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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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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시반에 깨 막 현관문에 던져진 신문을 읽었다.   "이 작고 메마른 바위섬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창조력에 놀랐다"고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갈라파고스의 경험을 적었다고 한다.  IT산업에서 '한국 갈라파고스'라는 부정적 맥락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묻고 싶었던게 있다. 나에게 갈라파고스는 종의 다양성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문제라면 세계화 속에서 (언어, 문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도에 갇힌 시장 크기와 창업가적(또는 영역 구분 안하는 '융합적인' 투기적) 기질, 하지만 빠르게 구조화된 패권적 시장 질서에 따른 어려움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에서 거대한 육식공룡이 못나온다라는 의미로 '갈라파고스' 이야기하는 거라면 할 말이 없음. 땅이 작아 ... 외에) 밖에서 한국을 볼 때 어떨까? (언어 문화적 한계로) 글로벌기업은 못되도 많은 새로운 시도들과 국지적으로 성공한 서비스들이 있어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판단한다. 지금도 유효하다. 종의 다양성이 지리적 격리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한국 문화적(언어적) 격리 속에서, 그러면서도 세계화된 경제 - 이전 같으면 종속적!?, 국제분업 질서 속에서의 위치 - 때문에 묘한(thisness한) 환경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건 느낌이고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를 지적하면서 '갈라파고스화 된다'는 말을 쓰는 게 실제와 맞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적어도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이 지배하지 못하는 환경인 것이다. 그런 회사(공룡)가 안나오는 것은 미국 빼고 전세계 대다수(모두) 아닐까. 한국의 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좀 과장(거짓)이라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의 '갈라파고스'도 과장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렵다면 '갈라파고스'에 사는 먹이사슬 최상위 종의 폭식성 때문일 수 있다. 삼성, 네이버 등등이 갈라파고스 전체처럼 보일...

풍수화의 시방시와 다면적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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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을 따라 안개에 묻힌 산머리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다. 저수지 얼음은 작은 비방울을 받아 자기 몸을 보태어 이고 지고 나르기에 바빴다. 노래하는 사람은 비를 맞으면서도 노래를 불렀고 웅얼거림이 우산 위 비소리와 한몸으로 뒹굴었다. 미술관 건너 산 허리, 지난 봄 붉게 피었던 꽃자리 나뭇가지 끝 모두 붉게 보였고 어둑해지는 산, 등진 가로등은 보름이었다.  마주본 비 방울 방울 속에 천개의 달이 뜨고졌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한국화 소장품 특별전 : 멈추고 보다 - 2015.9.8 ~ 2016.3.6일까지 - 토요일에는 오전 10시 ~ 오후 9시까지 볼 수 있고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는 기획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멈추고 보다는 원래 무료) ----- 우리에게 개념적으로 더 익숙한 투사 원근법, 입체적 관찰(피카소적인)보다 전통 한국 산수화가 더 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고 자연/세계의 역동적인 변화상과 사람이 '세계 내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풍경화가 단순한 물리적 재현을 넘어 세계가 인간 경험 속에서, 인간-세계와 관계 속에서 인간의 심리적, 또는 내적 구성력(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다양성들이 대립된다기보다 다질적 세계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을 조선의 산수화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지금껏 본) 그 다양성보더 더 무한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 몸이 이미 알고있는 변화와 융합(물아일체!)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그런 기대에 찬 눈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 내가 변해야 그림도 변한다. 들뢰즈의 차이-생성과 동양적 세계관/기철학에는 공통된 것이 많은 듯하다. ----- 이종송_움직이는 산-경주남산 _흙벽화 기법에 천연안료_195×528cm_2003 1. 답사와 여행체험을 통해 그린 겸재적 전통의 실경산수 2. 벽화기법과 민화적 도상처리가 맞물린 독특...

여기, 슬픈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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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슬픈 사람이 있다
 - 용산 참사 7주기에 부쳐 2016년 1월 16일 신문 위, 시(詩)로 7년이 지난
 지금 막 부활 예수처럼 증거된 '학살자들' ! 거리가 점점 멀어지던 단어다.

