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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공간에 대한 이해 - 민족주의적 과제와 억압적 국가기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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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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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의 8월테제의 민족주의적인 요소
- 박헌영,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
- 1992년 최상룡교수의 민족주의론을 들으며 제출한 레포트이다. 몇가지 과제 중 내가 선택한 것은 '박헌영은 민족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였다. 최상룡교수는 박헌영을 민족주의자로 묘사했는데 아래 글은 그에 대한 반론 성격으로 씌어졌다. 수업 중 아래 글을 발표하자 약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정외과 수업에 타과생이 와서 담당 교수와 다른 논조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논의 전개했고, 그 결과 레포트는 폰트 10의 크기로 A4지 15장 분량으로 1시간 동안 발제하고 토론하기에 '아주 긴' 내용이었다.
민족주의론은 대학 마지막 학기에 들은 수업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이 레포트는 대학 4년동안 공부한 결과의 결산인듯도 싶다. 당찬 '반론'에 최상룡교수는 재미있어하면서 좋아했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이 수업 덕에 우리의 현대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시간적으로 보면 보론으로 작성된 「남한 사회에서의 국가 형성 - 과대성장국가이론을 중심으로」가 1991년 여름에 씌어졌고, 아래 글은 1992년 가을에 썼다. 앞의 글을 안읽었다면 그것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머리말
그래서 나는 이글에서는 먼저 역사적인 서술방식을 채택하여 그의 삶을 간략히 시기별로 정리하고 그 역사성(구체적 상황의 전개과정)에 기반하여 1945년 8월 15일 조선의 해방부터 1946년 7월 신전술이 제기될 때까지 그의 사상적, 실천적 기조를 이룬 8월테제를 분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서술 자체가 그의 8월테제와 신전술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극명하다. 왜냐하면 박헌영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지 해방 직후의 경제, 정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매꾸려고 박헌영을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이 글의 뒤 부분에 「보론」식으로 첨가했다.
먼저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박헌영의 개인사를 서론 부분에서 살피고, 본론에서는 짧지만 8월테제와,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그밖의 문건들을 가지고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박헌영을 우리가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겠다.
제1기 출생과 성장과정 (1900~1920)
박헌영은 1900년 5월 1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금광마을에서 박현주의 '서자'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이학규)은 금광마을 근처에서 주막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 그의 집안은 '중농(동산과 부동산을 합쳐 당시 돈 약 1만원 정도)' 정도로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3.1운동이 났던 1919년 졸업을 했다. 3.1운동에 그가 참가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1947년 2월 24일 발표한 글인 「3.1운동의 의의와 그 교훈」에서는 이 운동을 반제민족해방투쟁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민족대표의 투항주의와 무저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제2기 사회주의 사상의 학습과 사회주의 선전 (1920~1932)
그 후 박헌영은 1920년 일본을 거쳐서 상해로 가서 기독교청년회에서 영어를 약 6개월간 학습하고, 1921년 4월경부터 상해에 있던 '사회주의연구소'에 드나들면서 공상주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박헌영은 그곳에서 사회주의를 계속 연구하면서 여운형과도 친교를 맺는다. 그 당시 그는 '사회주의라는 것은 사회가 모든 사람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註1)이라고 생각해 좋은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다.1921년 9월에는 상해상과대학에 입학하지만 1922년 3월에 사회주의 선전을 위해 귀국할 것을 결심하고 자퇴를 한 후에 귀국하던 중에 체포(1922.4)되어 1년 6개월의 형을 언도 받았다.
1924년 1월에 출옥한 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약 6개월간(1924.4~10)하다가 신문사를 나와서 집에서 문필생활을 하면서 개벽지에 기고를 했다. 그때 발표한 글이 「국제청년 데이의 의의」(1924.8.18.)와 「역사상으로 본 기독교의 내면」(1925.10.29.)이다.
그리고 1925년 4월 18일에는 고려공산청년회의(이하 공청)를 결성한다. 공청은 조선공산당(이하 조공)과는 별개 조직으로서 공산주의를 선전, 교양하는 기관으로서 단지 조공과 이념상의 상호연락관계를 유지했다. 즉 조공이 당적인 차원의 운동이었다면 공청은 그보다 낮은 단계의 대중운동 차원에 있었던 것이다. 공청은 25월 12월 박헌영이 신의주경찰서에서 한 진술을 토대로 해서 살펴 볼 때 그가 22년 귀국 시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 선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건된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 했다.
"1924년 1월에 출감하였으나 전날의 사명은 결코 방기할 수 없다는 결의 아래, 경성에서 사회주의 연구를 계속했다. --- 나는 경성에서 바삐 다니던 중, 자신과 같은 뜻을 지닌 자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드디어 1925년 4월 19일 내 집에 --- 사람을 모아 고려공산청년회의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註2)
조공은 1925년 4월 27일 창당되었는 데 박헌영은 해방 때까지 정식으로 입당 수송을 밟아 공산당원이 될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일제의 엄중한 탄압과 1928년 코민테른이 조선공산당의 해체를 결정하는 등 외적 조건이 나빳기 때문이다.註3)
박헌영은 공청사건으로 1925년 12월 검거되어 1927년 11월 22일 병보석으로 출감되어 28년 8월에 국외로 탈출하여 29년 6월 모스크바로 가서 마르크스학원에 입학하여 러시아어와 공산주의를 연구하다가 중도에 자퇴하고 브라디보스톡으로 와서 조선일 초등교사를 하였다.
제3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 (1932~1946)
32년 12월 상해로 다시 돌아와서 공산당 재건 운동을 준비하다가 이것이 밝혀져 33년 상해에서 체포당해 국내로 압송되서 6년간 복역 후 39년에 출옥했다. 그후 박헌영은 콤그룹의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41년 6월과 12월에 관련자가 대부분 검거되자 광주 벽돌 공장에 피신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숨어서 지냈다.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박헌영은 20일에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이하 재건위)를 조직하고 재건위의 정치노선과 활동방침으로 8월테제-「현정세와 우리의 임무」(이하 임무)註4)를 발표한다. 재건위의 의미는 25년 창당되어 28년 해체된註5) 조공을 재조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이는 과거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당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45년 9월 15일에는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선포한다. 이것은 이전의 서울계, ML계, 화요계가 만든 '장안당'을 흡수, 통일된 당 형태를 조직하는 형태를 띠고 이루어졌다.
