현실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희망이다. 이들이 말하는 희망이란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고 목숨을 유지하자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렇다면 삶이란 욕체적 생명, 종족 보존 이외에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가 만든 문화가 인간적인 삶이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고 가르키며 삶, 생존, 또는 거창하게 생명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이것은 '현실에 만족하고 살어라, 돼지처럼!',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살아있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 역시 독특한 정신문명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초인'이 아닌 생물적 존재인 인간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얽혀져 만들어진 '자궁 속의 태아',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느쪽에도 서지못하는 기회주의자의 몫이다. 희망은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현실주의자의 현실)이거나, 꿈이 이뤄질까 물어오는 "회의의 핏줄기에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것(이상주의자의 이상)이거나, 이 둘 모두에게 있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극 속에서 전형화된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아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 자체의 비극적 기반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주제는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불안'감과 언젠가 내가 겪은듯한 기식감으로 몸과 마음을 '뒤틀'게 만든다.
댄싱섀도우, 상기된 과거들
댄싱섀도우를 보면서 오래전에 쓴 2편의 시와 편지글 형식의 일기가 떠올랐다. 모두 90년대의 세계를 대변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같다고, 자기동일성을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뮤지컬(연극)의 또하나의 기능은 상기(想起)시키는 것이다.
내가 불현듯 1991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말까지 있었던 정선군 임계면이 떠오른 것은 뮤지컬의 소품인 사과상자 덮어놓은 듯한 누추한 집들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갈등구조 때문이다. 그 집들과 똑같은 집들을 그때 고한과 사북에서 봤고, 그런 갈등을 지금도 겪으며 살고있다. 사진은 댄싱섀도우의 한장면이고, 바로 옆의 그림은 사북에서 광부들이 '살았던' 집을 그린 것이다.
1992년 3월 3일 화요일
아침도 어제 먹다남은 식빵 한 조각으로 떼웠습니다. 전화를 신청하는데 돈을 다쓰고 2,000원이 남아 그것으로 빵과 우유를 산 것입니다. 아침 일찍 낙천리를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이른 것 같아 10시에 출발했습니다. ㅈ씨에게 신문배달하는 자전거를 빌려타고요. 사실 10시에 출발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전거를 아침 신문 돌리며 쓰기 때문이죠. 이곳은 동아일보 3월3일자가 아침에 나옵니다.(1992년 동아일보는 석간이었다.)자전거로 한 30분 걸렸습니다. 그런데 길이 비포장이라 흙탕물이 튀겨 신, 양말, 바지, 잠바 등부분까지 다 버렸습니다. 어제 말했듯이 가면서 내를 끼고 또 산 밑으로 집이 띄엄 띄엄 있습니다. 그리고 고개가 나오죠. 그것을 넘어야 낙천리입니다.
낙천리에는 당원이 삽니다. ㄴ씨라고 교회 집사이고 농사를 짓습니다. 진짜 촌사람같이 꺼벙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좀 꿈뜨게합니다. 낙천리에서 택백가는 시외버스 길 옆으로 가게가 있고 그 집에 공중전화가 달려있습니다. 그 집이 이 동네의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곳인 것 같습니다. 방에 40~50대의 아저씨들이 하나 차있고 그 집 둘레의 햇빛을 따라 임계에 나올 화장한 아줌마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좋았던 것은 젊은 30대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집에 선전물을 돌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운환씨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민중당이 뭐냐?"하는데 "정운환씨가 위원장 아냐?"하고 한 사람이 받았죠. 나는 신이나 "맞습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가 났습니다.
버스 길가로 낙천1리고 "樂川"을 건너 산 골짜기에 형성된 촌락으로 가면 낙천2천입니다. 이곳에는 젊은이가 거의 없고 낮에도 소여물을 썰거나 아니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녹화된 방송을 트는 유선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처음 보이는 흰건물이 낙천교회입니다. ㄱ씨가 전도사이고 ㄴ씨가 집사죠.
ㄱ씨는 둥근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작은 못집의 퉁퉁한 사람입니다. 연고자 카드에는 '적극적 지지자'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 ㄴ씨와 만나 이야기하니 '아직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실 아직 모릅니다. 한번 정도 만나보고 정선사무실에서 분류한 것이니까요. 좀 더 지켜보고 만나봐야겠지요. 교회가 보여 다리를 건너는데 교회가 등지고 있는 산 모퉁이를 돌아 한 30여집이 있었습니다.