 '시민은, 방관자들은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당신이 물을 때, 
찾을 때, 안보였던 것은 
아담(Adam)처럼 다른 세계에 서 있었던 거다. 
강퍅하던 정신, 몸은 그 거리를 떠났고
 결국, 같은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지 않았던 거다. 학살자! 
학살하는 자와 학살 당하는 자가 여전한 
세계, 밖, 그래서 '눈 앞에 없었던 사람' 당신, 죽음이 망각의 늪 속에서 또 다시 
죽지 않기를 바라며, 
아담아, 사람아! 부르는 소리에 부끄러워 고개
 숙이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공유한 유일한 땅,
 슬픔 위에 새긴다.
 언제나 이곳에 울고 서 있으라. 2009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
 사람이 있었다.   2016.1.16일,  심보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을 읽으며 ...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살아 있어"  2011.5.19일에 "사실"(공통기억)을 지키는 것은 보수, 진보를 떠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이다라고 썼었다. 최근 '위안부 - 일본군 성노예' 관련된 건을 보면 더욱 더! http://www.dckorea.co.kr/tc/archive/201601#entry_277

❮Contents Evolution in Platform Age❯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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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미래성장동력으로 융복합 문화산업 육성 방안> 토론회에 제출한 토론문이다. 임성희 SK플래닛 신사업개발실 부장이 <콘텐츠와 플랫폼 융합>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했고, 토론문은 발제문의 순서에 맞춰 작성했다. 발제문은 1.Contents Evolution in Platform Age, 2.Digital Video Platform Rush, 3.Change of Viewers, 4.Technological Background, 5.Evolution of Contents, 6.what is to be done?으로 구성되어있고, 1, 2, 6번에서 토론문의 소제목을 가져왔다. 어떤 토론회나 그렇듯이 시간에 쫓겼고, 사전 발제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내 몫의 시간은 토론문으로 대체했다. 대신 토론회에서 떠오른 생각 몇가지를 두서없이 짧게 이야기를 했다. 같은 섹션에 이인화교수(이화여자대학교)가 <콘텐츠와 타분야의 융합>이란 제목으로 발표하며 블로흐의<희망의 원리>를 인용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우발적 사건이었고, 사건적 융합(관계맺기, 연상작용)이었다.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웹툰은 한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포맷이다. 많은 스토리가 그려지고 다른 쟝르(영화, 드라마, 연극 등)에서 활용된다. 그런데 웹툰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1년에 13만명(?) 정도가 경연에 참여해 30여명 정도가 살아남는 혹독한 경연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 그 안에서 훈련된 몇 명의 우수한 작가가 선발된다.  웹드라마, MCN 등의 사업을 보면서 일자리를 못찾는 젊은 친구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고문이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 한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이 시장에 뛰어든 젊은이들 대부분은 부불노동으로 플랫폼(IT업계)에 착취당한다. 열정 페이만큼의 월급도 없이 일을 시키는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수익률은 높을 ...

민주적 전제정 : 토크빌 -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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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0 update  과거에 한번도 국가가 대다수의 국민(시민/서민)들에게 '보호자/후견자'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또 K-방역이라는 선제적 행동과 국민들을 비행기에 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감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함께 국가/정권은 " 물질적 향유를 만족시켜주고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거대하고 보호자적인 권력" 의 성격을 더욱 띄게 되는 것 같다. 이제야 명시적으로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생체권력( biopower) - 미시권력'의 작동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세월호 이후 - 촛불혁명'으로 출발한 정부라 '안전, 생명, 시민/국민'에 대한 각별한 태도 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동의 효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주적 전제정❯ 말이다. 만들어진 법/제도는 사용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 부유한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예절을 갖춤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생활상태의 차이를 드러내는 은혜는 받는 사람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소박한 예절은 못 견딜 정도로 매혹적이 된다. 상냥함은 인간을 도취시키며 설사 세련이 덜 된 점도 반드시 불쾌하지만은 않다.   토크빌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시민들은 예절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예의를 지킨다고 이야기 한다.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II, 674)  이것은 19세기 이야기이고 지금의 미국은 그렇지않다. 박홍규 교수는 토크빌의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이점을 계속 지적한다. ( 박홍규,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242-256) 하지만 프랑스의 (구)귀족들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사람들과 같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들(귀족들)과 평등해진 모든 사람을 억압자로 간주하게 되며, 그 억압자들의 운명은 아무런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들...