'신전술'(1946.7) 이전까지의 이 시기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 소-영-미-중"註6)이라고 하면서 미국을 우호적으로 표현하였다. 실제로 당시에 있어서 남로당의 '미군정에 대한 좌익의 정책은 우의적 친선 방향'註7)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초기에는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이 그 수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평화적 방법으로의 이행이라는 노선에 서 있었다.註8)
제4기 자주적인 민족국가건설의 실패와 신전술 (1946~1953)
신전술은 해방 조선에서 그간 실시된 미군정의 정책과 그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8월테제에서 박헌영이 주장한 정치노선이 국가라는 조직된 가장 강력한 물리력에 의해 실패되면서 박헌영은 미국을 이제 과거의 일본과 동일한 위치에 놓는다.註9) 이제 그는 시민사회에서의 혁명적 열망을 조직해 식민지적, 파쇼적 국가기구(미군정)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한반도 전체적인 차원에서 일어났던 계급투쟁의 최고차적 형태인 내전(한국전쟁)이었다.신전술의 정신은 이렇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군정에 협력하여 왔으며 미군정을 비판함에 있어서는 미군정을 직접 치지않고 --- 간접적으로 미군정을 비판하였으나 앞으로는 우리가 이런 태도를 버리고 미군정을 노골적으로 치자 --- 지금까지는 미군정과 그 비호 하의 반동들의 테러에 대하여 그저 맞고만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맞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방위의 역공세로 나가자. 테러는 테러로, 피는 피로 갚자."註10)
이러한 신전술 아래 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이 일어났고 박헌영은 체포령이 떨어져 월북했다.註11)
몸말
「임무」(8월테제)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Nationalism)적인 요소와 이에 대한 이해
'임무'에서는 해방조선에서의 혁명의 단계를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단계로 설정함으로써 서구에서 그와 같은 단계의 혁명 결과로서 나타난 것들 - 민족국가의 설립과 봉건적인 토지제도의 철폐를 전략적 과제로 설정했다. 즉 "금일 조선은 부루주아 민주주의혁명의 단계를 걸어가고 있나니, 민족적 완전독립과 토지문제의 해결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되는 과업으로 서있다. 즉, 다시 말하면 일본의 세력을 완전히 조선으로부터 구축하는 동시에 모든 외래자본에 의한 세력권의 결정과 식민지화 정책을 반대하고 근로 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혁명적 민주주의정권을 내세우는 문제와 동시에 토지문제의 해결이다."註12)여기서 '일본세력을 완전히 조선으로부터 구축'한다는 것은 두가지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민족적 완전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세력을 완전히 구축해야 된다"註13)는 것과 "--- 반제투쟁의 과업 --- 완수 ---, 즉 조선으로부터 --- 친일세력을 일소하였느냐 하는 문제"註14)의 해결이다. 이와 함께 "전쟁시기에 군사적 제국주의적 전시계엄상태 밑에서 모든 운동은 물론이고 하찮은 자유사상의 언사까지도 극악의 탄압"을 했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대중적 검거는 비합법적 조직운동을 극도로 위축"註15)시켰는데 이런 파시즘적인 상황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박헌영이 제기한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의 정치적 내용은 반제반파쇼민주주의혁명이었다. 그런데 반파시즘전선이라는 것은 그것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조선에 부과된 外來的인 것이라는 점에서 실제적으로는 반제국주의적인 투쟁의 한 요소로서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볼 때 그는 연합군에 의해서 조선이 해방된 상황 속에서도 반제라는 문제와 민족독립국가의 건설이라는 문제를 하나의 전략적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가장 민족주의적인 해결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박헌영의 이런한 정치노선의 민족주의적인 성격은 장안파의 주장과 레닌이 1905년 러시아혁명 시에 제시한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독재'라는 테제와 비교해 본다면 더욱 뚜렷해 진다.
장안파는 「조선의 독립과 공산주의자의 긴급임무」와 「현단계의 정세와 우리의 임무」註19)를 발표했는데 앞의 것에서는 '8.15일 이래 조선혁명은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대상으로 하는 혁명의 제1단에 돌입하였고, 이제 조선이 독립됨으로써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 과업이 거의 완수되었으므로 금일부터는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혁명에로 단계적, 서열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혁명이 동시에 수행되면서 전자가 후자의 일부분으로서 그 안에 포함된 형태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제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서 동시혁명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뒤의 문건에서는 이제 혁명이 제2단계로 돌입하였으므로 세력배치가 '자유주의적 민족부르조아의 반동적 저항을 진압하고 농촌 중농과 도시상공층의 동요, 불확실성을 견인 혹은 중립화시키고, 프롤레타리아는 자기의 영도 아래 농업 프롤레타리아와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반프롤레타리아(빈농)의 강고한 혁명적 동맹을 통하여 농촌 및 도시 소부르조아와 일정한 통일적 전선체제의 광범위한 형성'註20)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헌영은 '극좌적 경향'이라고 비판하면서 "금일 있어서 벌써 우리가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의 중요과업(완전독립과 토지혁명)을 완전해결은 커녕 이제 시초의 찻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처지"註21)라고 주장하면서 '반민주주의적 경향을 가진 반동단체(한국민주당 등), 대지주, 고리대금업자, 반동적 민족부르조아와 친일파들과 싸울 것을 주장한다.註22) 즉 그는 장안파와는 달리 일본제국주의와 친일파를 청산할 때까지 민족부르조아를 포함한 전민족적인 연합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레닌이 「민주주의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의 두가지 전술」에서 제시한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의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독재'라는 테제와 비교해보아도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레닌의 테제는 박헌영의 8월테제보다도 장안파의 주장에 훨씬 더 가깝다. 왜냐하면 레닌은 1848년 독일혁명을 마르크스가 분석하면서 어떻게 혁명을 가속화시켜 連續的(또는 同時的)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열기가 부르조아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혁명의 단계를 中層的으로 결정하면서 부르조아혁명을 넘어서까지 나갈 것이라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로 속히 넘어가게 만들기 위하여 그 전제조건인 제문제, 반제-반봉건투쟁으로 그 자유발전의 길을 열어주고 또한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적 독재정권의 수립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확립이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민족적 통일전선의 실현을 강조"註23)하면서, 그는 "일본제국주의 잔존세력 構築과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세력을 완전히 근멸-청소하기위한 --- 투쟁과업을 실행하지 않고는 조선의 완전한 독립은 불가능한 것이다"註24)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는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을 해방조선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혁명단계로 설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해방조선에서 어떠한 정치적 당파보다도 더욱 더 민족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8월테제를 근거로할 때 박헌영은 '민족주의적'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의 전개 속에서 그가 취한 실천과 정치노선을 볼 때 그를 따라갈만큼 확고한 민족주의자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과 실천 속에서 드러난 이런 민족주의적인 속성은 미군정의 실체를 파악하면서부터는 더욱 더 강화되고 확실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민족주의자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실제 식민지적인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운동을 전개했던 한 혁명가가 도출해낸 해방을 향한 도정의 일부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조선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로 속히 넘어가게 만들기 위하여 그 전제조건인 제문제, 즉 반제-반봉건투쟁으로 그 자유발전의 길을 열어주고 또한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적 독재정권의 수립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확립이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민족적 통일전선의 실현을 강조"註25)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박헌영이라는 사회주의라는 단호한 사상으로 무장된 역사적 인물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즉 그의 사상과 현실의 갈등이다. 문제는 여기서 무엇이 그의 본질(실체)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의 본질을 공산주의자 박헌영에 놓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의 사회적 역관계 속에서 엄연한 공산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적 당파의 지도자였고, 그의 실천행위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와 그의 사상성으로부터 논리적, 역사적으로 추론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민족주의적'이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토대의 제약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당시의 상황 속에서는 가장 공산주의적인 실천 자체가 가장 민족주의적인 실천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실체는 하나지만 그 속성은 무한한 것이다. 그리고 한 공산주의자에게 있어 그 속성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결정지워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 해방 조선, 미군정 하의 조선이라는 상황이 그를 민족주의자로서 판단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구체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 나는 박헌영을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라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민족주의적'이라는 형용사가 '공산주의자'라는 실체를 규정지으면서 '박헌영 자체'를 역사적인 인물로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라는 판단은 해방 이후 왜곡되어 온 우리의 역사를 볼 때 훨씬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된다. 「보론」을 보면 뚜렷해지듯이 박헌영이 주장했던 일제청산 - 억압적인 국가기구의 청산이야 말로 현시대에 우리 민족, 즉 그 주체인 노동자 민중의 가장 큰 과제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미제국주의에 의한 종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걸어 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모색의 과정에서 기존 보수 우파와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글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는 박헌영의 노선에 대한 역사적인 비판이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글의 성격상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헌영에 대한 현시점에서의 평가와 반성은 없다. 둘째는 글 자체가 '박헌영을 민족주의자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것에 촛점이 되면서 그런 측면을 너무 부각 - '과잉 결정'했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글이 전체적으로 그의 사상(정치노선)에 한정지어 살핌으로써 이것과 직접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 정치적 실천(구체적인 정치적 사건들에 의한 그의 실제적인 행동들)과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이글은 8월테제에 나타난 '정치적 담화'와는 어느 정도 모순되게 나타나는 (이것을 '좌익적'이었다라고 김남식은 평가했다.) '실제 행동'을 극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다.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는 데에 「보론」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註26)
후주 --------------------------------------------------
1) 김남식, 심지연 편저. 『박헌영 노선비판』(도서출판 두리, 1986, 서울), p.16.