ㄴ씨와 사랑방 좌담회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한 5만원 투자해서 술 좀 사고 윷놀이를 하면 사람이 올까 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민주자유당 후보인] 박우병씨가 낙천3리에는 10만원을 주고가서 마을 잔치를 3일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나는 "우리당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과일하고 음료수, 과자를 좀 사서 해보자"고 했습니다. ㄴ씨가 "교인 한 50여명을 초대하면 늙은이는 안오고 20~30명 정도가 올거다."라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후보와 유권자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ㄴ씨를 이지역의 진보를 위한 정치적 구심으로 서게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당 활동과 함께! 이런 하나 하나의 작업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에게 정치적 교육도 필요합니다. 아주 많은 정치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을 이땅은 요구합니다. [돌아오는데] 3~4시간 헤멘듯 합니다.
ㅇ씨가 태백에서 왔나 봅니다. 그리고 오늘 되리라던 전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전화를 하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오후에는 좀 쉬다가 (다리가 아픕니다) ㅇ씨가 ㄱ씨를 소개해줘 술을 한잔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ㅈ씨가 술을 한다고해 그곳으로 가 자리를 합쳤습니다. 그곳에서 ㄱ씨, ㅇ씨, ㅇ씨 등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죠. 그리고 어떤 젊은 사람이 거기서 나오는데 "힘들게 일한다는 것을 안다. 수고한다"라고 할 때, 힘이 났습니다. 인사치례일지라도 말입니다.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계라도"에 대해서. 그리고 "보안관 ㅇ"씨에 대해서. 이것은 내일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ㅂ이 씁니다
추신: 오늘은 터미널에서 차에 올라 선전지를 돌렸습니다. 뻔뻔하게요. 언젠가 지붕의 모습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술자리에서 있던 것하고요.
<1992 .3.3="">1992>1992.3.3
겁 먹고 무너져 내렸다 비겁을 참지 못한
심장만 감정에 복받쳐 덜컹거렸고 머리는
가난이 몸에 밴 어머니의 처세술과
아버지가 남겨준 우유부단한 이상에 감사했다
나는 기회주의와 이상주의의 혼혈아였다
어머니의 인생에는 여름 한낮 김 매며
속살까지 검게 탄 평생 갈 화상이 있었고
그걸 보며 자란 가슴 깊숙히에는
가난에 대인 자국이 있었다 아버지의 평생은
제 한몸도 못가눌 처지에 짐을 진 어두운 여름밤
전등 불빛 속으로 날아든 풍뎅이의 좌충우돌,
나의 가슴 속 한 구석에는 날개 꺽인
지친 희망의 버둥거림이 있었다
가슴 속 희망이 버둥거릴 때마다
가난에 대인 화상이 쓸려 내내 비명을 질렀고
그래도 언제나 덜컹대며 뛰는 붉은 심장은
피비린내 질펀한 가슴 속에서 이젠
끝장을 보자고 싸워댔다 칼에 배인 흉터
세월에 깊게 패여 주름이 되고 썩은 피
흐르던 고랑에서 겁 없이 풀이 자랐다
<1995 .8.13="">1995>
태생
여지껏 악다구니도 없이 쉽게겁 먹고 무너져 내렸다 비겁을 참지 못한
심장만 감정에 복받쳐 덜컹거렸고 머리는
가난이 몸에 밴 어머니의 처세술과
아버지가 남겨준 우유부단한 이상에 감사했다
나는 기회주의와 이상주의의 혼혈아였다
어머니의 인생에는 여름 한낮 김 매며
속살까지 검게 탄 평생 갈 화상이 있었고
그걸 보며 자란 가슴 깊숙히에는
가난에 대인 자국이 있었다 아버지의 평생은
제 한몸도 못가눌 처지에 짐을 진 어두운 여름밤
전등 불빛 속으로 날아든 풍뎅이의 좌충우돌,
나의 가슴 속 한 구석에는 날개 꺽인
지친 희망의 버둥거림이 있었다
가슴 속 희망이 버둥거릴 때마다
가난에 대인 화상이 쓸려 내내 비명을 질렀고
그래도 언제나 덜컹대며 뛰는 붉은 심장은
피비린내 질펀한 가슴 속에서 이젠
끝장을 보자고 싸워댔다 칼에 배인 흉터
세월에 깊게 패여 주름이 되고 썩은 피
흐르던 고랑에서 겁 없이 풀이 자랐다
<1995 .8.13="">1995>
1995.8.13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불안해 했다
언제나 꿈 꿔온 세상은 불안스럽게 흔들리고
그전에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삶의 투명성이나 정직성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투명한 세상를 만들고 싶다는
믿기 힘든 생각이 내 몸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세상은 너무 처참한 모습이다
떠날 수 있다면 벌써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이
불안하게도 희망이 된다
필연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누가 자유로운 수 있을까