SBS 유튜브 한국 서비스를 차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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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일 미디어리더스포럼이 주최하고 (사)미디어미래연구소가 주관하는 ‘2014 미디어리더스 국제포럼’ 2부 토론에서 발표를 위해 쓴 글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토론은 토론이 아니다. 그래도 항상 약정 토론문을 준비한다. 투명하게 의견을 말한다기보다는 예절바르고 공손하게 이야기하고 일어서야 한다. 그때 작성했던 토론문을 올린다. 물론 작성한 토론문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포럼 소개 기사: 미디어미래연구소, 2014 미디어리더스국제포럼 개최   미디어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약정토론 발제문) 박종진 스마트미디어렙(주) 대표이사, 2014.10.26. 1. 발표문 요약 우리는 현재 인터넷, 디지털 기술에 의해 미디어산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1) PC, 태블릿, 모바일 및 스마트TV 등에 의한 OTT 서비스의 활성화 - 최근에는 모바일 퍼스트   2) 이에 따른 플랫폼, 시장의 파편화 - N-screen, 모든 서비스 사업자가 자신이 플랫폼이라고 주장 - narrowcasting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용자 행태가 변화고 새로운 콘텐츠의 출현 - 소셜 미디어, 큐레이션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사실(fact) 기술이고, 다른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사실 이외의 다른 영역(가치)에도 깊숙히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2. 미디어란 무엇인가? (사회적 효과) 이런 변화들은 아주 중요한데, 그 중요성은 사업(비즈니스)적인 것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미디어(media)는 세계와 인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말 그대로의 매체(media)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디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다. 어떤 본질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역할 또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에 대한 질문이다.   2010년부터 구글, 트위터, 아이폰, 페이스북 등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고 있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튀니지, 리비아,...

‘몸-경험’에서 매체로, 그리고 매체에서 ‘몸-효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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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스마트폰 동영상 이용 시 멀티태스킹에 관한 연구(임소혜)>에 대한 비평문이다. 임교수는 2013.4.26일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멀티스크린과 멀티태스킹]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했고, 이때 토론을 위해 이글을 썼다. 1. 스마트폰 또는 뉴미디어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 ‘멀티태스킹’이란 (기계적인) 개념 대신에 ‘연속(sequence)’ 또는 ‘흐름(flow)’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1974년 <텔레비전론 -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 (Television: Technology and Cultural Form)>(현대미학사, 1996)에서 “방송 프로그램이 갖는 관심이나 범주의 배분” 즉 ‘편성’에 대한 분석은 “추상적이거나 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모든 발달된 형태의 방송시스템이 갖는  특정한 구조와 그에 따른 특정한 경험 은, 다름 아닌 연속 또는 흐름”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시간적 단위의 편성표를 보고 해당 시간에 TV를 켜는데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 진지하게 눈을 돌려보면, 우리가  방송을  경험하는 일상적인 방식이 전혀 다르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텔레비전을 본다’, 또는 ‘라디오를 듣는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가 개별적인 특정 프로그램의 경험만을 언급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개별 프로그램 이상의 전체적인 경험 을 언급하고 있다.”(강조는 필자)  하지만 우리가 제안하는 ‘연속’ 또는 ‘흐름’이란 개념은 윌리엄스가 사용했던 개념과는 다르다. 다만 우리는  뉴미디어뿐만이 아닌 모든 미디어에 대한 전체적인 경험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는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매체(media)가 아닌 신체에 의한 미디어 경험의 ‘연속’ 또는 신체의 ‘흐름’에 따라 선택되는/만나는...

플랫폼 제국들을 가로지르는 유목적 삶에 대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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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2년 5월말에서 6월초에 썼다.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 끼리 모여 플랫폼 관련 책을 내자고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쓰게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투'(경어체)가 전체 쓰여진 글과 같지 않다고 퇴짜를 맞아고, 어투를 고친 후에는 원고가 너무 늦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때 엮여서 나온 책이 <플랫폼을 말하다>이다. 나는 이책 제일 뒤에 운영위원의 한명으로 이름만 올렸다.   지금 살펴보니 아래 글과 그책의 편집방향이 많이 달라보인다. 우리 이야기는 최신의 것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내용도 아닌듯하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old'하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도 '노구'를 이끌고 분투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지 어렵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글을 쓸 때가 pooq 서비스( www.pooq.co.kr )를 만들고 있을 때니 10개월이 가까이 되었다. 우린 여전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길을 가고 있다.   글의 제목과 달리 우린 빠른 기동력을 무기로 한 몽골의 기마병이 아닌듯 하다. 전쟁터에 내몰린 농사꾼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만난 우리는 말 잘타는 유목민이 되었으면하고 꿈을 꾼다. 어투를 바꾸며 추가된 내용들이 있다. 제일 마지막 <콘텐츠 연합 플랫폼>에서만 바뀐 내용 중 일부를 more/less 버튼으로 적어놓았다. ---------------------------------------------------------------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 플랫폼   제국들을 가로지르는 유목적 삶에 대한 꿈 ---------------------------------------------------------------- 요약 2005년부터 진행된 SBS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이 변화된 뉴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산물이었다면, 현재 진행...