2) 같은 책, 「(자료 8) 피의자 신문조서」, pp.94~98. (강조는 필자)
3) 같은 책, pp.20~21. 코민테른의 조공해체 결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1)지도부가 거의 지식계급과 학생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2)계급적 혁명당이 아니라 소부르조아 정당이며, (3)파벌싸움이 중요한 害黨的 요소라는 점을 지적하고, (4)과거를 청산하고 새 방향에서 당을 재건하라고 결정했다. (방인후, 『北韓朝鮮勞動黨의 形成과 發展』(고려대출판부, 1967), 같은 책, p.29에서 재인용)
4) 8월테제를 발표(45.8.20.)한 후의 정치상황, 특히 콤그룹의 반대세력인 장안파의 주장과 움직임 등을 이미 발표된 8월테제에 반영시켜 9월 25일에 발표한 것이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라는 것이다. 이글에서 다루는 것은 '임무'이다.
5) 주3)을 참고할 것.
6) 같은 책, 박헌영, 「임무」, p.181. (강조는 필자)
7) 같은 책, 박헌영, 「10월 인민항쟁」, p.449.
8) 하지만 8월테제가 적용되던 이 시기(1945.8.15~1946.7.)는 시민사회에서 압도적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좌익의 힘이 일제하에서 '과대성장된' 국가기구가 해체(파괴)되지 않음으로서 그 국가기구(미군정)에 의해 파괴되고 우익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던 기간이었다. 「보론」을 참고하기 바란다.
9) 박헌영은 미국의 대한정책이 처음부터 자유독립의 방향이 아니라 침략적인 것으로서, 독립을 원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점령하려는 것이며 반동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헌영, 「人民에게 告함」(48.4.12.), 『박헌영 노선비판』, p.80에서 재인용. 강조는 필자)
10) 김남식, 『南勞黨 硏究』(돌베개, 1984, 서울), pp.235~236. (강조는 필자)
11) 박헌영의 생애에 대한 시기구분은 역사적인 사건에 의한 것보다도 박헌영 자신이 의도했던 특정시기의 정치적 실천을 통해했다. 참고로 역사적인 사건에 의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12) 같은 책, 박헌영,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1945.9.25.), p.182. (강조는 필자)
13) 같은 책, 박헌영, 「朝鮮共産黨의 主張 - 朝鮮民族統一戰線結成에 對해」(1945.10.30.), p.202.
14) 앞의 책, p.202.
15) 같은 책, 「임무」, p.184.
16) 같은 책, 박헌영, 「朝鮮共産黨의 主張 - 朝鮮民族統一戰線結成에 對해」, p.203.
17) 앞의 책, p.203.
18) 같은 책, 박헌영,「임무」, p.195.
19) 전자는 장안당이 만들어지면서 발표된 것이고, 후자는 장안당이 재건위에 통합되어 조공이 재창당되던 날(45.9.15.) 발표된 것이다.
20) 같은 책, 박헌영,「임무」, p.194에서 재인용. (강조는 필자)
21) 앞의 책, p.182.
22) 앞의 책, p.194.
23) 앞의 책, p.195.
24) 같은 책, 박헌영, 「단결력으로 싸우자」(1945.11.15.) (강조는 필자)
25) 같은 책, 박헌영,「임무」, p.195. (강조는 필자)
26) 8월테제가 가지고 있는 토지혁명의 문제를 몸말에서는 다루지않았다. 그 이유는 토지혁명이라는 것을 두고 보면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이글에서 다루려는 민족주의적인 풍모를 가진 박헌영이라는 주제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토지문제를 박헌영이 생각함에 있어서는 다소 모순된 주장을 스스로 전재하지만 부르조아혁명에서 나타나는 토지개혁 이상까지 나갔다는 것이고, 이것과 그의 실제적인 정치적인 실천을 근거로하여 박헌영을 좀 더 레닌의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독재'라는 테제와 근사한 수준까지를 추론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동유럽과 북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8월테제의 노선이 성공했다면 곧장은 아니더라도 인민민주주의 정권으로까지 발전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실제 박헌영의 정치노선의 깊숙한 곳에는 이런 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이글에서는 그곳까지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론」에서 실제 쓰여진 기본적인 관점은 '인민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의 가능성이라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이글에서는 그런 측면을 배제하려고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이글에서 살피려는 것은 박헌영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관한 것이지 사회구조나 변혁의 방향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까지 쓴다면 글의 양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보론」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박헌영 개인이 말하고, 썼던 1차 자료에만 충실하려고 노력을 했다. 따라서 「보론」과 이글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 2008년 1월 이사짐 정리 중 발견한 최상룡교수의 '민족주의론' 레포트
누렇게 변해 세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5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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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가 단순화시켜 생각한다면 “8•15로부터 한국전쟁이 완료되는 1953년까지의 시기는 ‘갑작스런’ 해방에 의해 식..
남한 사회에서의 국가 형성 - 과대성장국가이론을 중심으로
MIX08 - 구겐하임 컬렉션, 숨은그림 찾듯 그림보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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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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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08에 참석하면서 Guggenheim Hermitage Museum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미국으로 가기전에 구글에서"museum las vegas"로 검색을 했고, 여기서 구겐하임 뮤지엄을 발견했다. 그런데 '라스베가스에 구겐하임이라니'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사이트를 방문하고서 '정말 있나보네! 가봤으면'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가는 분들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쪽 옆에 있었다.