회의의 핏줄기가 폭풍우가 되어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희망을
몸 속에서 쓸어내버리려 한다
지난 여름 뿌리채 뽑혀 쓸려내려가던
나무둥치와 돼지와 소, 희망을 보았다
꿈 꾸던 자리엔 쓸쓸한 폐허의 자취만이 남고
강변엔 도깨비 불만 날아 도깨비 불만 날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파랗게 반짝이며 갈피를 못 잡는, 도깨비 불
갈피를 못잡는 사람들을 보았다
무엇이 남았을까 마음의 빈자리에는
파헤쳐진 무덤의 볼상사나운 자취
그 자릴 차지한 절망의 가시덩굴들
일상의 폭발하는 파편에 박혀
불구가 되어버린 머리와 뒤틀린 몸일까
희망을, 신념을 포기 못하는 것은
차라리 절망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불안한 희망을 갖고
불안한 현재를 생각해 보면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또 불안해 한다
강가에는 밤새 도깨비 불만 날고 도깨비 불만 날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기다린다, 절망을 먹고 자라나는 불안한 희망
<1997 .5.1="">1997>
1997.5.1
과거들이 현재의 내 몸 속에서 불안하게 숨을 쉬고 있다. 결코 지금 만날 수 없는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희망처럼!
총선에서 지고 임계를 떠나면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찾아갈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임계에서 한 약속은 아직까지도 가슴에 쌓여 빚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분들이 약속을 모두 잊었을지 몰라도 나의 핏 속에 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가 남아 흐르는 동안은 계속 거친 숨을 내쉬면서 살아 꿈틀댈 것이다. 사실 그것은 변치않겠다는, 언젠가 돌아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불안한 희망
- 1997년 4월 30일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불안해 했다
언제나 꿈 꿔온 세상은 불안스럽게 흔들리고
그전에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삶의 투명성이나 정직성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투명한 세상를 만들고 싶다는
믿기 힘든 생각이 내 몸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세상은 너무 처참한 모습이다
떠날 수 있다면 벌써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이
불안하게도 희망이 된다
필연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누가 자유로운 수 있을까
회의의 핏줄기가 폭풍우가 되어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희망을
몸 속에서 쓸어내버리려 한다
지난 여름 뿌리채 뽑혀 쓸려내려가던
나무둥치와 돼지와 소, 희망을 보았다
꿈 꾸던 자리엔 쓸쓸한 폐허의 자취만이 남고
강변엔 도깨비 불만 날아 도깨비 불만 날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파랗게 반짝이며 갈피를 못 잡는, 도깨비 불
갈피를 못잡는 사람들을 보았다
무엇이 남았을까 마음의 빈자리에는
파헤쳐진 무덤의 볼상사나운 자취
그 자릴 차지한 절망의 가시덩굴들
일상의 폭발하는 파편에 박혀
불구가 되어버린 머리와 뒤틀린 몸일까
희망을, 신념을 포기 못하는 것은
차라리 절망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불안한 희망을 갖고
불안한 현재를 생각해 보면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또 불안해 한다
강가에는 밤새 도깨비 불만 날고 도깨비 불만 날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기다린다, 절망을 먹고 자라나는 불안한 희망
<1997 .5.1="">1997>
1997.5.1
과거들이 현재의 내 몸 속에서 불안하게 숨을 쉬고 있다. 결코 지금 만날 수 없는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희망처럼!
총선에서 지고 임계를 떠나면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찾아갈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임계에서 한 약속은 아직까지도 가슴에 쌓여 빚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분들이 약속을 모두 잊었을지 몰라도 나의 핏 속에 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가 남아 흐르는 동안은 계속 거친 숨을 내쉬면서 살아 꿈틀댈 것이다. 사실 그것은 변치않겠다는, 언젠가 돌아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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