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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서간집, 아카넷, 이근세 옮김, 2018❯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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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간다!❯ 에 대한 update.  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느냐! 배치와 순서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 스피노자는 울덴부르크에게 이렇게 쓴다. "청컨대 실체와 우유적 속성에 대해 제가 내린 정의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정의로부터 저의 모든 증명이 도출됩니다. 실제로 저는 실체를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생각되는 것으로서, 즉 그것의 개념이 다른 어떤 것의 개념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서 이해하고,  변용(modificationem) 또는 우유적 속성(accidentia, 偶有的 屬性)은 다른 것 안에 존재하고 그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 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점은 명백합니다. 첫째,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우유적 속성에 앞섭니다. 우유적 속성들은 실체 없이는 현존할 수도 없고 생각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실체 안에, 즉 지성 밖에는 실체들의 우유적 속성들과 우유적 속성들 외에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서 생각되거나 아니면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의 개념은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포함하지 않습니다. 셋째, 다른 속성들을 가진 사물들(실체들)은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속성을 그 개념이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끝으로 넷째,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는 두 사물 중 하나는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결과는 원인과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무(無)에서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도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선생님, 인간들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생된다(generari)는 것, 그리고 그들의 육체는 비록 전에는 다른 형태였을지라도 이미 현존했었다는 점을 부디 고찰하시기 바랍니...

레닌 :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 에서 이야기한 레닌과 관련된 글들이다. 서울역에서 종로까지 - 서울풍경 1 일주일에 한번씩 기차에서 내려 서울역에 서면 현기증이 먼저 그 다음은 구역질이 났다 기차는 대전을 출발해 조치원, 천안, 평택, 수원, 영등포, 그 다음 한강을 건너 서울역에 오고 사람들이 참새 떼같이 떠들면서 몰려 내렸다 소리로 날카로운 바람을 만드는 버스는 뒤에 검은 연기를 달고 머리 위 고가 밑을 달리고 나는 종로 3가에 어느 건물 안에 앉아 밖을 보며 콜라에 햄버거를 먹는다 앰프에 노래 소리 들리고 피켓팅에 가두행진이 있어도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가슴은 뛰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짱돌이라도 날라와 커다란 유리를 깨고 내 머리통을 치기를 바라면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생각도 있으리라 하지만 과거는 과거로 놓자 시간은 항상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고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역사가 뒤걸음친다 해도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리라 그것을 아는 내가 무엇을 어쩌란 말이냐 나의 속에 과거가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난 이미 현재 위에 서 있다 피켓팅이 있고 운동가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바리케이트가 없고 적들이 없고 구경꾼도 없다 지금은 침체기다 ‘핵심을 보존해 퇴각하라’ 레닌도 생각을 못했으리라 핵심도 없다면 아니 모두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면 누가 퇴각할 수 있을까? --------------------- 희망의 나이 오늘 시내에 나갔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한 구석에 꽂혀있는 시집을 보았다 김남주가 있고 박노해가 있었다 백무산이 있고 김정환이 있었다 이 모두를 갖고 싶지만 돈이 오천원 밖에 없다 혁명, 동지, 노동자를 향한 외침은 돈에 팔려 나간다 그래도 경쟁에 직면한 조잡한 소비에트의 생필품처럼 이곳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나보다 음모하듯 ...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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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에 페이스북에 남겨놨던 메모들이다. 2년 지난 오늘 다시 보고 글을 추가한다.  2019.8.29 전략 - 평가와 전망 벤야민의 비평과 들뢰즈를 연결해, 우린 하나의 전략적 테제를 도출했다/도출할 수 있다. 우리와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는 분들은 다른 전략을, 배치를 만들려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미디어 전략'은 벤야민이 보았던 뉴미디어(사진, 영화)에 의한 전통적인 예술의 변화에 기반한다.  남이야 뭐라든! 비물체적 변환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영토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 각 세력들(입장들), 현실적인 경제적 제도/구조/회사 등등이 전략의 승패를 가른다. 혼자 목표에 다다르기 어려울 때, 둘 또는 셋이 되는 방법으로, 친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스스로 Contents Aggregator가 되기 위해 푹, SMR을, 하나의 형식을 만들었는데,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려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간과했다.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 2.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 전략의 차원에서 '비물체적 변환'을 이루려면 내적 역량에 대한 확신(레닌식 주의주의)이 중요한데, 우린 여기(자기의심, 타자에 대한 부러움?!)에서부터, 자기확신의 결여로 패배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그 최종판은  흉내내기 - 자기의 핵심역량 버리기이다. (돈키호테식 용기와 근거없는 희망으로) 다른 곳에서 벌여놓은 전장에 뛰어드는 것 - 자기가 유리한 위치로 적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또 '개인적인' 투항이 이어진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못한, 애석한 죽음과! 우연들이 겹쳐, 누층적으로 쌓여,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무너져내리는 '필연의 법칙'이 들어서는 것이다. 알뛰세르의 말이 '경험적'으로 맞다.  너무 성급하게 개입하는 사람은 정확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할 위험성, 너무 많이 ...