그런데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림을 볼 기회를 가졌다. 운이 좋게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묵었던 The Venetian Hotel 안에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빌려다 호텔에서 상설 전시를 했다. 그리고 MIX 컨퍼런스는 호텔과 연결된 머지않은 곳에서 열렸다.
전시는 구겐하임 켈렉션에서 Portraiture(초상화), Landscape(풍경화), Still Life(정물화), Genre(풍속화)라는 네가지 주제로 10개 정도씩 방을 꾸몄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피카소, 세잔, 샤갈, 모딜리아니, 레거(Leger), 고호, 들로네(Delaunay), 모네 등.
현대회화, 특히 큐비즘(입체파)의 작품은 아주 분석적이다. 따라서 그림을 구경할 때도 조금 분석적으로 보면 재미가 있다. 아래 피카소의 작품명은 'Pitcher and Bowl of Fruit'이다. 그림에서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소재를 찾는 것은 조금 쉽다. 그런데 소녀와 에펠탑 등 찾아보라. 에펠탑까지는 이것을 말해주면 찾을 게다. 하지만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정말 커다란 얼굴이 하나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디에 있을까? 탁자보의 녹색과 짙은 녹색과 같은 차이는 사물의 보는 시점의 차이가 평면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언제나 우리는 '달의 뒷면(dark side of the moon)'을 보지 못하고 앞면만을 본다. 만일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가 이런 것 이라면 우린 좀 더 겸허하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상대 또한 그럴 것이다.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는 일면만을 보고 '다아는 듯이 잘난 체하는 것'은 아닌지 뒤 돌아보게도 한다. 스피노자가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 속성(양태)는 무한하다는 것도 이런 것과 맞닿는다. 입체파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세계의 다양성(무한성)과 일의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림은 철학으로 보면 아주 인식론적인 세계이고, 철학의 길고 지루한 이론을 한번에 보여준다. (철학과 비교해 상대적이지만) 직관적이라고 할까?
Pablo Picasso, Pitcher and Bowl of Fruit, 1931. Oil on canvas, 130.8 x 162.6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53.1358. © 2007 Estate of Pablo Picass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옆의 몬드리아니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비밀(?)도 찾아보면서 살펴보면 재미있다. 왜 눈동자도 없이 옥색 눈을 만들어놨을까? 또 이 그림의 주인공은 남학생일까, 여학생일까? 그림을 클릭한 후 코 주변과 목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눈은 '눈동자가 없다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네이버 지식인'에 묻는 것일 게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a Student
L'Etudiant
ca. 1918–1919
Oil on canvas
24 x 18 1/8 inches (60.9 x 46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고호 그림을 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림에 숨어 있는 고호 얼굴을 찾아보세요?" 오른편 산을 이루고 있는 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못찾겠다면 먼저 고호의 자화상 그림을 보고 다시 찾아보는 수 밖에, 그래도 못찾는 다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이 그림을 그릴 때 그의 마음 상태는 어땠을까? 우울했을까,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고호의 다른 그림들의 색조와 이 그림의 색조를 비교하거나, 이 그림을 그릴 때 고호가 처했있던 상황를 살펴본다면, 아니 우리가 그의 그림 속에 빠져들어가 본다면 알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음이 아주 행복하나 지독히 불행하다면 이 그림- 또 다른 그림 - 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인간 의식은 지독하게도 '주관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Vincent van Gogh, Mountains at Saint-Rémy, July 1889, Oil on canvas, 28 1/4 x 35 3/4 inche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Thannhauser Collection, Gift, Justin K. Thannhauser, 1978
Vasily Kandinsky , Pastorale, February 1911, Oil on canvas, 41 5/8 x 61 5/8 inches (105.7 x 156.5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Vasily Kandinsky © 2005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칸딘스키의 그림 속에서 세명의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을 더 찾는다면! 그 사람과 동물들이 이 그림을 이루고 있는 음악성의 원천이다. 흔들리는 나무와 춤추는 듯한 사람들, 눈을 감은 동물들은 '호른을 들고 연주하는 이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의 세계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모네의 'The Palazzo Ducale, Seen from San Giorgio Maggiore'을 보면서는 어디에 서서 Ducale 궁전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하늘과 물, 그림자가 서로 겹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림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는 말에도 공감을 하지만 또 그림은 조금 '짜증나더라도' 분석하고 다시 통합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것이 단순한 경험의 결과만이 아닌 이미 어떤 이론(개념)의 틀을 가지고 본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상파의 붓터치와 색감, 입체파의 복잡한 선들과 조각난 사물/사람/풍경들, 칸딘스키의 음악적 색조와 흐름들 등등. 좀 더 알면 좀 더 재미있다. 특히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은 후 다시 원화를 보면서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그림 뿐만아니라 철학이나, 회사의 일, 그리고 모든 세상 일에 해당되는 말이다. '무식이 역사에 도움을 준적은 없다'고 한다. 그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는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게다.
그런데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림을 볼 기회를 가졌다. 운이 좋게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묵었던 The Venetian Hotel 안에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빌려다 호텔에서 상설 전시를 했다. 그리고 MIX 컨퍼런스는 호텔과 연결된 머지않은 곳에서 열렸다.
전시는 구겐하임 켈렉션에서 Portraiture(초상화), Landscape(풍경화), Still Life(정물화), Genre(풍속화)라는 네가지 주제로 10개 정도씩 방을 꾸몄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피카소, 세잔, 샤갈, 모딜리아니, 레거(Leger), 고호, 들로네(Delaunay), 모네 등.
현대회화, 특히 큐비즘(입체파)의 작품은 아주 분석적이다. 따라서 그림을 구경할 때도 조금 분석적으로 보면 재미가 있다. 아래 피카소의 작품명은 'Pitcher and Bowl of Fruit'이다. 그림에서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소재를 찾는 것은 조금 쉽다. 그런데 소녀와 에펠탑 등 찾아보라. 에펠탑까지는 이것을 말해주면 찾을 게다. 하지만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정말 커다란 얼굴이 하나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디에 있을까? 탁자보의 녹색과 짙은 녹색과 같은 차이는 사물의 보는 시점의 차이가 평면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언제나 우리는 '달의 뒷면(dark side of the moon)'을 보지 못하고 앞면만을 본다. 만일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가 이런 것 이라면 우린 좀 더 겸허하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상대 또한 그럴 것이다.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는 일면만을 보고 '다아는 듯이 잘난 체하는 것'은 아닌지 뒤 돌아보게도 한다. 스피노자가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 속성(양태)는 무한하다는 것도 이런 것과 맞닿는다. 입체파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세계의 다양성(무한성)과 일의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림은 철학으로 보면 아주 인식론적인 세계이고, 철학의 길고 지루한 이론을 한번에 보여준다. (철학과 비교해 상대적이지만) 직관적이라고 할까?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a Student
L'Etudiant
ca. 1918–1919
Oil on canvas
24 x 18 1/8 inches (60.9 x 46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고호 그림을 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림에 숨어 있는 고호 얼굴을 찾아보세요?" 오른편 산을 이루고 있는 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못찾겠다면 먼저 고호의 자화상 그림을 보고 다시 찾아보는 수 밖에, 그래도 못찾는 다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이 그림을 그릴 때 그의 마음 상태는 어땠을까? 우울했을까,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고호의 다른 그림들의 색조와 이 그림의 색조를 비교하거나, 이 그림을 그릴 때 고호가 처했있던 상황를 살펴본다면, 아니 우리가 그의 그림 속에 빠져들어가 본다면 알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음이 아주 행복하나 지독히 불행하다면 이 그림- 또 다른 그림 - 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인간 의식은 지독하게도 '주관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Vincent van Gogh, Mountains at Saint-Rémy, July 1889, Oil on canvas, 28 1/4 x 35 3/4 inche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Thannhauser Collection, Gift, Justin K. Thannhauser, 1978
칸딘스키의 그림 속에서 세명의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을 더 찾는다면! 그 사람과 동물들이 이 그림을 이루고 있는 음악성의 원천이다. 흔들리는 나무와 춤추는 듯한 사람들, 눈을 감은 동물들은 '호른을 들고 연주하는 이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의 세계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모네의 'The Palazzo Ducale, Seen from San Giorgio Maggiore'을 보면서는 어디에 서서 Ducale 궁전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하늘과 물, 그림자가 서로 겹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림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는 말에도 공감을 하지만 또 그림은 조금 '짜증나더라도' 분석하고 다시 통합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것이 단순한 경험의 결과만이 아닌 이미 어떤 이론(개념)의 틀을 가지고 본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상파의 붓터치와 색감, 입체파의 복잡한 선들과 조각난 사물/사람/풍경들, 칸딘스키의 음악적 색조와 흐름들 등등. 좀 더 알면 좀 더 재미있다. 특히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은 후 다시 원화를 보면서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그림 뿐만아니라 철학이나, 회사의 일, 그리고 모든 세상 일에 해당되는 말이다. '무식이 역사에 도움을 준적은 없다'고 한다. 그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는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게다.
구글 세상을 지배하다 - EBS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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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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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 서비스, 구글 검색 마케팅, 채용방식, 근무환경과 구글 검색광고를 이용한 온라인 마케팅 사례 분석 등이 포함된 EBS의 다큐멘터리 영상.
구글의 목표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모으고 분류(모든 나라의 정보를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조직화)해 검색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 그리고, 구글광고의 강점은 다른 광고와 달리 무시당하지 않는 것.
구글의 언론 통제 여부에 대한 미국 내 논쟁과 사례..
구글의 언론 통제 여부에 대한 미국 내 논쟁과 사례..
MIX08 - Internet Exploer 8 을 통해 MS가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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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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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번 MIX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이 IE8 발표인 것 같다. 윤석찬님의 블로그에 가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IE8에 대한 기능소개나 일반적인 감상보다 캐릭터에 맞게 약간 삐닥하게 IE8을 살펴본다.
▲ IE8을 소개하는 Dean Hachamovitch - Eight이라는 티가 인상적이다.
IE8은 웹표준인 CSS 2.1과 HTML5 지원하고, 자체적으로 시맨틱 기능인 Web Slices 및 Activites 지원한다. 웹표준에 대한 지원은 이용자들에게 브라우저와 상관없이 유사한 경험 (similar user experience)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레이 오지가 작년 MIX에서 Universal Web을 말하고, 올해 좀 더 나가 Utility Computing / Cloud Computing을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Cross Platform, Cross Media, Cross Device 등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표준의 문제이다. 따라서 IE8이 조금 더 발 빠르게 최신의 표준을 따르는 것은 Fire Fox와 같은 경쟁사를 의식한 것도 있지만 MS 자체의 전략에 기반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표준을 수용함으로써 이종 플랫폼 간의 호환성을 강화하고 그 위에서 서비스와 사업을 전개한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Contextual search and web utility로 '웹 검색 중에 문맥 속의 정보를 이용하여 지도, 경매 등 다양한 웹 서비스로 보내는 기능'인데 Google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리는 MS의 회심의 역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글이 Fire Fox와의 밀월관계를 가지면서 툴바 등을 통해 검색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것처럼 그런 접근은 아닌가? 시맨틱 웹이라는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면서 '상황을 인식하고 검색(search)'하는 machine은 누구 것일까? 이런 질문들 말이다. (구글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브라우저와 함께 이런 기능이 설치된다는 잇점은 여전할 것이다.)
또 많은 기업들도 사용하지만 구글의 애드센스가 많은 네티즌을 기반으로 한다면 MS는 브라우저를 통해 상당수의 서비스업체들이 이와 유사한 자신의 상품/서비스를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광고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 주소를 선택한 후 IE8의 Activities 메뉴를 사용하여 지도를 검색하는 장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위 사진의 데모장면을 보면서이다. Google Earth를 부러워하면서 Virtual Earth를 내놓은 MS가 자신의 강점인 브라우저에서의 시장 장악력을 이용해 모든 서비스를 붐업(boom-up)할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범주 안에는 물론 'Google 따라하기'로 만들어진 Live 전략-살아남기 전략?-의 모든 서비스가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IE8가 이제 막 발표했기 때문이겠지만 Activitis 메뉴에서 활성화된 것들이 대부분 'Live'이고, 그 서비스가 Google과 겹쳐있다.
'HTML 내 class 속성을 이용 간단한 마크업으로 웹 사이트 업데이트 정보를 항상 쉽게 볼 수 있게 해주는 web slices 기능'의 데모는 facebook.com에 적용한 것이다.
▲ 페이스닷컴에 적용된 웹 슬라이스
최근 페이스북에 거금을 주고 약간의 지분과 사업적 파트너십을 갖게 된 MS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능을 이용해 이용자의 편리성과 더 많은 페이지뷰를 올린다면 일거양득일 게다. 또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처럼 잦은 업데이트가 일어나고, 정보의 최신성이 생명인 사이트들에 적합하다.
하지만 이런 사이트(social network site)들의 특성은 거의가 구글 검색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글의 검색엔진이 원천적으로 접근못하는 곳에 IE8을 이용해서 진지를 구축했는데 MS가 이번 MIX에서 강조하는 Advertising & Monetizing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Slices를 위한 팝업창마다 나는 광고를 할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Contextual한 광고, Keyword 광고 말이다. 페이스북의 이용자 정보와 결합한다면 얼마나 강력할까?
"구글이 키워드 광고시장을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모두가 웃음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의 마지막 장은 "우리는 공사 중"이었다. 울통을 벗고 삽질하는 그림과 함께.
"맞아요. 하지만 아마 우리도 내일은 (구글처럼 돈을 잘 벌어) 행복해질 것입니다."
IT에서의 전략은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강하게 살리고, 상대의 약점을 더욱 약하게 만드는 기술/서비스의 배치인듯 하다. IE8은 '침체한(?)' Live 전략에 대한 부활의 주문처럼 보인다. 어째튼 진보된 서비스에 즐거운 것은 사용자들이다. 치명적인 버그만 없다면!