사업/서비스를 위한 메모들 - 배치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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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16년 어느날 ~ 들뢰즈의 기계적 배치, 언표적 배치, 사건 개념을 연결 기계적 배치 - machine / 제작. 내적 맥락 언표적 배치 - 해석. 계열화 / Social. 서비스-소비적 맥락 사건 - contents. story적 맥락 사건이 이렇게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기계-언표-콘텐츠가 함께 교직되면서 어떤 사건/의미가 생겨난다. 기계-언표도 과도할 수 있다. 어떤 것(사업/전략)을 구조화할 때, 사용해보는 도구/개념 정도로 생각해보자. (2019.7.18) 콘텐츠나 사건을 어떻게 놓을까! 콘텐츠를 사건에 놓는 것은 category mistake이다. 콘텐츠는 기계적 배치 내에 내용이나 성질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것이 놓여있는 미디어기계와 사람이 접속할 때, 어떤 의미와 사건이 일어난다. 그 내용(콘텐츠)에서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나 그 콘텐츠의 제작자(감독,작가, 편성/투자자 등)의 의도에 따라 가는 사람들 .. 의미가 갈리는 방식) - 성상을 파괴하는 신교도와 그것을 만들고 신성시 하는 가톨릭교도 어떤 특정 의미나 사건을 지속하도록 만든 게, 가톨릭 종교개혁의 '아우라(벤야민)' 장치라고 한다면 우리 옆에는 그 보다 유연한 '페북/facebook 기계'가 있고, 그 안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아우라' 장치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페북을 어떻게 쓰는지, 그 안에 어떤 peer들, 어떤 contents, context ... 기(氣)들이 우글대다 어떤 정향(개체화, 몰적 형태)이 발생하고/되고 고착될 것이다. (2019.7.19) 아래 글은 2019.7.23일 업데이트 -------------------- 2014.5.22일, 2015.3.12일 메모 - 메타데이터, TMI meta-data에서 meta는 변하지않는, 근원적인 것이다. 그래서 형이상학, meta-physica의 meta. meta를 뺀   data는 현상적인 것, 경험적인, 변하...

기술지대,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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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기술지대' 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술지대'에 관한 이해없이 '플랫폼(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고 생각한다. '기술지대'에 대한 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란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사업과 연결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Marx의 <자본> 전체가 그렇지만 지대이론도 고전경제학자인 D. Ricardo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지대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사는 < 방송과 통신정책, IPTV 융합정책의 지대추구론적 분석 : 지대추구의 효율성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vergence Policy of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in IPTV Convergence Service with Reference to Rent Seeking Theory>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이상호 교수/박사 이다. 2007년, 나는 KT IPTV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고, 이박사는 KT에 근무하는 counter partner(차장)였다. 그가 지대이론에 근거해 플랫폼 사업자의 wining을 이야기했고, 우리가 추구했던(?) 'Digital Contents Platform'이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예전에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만델의 <후기자본주의> 를 제본해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도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읽고 있고, 또 그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의 관계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정리해 <문화경제학> 시간에 짧게 강의를 했다. 기술지대는 기술(기술과 기술적 장치들, 그리고 지적 재산권 등의 법률적 제도 등도 포함된 기술)을 기반으로 부(가치)의 전유를 위한 회로 중 하나이고, 부불노동 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구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