※ 아래 두장의 데모사진은 윤석찬님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사진기 베터리가 다 되었는데 충전기가 없다.
MIX08 - Advertising / Monetizing 지원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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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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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북경올림픽 사이트에 대한 Demo 바로 전에 실버라이트를 이용한 광고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2007년 실버라이트를 SBS 뉴스 사이트에 적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티브한 광고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랙티브한 광고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컸다. 시장에 이러한 광고를 만드는 회사가 너무 작았고 기술도 생소한 까닭이다. 그래서 광고비보다 개발비가 너무 많은 상황, 배꼽이 배보다 더 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또 막 개화하기 시작한 인터랙티브한 광고에 비용을 집행할 광고주를 찾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그래서 SBS 드라마인 <로비스트>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광고로 대신했다.
MIX08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레이 오지가 키노트에서 광고와 유틸리티 컴퓨팅을 지적한 것 중 '광고를 통한 돈벌이'를 어떻게 MS의 실버라이트가 지원할 것인가 보여줘는데, 작년에는 '인터랙티브'한 새로운 광고 양식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이것을 손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위의 사진은 실버라이트에서 제공하는 광고 템플릿을 이용하여 인터랙티브한 광고를 설정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개발자를 위해 Visual Studio 2008과 디자이너를 위해 블랜드에서 동시에 지원된다.
아래 사진은 동영상에 효과를 주면서 툴을 이용해 광고를 삽입하는 모습이다. 데모대로라면 동적인 광고를 만드는 것이 훨씬 시워지고 만드는 비용 또한 적게 들듯하다.
SDK를 이용하면 좀 더 쉽게 광고를 제작하고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데모에서는 몇개의 광고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사이트의 상단에 배너광고를 위치시키고 마우스가 오버되면 광고 사이즈가 커지면서 동영상과 텍스트 애드가 함께 뜨는 것이다. 물론 실버라이트 기술을 적용했다. 플래쉬 광고에서 만이 본 것이지만 아래 그림과 같이 동작하는데 데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훨씬 동적으로 보인다.
SDK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동영상 광고를 Skip할 수 없도록 설정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광고 시나리오를 적용할 수 있다.
MIX08 - 실버라이트를 적용한 NBC의 북경 올림픽 온라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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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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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 Sports & Olympic 관계자가인 Perkins Miller씨가 나와 실버라이트(Sliverlight)를 적용한 북경올림픽 사이트를 소개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이브(Live) 방송과 VOD를 결합하여 서비스 하는 인터페이스 양식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Live 방송에 [ALERT]라는 문구와 함께 'Live와 함께 관련 영상을 보실래요' 같은 알림을 보내고 [WATCH] [PIP]의 선택버튼을 제공하고. 마지막에 알럿창을 닫을 수 있는 X 버튼을 보내는 것이었다.
⟨미디어2.0 -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가능성⟩의 끝부분에서 '하이퍼비디오와 영상의 깊이'이란 장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실버라이트를 이용해 형식화 보여준 예시이다. ⟨미디어2.0⟩에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이브(Live) 방송과 VOD를 결합하여 서비스 하는 인터페이스 양식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Live 방송에 [ALERT]라는 문구와 함께 'Live와 함께 관련 영상을 보실래요' 같은 알림을 보내고 [WATCH] [PIP]의 선택버튼을 제공하고. 마지막에 알럿창을 닫을 수 있는 X 버튼을 보내는 것이었다.
⟨미디어2.0 -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가능성⟩의 끝부분에서 '하이퍼비디오와 영상의 깊이'이란 장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실버라이트를 이용해 형식화 보여준 예시이다. ⟨미디어2.0⟩에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하이퍼텍스트처럼 하이퍼비디오(hyper video)를 제공하여 방송에 웹사이트와 같이 깊이(depth)주는 ‘영상 데이터 베이스-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와 방송의 결합모델’이다. 실시간 방송과 TV포털·웹사이트 내의 VOD 서비스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형태일 때, 즉 VOD 위에 실시간 방송이 올라오거나 실시간 방송 영상 위에 관련된 VOD 클립이 올라와 우리가 네이버(naver.com)와 같은 포털에서 자기도 모르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navigating) 시간을 보내듯이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구조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방송되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태그(tag)나 특정 검색어로 검색된 결과 페이지의 링크를 방송과 함께 보내고 PIP(picture in picture) 기능을 이용하여 방송과 포털을 함께 이용하도록 할 때, 이것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묻는 것이다.
사실 sbs.co.kr에서 실버라이트를 도입한 서비스를 만들 때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였지만 어떻게 형식화(User Interface)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 좋은 예제가 하나 나온 것이다. 이런 고민은 웹뿐만 아닌 IPTV에서도 동일하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쉬운 먼저 시작하여 IPTV까지 이용자의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NBC모델은 Live 방송의 UI를 최대한 헤치지 않으면서 이용자의 주목을 끌면서 Live와 VOD, VOD 그 자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다.
▲ Live 방송과 VOD를 결합하는 인터페이스를 보여 주는 장면
▲ NBC 사례발표 및 Live 방송 영상 위에 관련 데이터를 보여주는 장면
위의 우측 사진은 방송과 데이터가 결합된 서비스를 보여준다. 이 부분도 ⟨미디어2.0⟩ 중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양식의 공존' 장에서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방송을 보면서 신문의 속보기사를 읽는 것과 같은 방식의 결합이다. ‘신문사의 데이터베이스와 방송의 결합모델’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방송을 보거나 VOD를 보면서 영상 위에 흐르는 뉴스자막을 보고 더 자세한 내용을 보기를 원할 때 전체 기사를 끌어당겨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것은 신문인가 방송인가? 이것에는 전통적인 방송의 영역-영상과 자막·데이터를 다중에게 동시에 밀어내는(push) 콘텐츠 이용방식과 개인화된 콘텐츠를 요청하여 끌어오는(pull) 서비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화된 신문이 결합되어 있다. 방송을 보면서 동시에 신문을 읽는 것이다.
▲ 좌측 메뉴 바와 다양한 콘텐츠의 정렬 방식
지난 2007년 실버라이트를 이용해 뉴스뷰어(news.sbs.co.kr의 NView)를 만들면서 채널 선택을 위해 하단의 많은 영역을 사용한 것과 비교하면 NBC의 것은 아주 깔끔하게 처리되어있다. 그리고 메뉴는 커서가 올라갔을 때(mouse over) 펼쳐진다.
▲ 종목별로 동시간대에 경기가 되는 것을 고려 다양한 PIP 인터페이스 양식의 제공
우측 마지막에 있는 사진을 이용한 인터페이스는 구글 포토에서 제공하는 인터페이스 양식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2개의 PIP 제공형식을 보여주는 것은 추측컨텐 많은 경기가 동시간대에 이루어짐으로 이용자가 관심있는 채널을 다중으로 볼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함께 믹스에 참석한 서명덕 기자 블로그에서 아래 사진을 말도 안하고 얻어왔다. 사진기를 바꿔야 하나..
MIX08 - 레이 오지 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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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트 세션에서 제일 먼저 레이 오지가 IT 분야의 변화 양상과 트랜드를 설명했다. 레이 오지의 이야기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각색하여 쓴다.
Advertising / Monetizing
이와 함께 두가지의 커다란 두가지 부분을 강조한다. 첫번째는 Advertsing(광고)이다. 광고를 강조하는 것은 이용자에게 혁신적인 경험과 참여를 유도한다고 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MS가 구글과 경쟁구도에 빠져들면서 광고모델에 기반한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아는 사실이다. 최근 만난 MS 관계자들의 주요 화제가 User Experience, Advertising/Monetizing이다. 레이 오지는 '돈 벌이'를 이야기하면서 Live Serch와 Ad Center를 언급하고 있다.
Utility Computing
두번째는 Utility Computing(유틸리티 컴퓨팅)이다. 사회적 관계맺기(social matching), 디지털 기기와 관계맺기(device matching), 사업과 관계맺기(business matching) 등을 위해서는, 그리고 이용자가 불편없이 이 모든 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팅이 수도나 전기처럼 공적 설비(여기서는 어디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accessbility의 관점이 들어 있다. 따라서 전기, 수도같은 '공익적'은 아니다.)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클라우드 컴퓨팅(clouding computing)을 말하는 것이다. social matching을 위해서는 web-linking, tagging 등과 data binding 등의 기술이 필요한데 이런 것을 이용자가 알지못해도 수도물을 사용하듯이 자연스럽게 이용해야 하고, 기술의 발전, MS의 이정표가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MS와 관계를 맺은 www.facebook.com을 살펴보면 이런 말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yahoo 주소록에 저장된 친구들이나 사업파트너의 연락처를 이용해 facebook에서 쉽게(그 사람들이 facebook에 있다면 몇번 클릭을 통해 주소록에 저장된 모든 사람과) 친구를 맺고 사진, 비디오 등의 콘텐츠를 sharing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것은 open API 기반의 서비스 덕분이다. 이런 것들의 web 자원의 공개와 표준화에 따른 것이다.
device match는 사용자 환경에 따라 다수의 디지털 기기가 존재하고 각자의 특성에 따라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connected experience(이런 말이 있다면)의 통일과 끊김없음(seamless)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phone-PC- smart TV-digital home server 등등이 연결되어 사용자의 엔터테인먼트와 비즈니스를 지원해야 한다.
business match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loosely coupling된 일반적인 웹서비스와 달리 tightly coupling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computing power는 더 강력해지고, semantic web으로 발전해야 하며, 모든 서비스가 어디서나 제공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메가트랜드와 Silverlight와 Exploer8의 위치
이런 두가지 관점으로 Exploer8과 Silverlight 2.0을 살펴보아야 한다. 레이 오지는 이런 키노트 세션을 마치면서 스콧 구슬리를 소개하고, 해당 세션의 주요 내용은 ie8과 Silverlight 2.0에 대한 것이다.
Silverlight 2.0에 대한 이야기는 MIX07에서 말한 목표인 Universal Web, Cross Platform을 향해 가는 과정대한 보고서이다. 크로스 플랫폼을 위하여 노키아의 심비안이 실버라이트를 채택했고, (플래쉬와 같이) 일반적인 웹을 위하여 매일 전세계에서 1.5백만개의 PC에서 실버라이트의 인스톨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안에 광고(AD)와 돈벌이,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ie8은 웹의 표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Universal Web을 위해 Fire Fox 등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web2.0에서 말하는 기술적 표준들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준을 수용하면서 웹브라우저를 통해 콘텐츠가 쉽게 매쉬업(mash-up)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정리할 것이다.
구체적 방향들
그러면서 레이 오지는 enjoyed media에 대해서 언급한다. media center, gaming center 등의 개념과 함께 실례로 XBOX Live를 들고 있다. 컴퓨팅 기술은 media entertainment와 결합할 것이고, 결합하고 있다.
PC와 Mobility 환경에서 같은 경험을 제공할 것인데, 예를 들면 mobile device에서 office제품군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웹의 특성인 linking, tagging 등이 오피스문서에도 들어가고 궁극에는 어떤 기기로도 접속 사용가능한 웹 자체가가 오피스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 이 안에는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connected business에 대한 지원/서비스도 함께 들어있다. 이런 utility computing을 위해 system center, MS server 2008, exchange server, offoce communication.., BizTalk service, SQL Server 들어있다. 이런 모든 것의 최종 목표는 cloud computing이고 가장 중앙에 닷넷(.net) 플레임이 있다.
스콧 구슬리를 소개하고 레이 오지는 퇴장한다.
business match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loosely coupling된 일반적인 웹서비스와 달리 tightly coupling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computing power는 더 강력해지고, semantic web으로 발전해야 하며, 모든 서비스가 어디서나 제공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메가트랜드와 Silverlight와 Exploer8의 위치
이런 두가지 관점으로 Exploer8과 Silverlight 2.0을 살펴보아야 한다. 레이 오지는 이런 키노트 세션을 마치면서 스콧 구슬리를 소개하고, 해당 세션의 주요 내용은 ie8과 Silverlight 2.0에 대한 것이다.
Silverlight 2.0에 대한 이야기는 MIX07에서 말한 목표인 Universal Web, Cross Platform을 향해 가는 과정대한 보고서이다. 크로스 플랫폼을 위하여 노키아의 심비안이 실버라이트를 채택했고, (플래쉬와 같이) 일반적인 웹을 위하여 매일 전세계에서 1.5백만개의 PC에서 실버라이트의 인스톨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안에 광고(AD)와 돈벌이,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ie8은 웹의 표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Universal Web을 위해 Fire Fox 등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web2.0에서 말하는 기술적 표준들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준을 수용하면서 웹브라우저를 통해 콘텐츠가 쉽게 매쉬업(mash-up)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정리할 것이다.
구체적 방향들
그러면서 레이 오지는 enjoyed media에 대해서 언급한다. media center, gaming center 등의 개념과 함께 실례로 XBOX Live를 들고 있다. 컴퓨팅 기술은 media entertainment와 결합할 것이고, 결합하고 있다.
PC와 Mobility 환경에서 같은 경험을 제공할 것인데, 예를 들면 mobile device에서 office제품군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웹의 특성인 linking, tagging 등이 오피스문서에도 들어가고 궁극에는 어떤 기기로도 접속 사용가능한 웹 자체가가 오피스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 이 안에는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connected business에 대한 지원/서비스도 함께 들어있다. 이런 utility computing을 위해 system center, MS server 2008, exchange server, offoce communication.., BizTalk service, SQL Server 들어있다. 이런 모든 것의 최종 목표는 cloud computing이고 가장 중앙에 닷넷(.net) 플레임이 있다.
스콧 구슬리를 소개하고 레이 오지는 퇴장한다.
여기까지 보면 왜 MIX08의 키노트 세션 배경이 문(window)이 달린 구름인지를 알 수 있다. 이제 MS는 구름(인터넷) 위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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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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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구적 이성 비판 - 이성의 상실>을 집어 들어 "실용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실용주의 정권'이 출범한 기념으로 실용주의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알기 위해서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존 듀이(John Dewey)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를 살피면서 내린 실용주의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실용주의는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광범위한 실용주의적 정신의 확대는 진리의 논리학(특정 이념 자체의 절대적 타당성)을 개연성의 논리학으로 대체한다. 이명박씨가 시장 시절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청계천을 복원하여으니 대통령이 되어서도 잘 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말이다. 여기서 모든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통계적 개연성/가능성을 많이 보여준 사람이 누구냐는 판단으로 넘어간다.
실용주의는 모든 이념들의 의미(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활성화, 소득격차의 해소 등의 국가적 아젠다)를 747계획, 대운하계획과 같은 스케치나 계획의 의미로 환원시킨다. 이젠 어떤 숭고한 목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수단적 가치의 효용성에 따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진리가 결정되는 시대가 왔다.
"실용주의는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사회를 반영한다."
이 말에 의지하여 살펴보면 국보위에서 활동한 분과 논문 표절 의혹이 있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분들, 냉전적 통일관과 친미적인 활동을 한 분들이 정권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정권에 표를 던진 것은 적어도 우리들 중 다수이니 말이다.
다만 스스로 실용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표를 던졌다면 모르지만, 이런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따라서 반성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이라는 것을 모르고 표를 던졌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반성하고 최근 누군가 했던 말처럼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우리의 희망을 확정하는데에 '시장 조사와 갤럽의 설문 조사'가 철학이나 이념보다 우선시 될 때 이미 우리 미래의 다양성(질적인 성장 가능성)은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선거 때마다 당의 강령과 목표에 따라 후보가 뽑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갤럽 설문 조사와 모바일 투표를 할 때, 또 흥행의 성공 운운하는 그것의 당리 당략적 효용성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 때부터 소리 소문없이 실용주의란 값 싼 선택지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정당정치를 통한 다양성의 확보와 절차(rule)를 통한 서로 다른 이익집단/계급간의 타협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없는 포퓰리즘에 공공선에 대한 부정, 소유권의 절대화, 국가의 개입금지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 때문에 최장집교수가 "사회적 갈등 균열에 대응하는 정당체제" 구축을 통한 민주주의의 심화를 주장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이 지난 10년, 아니면 1980년 이후의 이념의 과잉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린 실용주의란 선택지 이외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세계가 과거에 지쳐 있으니,
오, 세계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최후의 휴식을 가질 수도 있겠다.이념이 죽은 시대라는 말은 벌써 몇 십년전에 들었다. 흑묘 백묘 상관없이 쥐를 잘 잡아야 하는데 귀납법의 약점은 항상 사후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즉 흑묘가 잘 잡는지 백묘가 잘 잡는지, 아니면 둘 다 그런지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쥐를 잘 잡는 실용주의 고양이인지, 아니면 쥐보다 국민을 잘 잡는 정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고 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 되어 모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관련글 : 이성적인 사회를 향하여
저자 :허버마스, 출판사: 종로서적
"실용주의는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광범위한 실용주의적 정신의 확대는 진리의 논리학(특정 이념 자체의 절대적 타당성)을 개연성의 논리학으로 대체한다. 이명박씨가 시장 시절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청계천을 복원하여으니 대통령이 되어서도 잘 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말이다. 여기서 모든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통계적 개연성/가능성을 많이 보여준 사람이 누구냐는 판단으로 넘어간다.
| 도구적 이성 비판 - M.호르크하이머 지음, 박구용 옮김/문예출판사 |
"실용주의는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사회를 반영한다."
이 말에 의지하여 살펴보면 국보위에서 활동한 분과 논문 표절 의혹이 있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분들, 냉전적 통일관과 친미적인 활동을 한 분들이 정권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정권에 표를 던진 것은 적어도 우리들 중 다수이니 말이다.
다만 스스로 실용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표를 던졌다면 모르지만, 이런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따라서 반성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이라는 것을 모르고 표를 던졌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반성하고 최근 누군가 했던 말처럼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우리의 희망을 확정하는데에 '시장 조사와 갤럽의 설문 조사'가 철학이나 이념보다 우선시 될 때 이미 우리 미래의 다양성(질적인 성장 가능성)은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선거 때마다 당의 강령과 목표에 따라 후보가 뽑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갤럽 설문 조사와 모바일 투표를 할 때, 또 흥행의 성공 운운하는 그것의 당리 당략적 효용성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 때부터 소리 소문없이 실용주의란 값 싼 선택지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정당정치를 통한 다양성의 확보와 절차(rule)를 통한 서로 다른 이익집단/계급간의 타협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없는 포퓰리즘에 공공선에 대한 부정, 소유권의 절대화, 국가의 개입금지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 때문에 최장집교수가 "사회적 갈등 균열에 대응하는 정당체제" 구축을 통한 민주주의의 심화를 주장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이 지난 10년, 아니면 1980년 이후의 이념의 과잉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린 실용주의란 선택지 이외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세계가 과거에 지쳐 있으니,
오, 세계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최후의 휴식을 가질 수도 있겠다.이념이 죽은 시대라는 말은 벌써 몇 십년전에 들었다. 흑묘 백묘 상관없이 쥐를 잘 잡아야 하는데 귀납법의 약점은 항상 사후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즉 흑묘가 잘 잡는지 백묘가 잘 잡는지, 아니면 둘 다 그런지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쥐를 잘 잡는 실용주의 고양이인지, 아니면 쥐보다 국민을 잘 잡는 정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고 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 되어 모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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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버마스, 출판사: 종로서적
허버마스( Jurgen Habermas )는 베버의 합리성의 개념을 근거로 하여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비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즉 그는 서양에 있어서 근대성 또는 현대성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이며, 오늘날 심각한 난점을 드러내고 있는 근대성의 테제를 어떻게 극복 발전시킬수 있겠는가 하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허버마스의 근대성과 합리성의 주제를 서양의 지성사적인 맥락에서 생각을 하여 보면 그의 관심을 가까이에서 살펴 볼수 있다. ...
... 전문지식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세가지 모델을 설명하였다. 또한 실용주의 모델만이 민주주의에 관계된다고 허버마스는 주장한다. 이는 정책 결정에 있어 전문가와 지도자 사이에 책임과 권력의 분립이 행해 진다면, 일반 시민은 여론을 통하여 정당화하는 역활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 사회의 기술 관료적인 통제는 어떠한 민주적인 정책 결정의 과정이라도 목적이 없는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 전문지식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세가지 모델을 설명하였다. 또한 실용주의 모델만이 민주주의에 관계된다고 허버마스는 주장한다. 이는 정책 결정에 있어 전문가와 지도자 사이에 책임과 권력의 분립이 행해 진다면, 일반 시민은 여론을 통하여 정당화하는 역활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 사회의 기술 관료적인 통제는 어떠한 민주적인 정책 결정의 과정이라도 목적이 없는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